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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영조 Feb 21. 2018

아콩카과(1)
남미의 하얀 수호신 앞에서

- 세계7대륙 최고봉 등정의 기록-

아콩카과

고도 6,959m 아콩카과는 안데스산맥의 최고봉이며, 지구의 서반구에서 가장 높은 산이다.

아르헨티나 북서부 멘도사주에 위치해 있지만 봉우리 서쪽은 칠레의 해안지대까지 이어진다.

산 전체가 하나의 큰 암석덩어리이다.

1883년 독일인 폴 구스펠트가 최초로 등정을 시도했지만 실패했다. 

이어 1897년 영국인 에드워드 피츠제럴드가 이끄는 원정대에서 시위스인 가이드 주브리겐이 단독으로 최초 등정했다. 

한국인 최초는 1981년 서울대 문리대 산악부 공용대와 최중기가 올랐다.


“하얀 수호신이 우뚝 서 있다. 나는 저 수호신의 정수리에 올라서야 한다.”     


아콩카과는 아르헨티나 북서부에 있는 안데스 산맥의 최고봉, 해발고도는 6,959m다. 


아콩카과는 북남미 통털어 가장 높은 곳인 동시에 지구 남반구의 최고봉이란 타이틀도 갖고 있다. 예로부터 안데스 원주민들은 하얀 수호신’, ‘돌로 된 보초병’이라고 불러왔다. 높고 높아 어디서든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8,700km 안데스의 광대한 산맥. 난 이곳의 최고봉인 아콩카과 정상에 서야 한다. 그리고 무사히 집으로 돌아갈 의무가 있었다.


나의 세계 7대륙 최고봉 두 번째 목표는 이곳이다.

 

지난번 유럽 최고봉 엘부르즈에 오른 후 자신감이 생겼다. 엘부르즈가 5,900m 급이었다면, 아콩카과는 6,959m, 1,000m 수직 상승이다. 


아콩카과에서 이 자신감을 한껏 키우리라.    

 

원정을 떠나기 전에 가족에게 평소처럼 행동하려고 노력했는데, 긴장 때문인지 평소의 내가 아닌 것 같았다. 큰 아이 '진'이와 작은 아이 '은'이, 아직 어린 두 아이에게 어떻게 작별인사를 해야 할지도 막막했다.  

    

“아빠는 한 달 동안 집에 못 들어와.”     


유치원에서 온 진이에게 과자를 사주며 자초지종을 설명하는데,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한편으론 다행스러웠다.


남들이 새해를 맞아 들떠 있을 1월 2일, 나는 집을 나섰다. 

우선 전주로 가서 원정대장 조연 선생과 합류했다. 그런데 영상촬영을 맡았던 선배가 개인사정으로 원정을 포기했단다. 흔쾌히 내가 맡기로 했다.     


3일 오전 인천공항으로 모든 대원들이 모였다. 나와 지나번 초오유에 함께 등반한 봉섭이 외에도 3명의 남원 동료들과 전주 조연선생, 그리고 안양의 용식이 형까지 총 7명으로 구성되었다.


미국 LA를 거쳐 칠레 산티아고로, 다시 아르헨티나 멘도사까지 환승을 두 번이나 해야 하는지라 다들 마음이 급한 모습이다. 수속을 마치고 오후 3시 탑승을 기다리는데 폭설 때문에 출발이 두 시간이나 지연된다는 방송이 흘러나왔다. 더 지연되면 어쩌나 마음을 졸였다.


다행히 우리 비행기는 예정된 시간에 눈보라를 뚫고 하늘로 올랐다.     


30시간의 여행길. 비행기를 갈아타는 과정이 고됐지만 안데스산맥을 넘어갈 때 아래로 펼쳐진 웅장한 광경을 보니 새삼 희망과 투지가 솟았다.


멘도사는 우리나라의 지구 반대편, 단 이틀 만에 낮과 밤이 바뀌고 계절이 정반대가 된 것이 신기했다. 온도계가 35℃를 가리켰지만 습도가 높지 않아 견딜만했다.


열대지방의 여유일까? 게으름일까? 이곳은 점심시간이 정오부터 오후 4시까지이고, 관공서도 마찬가지이다. 하루를 잘 쉬고 다음날 아침 일찍 서둘러 멘도사 산마트린공원에 있는 아콩카과출장소에서 입산신고를 마쳤다.     

