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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영조 Mar 02. 2018

아콩카과(2)
백풍에 맞서다

- 세계 7대륙 최고봉 등정의 기록 - 

오늘 일정은 하루에 고도를 1,000m나 올려야 한다. 


이 무렵, 내 몸에서 이상신호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원정대의 일거수일투족을 영상기록으로 남기기 위해 선두와 후미를 뛰듯 다니다보니 머리가 점점 무거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급기야 숨 쉬는 것도 힘들어졌다. 


이런 상태를 끌고 8시간이나 카라반을 강행한 끝에 드디어 베이스캠프(4,200m)에 도착했다. 모든 피로와 고통이 시원한 느낌으로 변했다. 

베이스캠프 도착 직전


레인저캠프를 찾아가 우리 원정대의 입산수속을 하면서 대한민국국립공원 홍보책자를 전해주니 굉장히 반가워했다. 


베이스켐프에는 레인저 3명과 의사 1명이 상주하는데, 20일 근무, 10일 하산휴무 체제로 운영된다고 친절하게 설명해준다. 법에 따라 등반 가능한 3개월만 산을 개방하고, 나머지 기간에는 전면 통제하는 방식이 신기했다. 만약 통제기간에 산에 들어가면 바로 감옥행이라고 한다.


두려운 고소  


단시간에 고도를 급격하게 올린 탓일까, 영상촬영을 하느라 이리저리 뛰어다닌 탓일까? 고소증세가 물밀 듯 밀려와 잠을 설치니 아침이 힘들다. 다른 대원들도 고소의 고통을 감추지 못했다. 모두들 신경이 날카로워진 것이 느껴졌다.   


“무뎌지라고, 느긋해지라고, 그래야 단결할 수 있다고.”  


서로서로 당부하며 고소순응 걷기를 다녀왔다. 그 사이 황량한 바람에 텐트 안이 먼지투성이로 변했다, 입 안에서도 흙이 씹히는 게 별로였다.   

베이스 캠프에서 제1캠프로 오를 때, 기록 영상을 담기 위해 분주히 움직였다.


10일, 고소가 심한 대원 한 명을 하산조치 하고, 나머지 대원들은 제1캠프 건설을 위한 물자수속에 나섰다. 돌들이 뒤덮인 너덜지대, 눈과 얼음의 빙하지대를 건너고 넘는 7시간의 여정이 기다리고 있었다.  


제1캠프에 도착하자마자 곧바로 텐트를 올리며 캠프건설을 시작하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단장님을 비롯해 3명의 대원이 고소때문에 극심한 고통을 호소한다. 상태를 파악해보니 더 이상 작업이 불가능할 것으로 판단됐다.


이들 3명을 내려 보내고 그나마 컨디션이 좋은 나와 다른 한 명이 여기서 1박을 하고  내일 제2캠프까지 오르기로 했다. 남은 우리는 언제 악화될지 모를 날씨 때문에 1캠프 구축을 서둘렀다.


작업을 마치고 낮은 기압 때문에 설익은 밥을 억지로 밀어 넣었다. 밤이 되니 머리가 무겁고 가만히 있어도 숨쉬기가 힘들다. 바람 한 점 없는 조용한 날씨가 그나마 다행이었다.  


아침이 밝아옴과 동시에 제2캠프(5,800m) 건설에 나섰다. 


그런데 오늘은 날씨가 만만치 않다. 몰아치는 백풍 때문에 시야확보가 어렵고, 걷는 동작조차 자유롭지가 못하다. 그 와중에도 나는 이 여정을 촬영하기 위해 앞뒤로 부지런히 왔다 갔다 하느라 고역이 배가됐다.  


능선에 다다르자 백풍이 더욱 거세졌다. 앞서 갔던 이탈리아 원정팀은 결국 중간에 데포(등정 도중 잠시 짐을 놓아두는 곳)를 마련하고 하산하는 중이다.


하지만 우리는 전진 또 전진.