뒤로 보이는 건물이 아콩카과 입산을 위한 출장소. 이때 부터 쥐게 된 묵직한 영상장비는 10년 이상 나의 숙명이 되었다.  
캠코더밧데리 충전은 태양광 전지판을 이용해 무난히 해결할수 있었다.


백풍     


아콩카과는 흔히 특별한 등반기술 없이도 걸어서 올라갈 수 있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로 알려졌다. 


하지만 7,000m에 가까운 고산의 환경이 호락호락할 리 만무하다. 만만하게 여겨 올랐다가 저체온과 동상, 고산병으로 죽거나 다치는 도전자가 심심치 않게 발생하는 곳, 등정 성공률이 60%를 넘지 못하는 산이다


입산신고를 마친 우리는 곧바로 버스를 타고 6시간을 달려 아콩카과 등정 시작점인 페니텐테스까지 이동했다. 이미 이곳에는 세계 각국에서 온 원정대가 모여 사뭇 활기를 띠었다.      


저녁이 될 즈음 아콩카과 노멀루트 베이스캠프에서 헬기로 후송 온 재일교포를 만났다.

현지 의사로부터 고소에 의한 폐수종이 의심되니 하산하라는 권유를 받았다고 한다. 아콩카과의 헬기 후송비용은 의사의 진료에 의할 경우 무료이고, 본인의 요청으로 운행하면 사용료를 내야 한다는 정보도 들었다.     


우리 원정대는 큰 짐을 뮬라(나귀)에 싣고 길을 나섰다. 


빙하지대가 시작하는 박카스계곡(2,408m)부터 베이스켐프까지 2박 3일 여정을 도보로 가야한다. 무덥고 황량한 계곡을 종일 걷다보니 목이 따갑고 현기증이 일어 괴로웠다.     

가운데가 나. 옆에 앉은 친구 봉섭은 이때부터 산행의 친구와도 같은 고소의 영접을 받았다.


첫날 야영지는 레냐스(2,800m) 계곡, 이곳부터 주립공원 구역이다.


안내소에 들러 입산신고를 하고 개인용 쓰레기봉투와 단체용 큰 쓰레기봉투를 받았다. 일련번호가 새겨진 쓰레기봉투, 1개 분실할 때마다 100달러의 벌금을 내야 한다.

그곳 안내소 직원에게 한국 국립공원 레인저라고 밝히며 홍보책자를 건네주자 무척 반가워했다.     


다음날, 우리는 시원한 아침 기온을 이용해 이동하려고 새벽부터 바쁘게 서둘렀다.

뒤가 아콩카과다. 우리는 오른편 빙설면 루트를 택했다. 대부분 산 뒷편 노멀루트를 선호하지만, 우리팀과 소수 외국팀만 빙설루투를 신청했다.


둘째날 목적지는 피에드라(3,245m). 


고도가 높아지면서 아콩카과의 유명한 바람 ‘백풍’과 드디어 맞닥뜨렸다.

 

태평양서 오는 건조한 바람 ‘백풍’은 속도가 초속 30m에 이르는, 아콩카과 등정에서 힘겨운 상대라는 소문이 자자했다. 이 말이 허풍이 아니었으니, 베이스캠프까지 물자를 운반하던 우리는 호된 백풍을 맞으며 그 위력을 실감했다.

 

백풍에 맞서 무려 7시간의 카라반(등반물자를 운반하며 전진하는 것) 끝에 중간 기착지 피에드라에 도착할 수 있었다. 피에드라에서 들어서니 저 멀리 두 겹 산 너머로 아콩카과 북동벽이 보였다. 대원들 모두 약속이라도 한 듯 동시에 아무 말 없이 멍하게 그곳을 바라봤다.  


8일, 새벽 차가운 기운이 우리가 건널 강에 살얼음을 깔아놓았다. 

여비가 부족해 몰라를 구하지 못한 우리는 두툼한 방한복의 상의, 하의는 팬티만 입은 채 강을 건너기로 했다. 빙하의 찬 물에 살이 에였지만, 한편으론 유쾌했다.   

웃는 표정이 아니다. 새벽녘 찬 빙하수에 화들짝하는 표정. 차라리 돈을 지불하고 뒷편 뮬라를 타고 건널걸 하는 생각이 스쳤다.
베이스캠프 도착 직전 우리 짐을 운반하는 가우초와 뮬라 무리가 우리를 지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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