오후 2시가 넘어 제2캠프에 도착했더니 하늘에서 눈덩이가 내리기 시작했다. 서둘러 제2캠프 텐트를 세우고 도망치듯 베이스캠프로 내달렸다. 도착한 우리는 오랜만에 베이스 캠프의 풍성한 저녁식사를 하고 포근한 밤을 보냈다.  

베이스캠프, 이곳은 눈대신 황량한 모래가 있어 바람이 심하면 모래폭풍이 닥쳐 텐트가 날아가는 일도 다반사다.


12일, B조가 고소순응 겸 제1캠프로 1박의 여정을 떠났다. 


우리 A조는 베이스켐프에 남아 모처럼 물을 데워 머리를 감고 빨래도 하면서 여유로운 시간을 보냈다. 


내일은 우리조가 제2캠프까지 단숨에 오를 예정이다.  


이놈의 바람  


이윽고 날이 밝자 서둘러 아침식사를 챙겨먹고 베이스캠프를 나섰다. 한 번 올랐던 길이여서 그런지 전보다 순조로웠다. 제1캠프에 도착해 가져간 주먹밥을 점심식사로 먹고 바로 제2캠프로 향했다.   


“이렇게 순조롭구나.”  


좋은 기대와 함께 마음 한켠에 맴돌던 불안이 스멀거렸다. 


아니나 다를까, 중간 정도 갔을 때 대원 한 명이 복통을 호소하기 시작했다. 허리를 숙이며 배를 움켜진 모습이 예사롭지 않았다.


전진하던 발걸음을 지체 없이 제1캠프로 돌렸다. 마침 복통약이 있어 먹이고 오늘 하루는 여기서 쉬기로 했다. 


그러는 사이 하늘은 ‘그동안의 좋은 날들은 다 끝났어’라고 말하고 있었다. 구름이 급변했다. 눈보라가 내리쳤다. 밤새 텐트 속에서 추위와 눈보라를 겪으며 의지를 시험받았다.  

다음날 아침 해가 떠오르며 다행히 눈보라는 그쳤다. 하지만 괴성을 지르는 바람은 여전했다. 설익은 밥과 미지근한 국물로 아침식사를 대충 해결하고 다시 제2캠프로 출발했다.

페니텐트(penitent) 구역. 고지대 낮은 습도에서 수분이 상승하다가 빙체에 달라 붙어 만들어 지는 얼음가시.


“이놈의 바람….”  


아콩카과의 백풍이 무지막지했다. 안면마스크가 가리지 못하는 코, 입술, 볼이 먼저 그 대가를 톡톡히 치렀다. 그리곤 서서히 몸 전체 구석구석에 한기를 전하며 얼어붙게 만들었다.


이런 상황일수록 영상기록을 남겨야하는 나는 더욱 부산하게 움직여야 했다.

 

능선에 돌출된 지형은 바람 피할 바위 하나 없었다. 제2캠프에 한시라도 더 빨리 도착하는 것이 최선이었다.   

제1캠프에서 제2캠프로 오르는 길, 며칠 전 내린 눈때문에 너덜지대가 눈밭이 되면서 더 위험했다.


백풍에 5시간을 시달린 끝에 제2캠프를 볼 수 있었다. 


반쯤 얼어버린 몸을 텐트 안으로 밀어 넣었지만, 바람은 이마저도 용납하기 싫은가보다. 내친김에 텐트와 우리 모두를 동시에 날려버리기로 작정한 듯 몰아쳤다. 광풍의 공포가 고소의 고통까지 잊게 만들었다. 텐트가 뒤집어질까봐 폴을 꼭 붙잡았다.  


“내일 아침까지 버텨야해.”  


서로를 다그치듯 격려하는 사이 날이 밝아왔다. 몰아치던 광풍은 새벽녘 잠잠해졌다. 


쉴 새도 없이 길을 나서야 했다. 우리는 멀리서부터 눈여겨봐둔 눈 덮인 벽면을 개척할 계획을 세웠다.  

왼쪽부터 나, 조연 단장, 친구 염봉섭, 우리는 운행조가 달라서 가끔 베이스캠프에서 함께할 때 이산가족이 상봉한것처럼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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