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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영조 Feb 13. 2018

엘부르즈(2)
유럽 최고봉의 희망

- 세계 7대륙 최고봉 등정의 기록 -

오늘 고소적응 운행에 나가지 못했던 대원의 증세가 호전세를 보여 다행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이번엔 다른 대원이 고소증세를 호소하며 침낭속에 누워버린다. 당장 내일 새벽에 정상공격을 하기로 했는데 걱정이다. 

오늘밤 모든 대원이 기력을 회복해 정상등반에 참여하자고 독려했다.   

참여한 모든 대원들의 안전과 등정을 최우선으로, 정상 등정을 앞두고 마지막 점검.


잠을 자는 둥 마는 둥 오전 1시에 일어나 정상공격 준비를 시작했다. 


추운 기온 때문에 침낭을 벗어나기가 무척이나 버거웠다.고소증세가 아직도 남아 조금 어질하고 멍멍했다.

그래도 모범을 보이자는 마음으로 침낭을 박차고 나갔다. 

장비를 챙기며 전날 컨디션이 좋지 않은 대원을 살펴보니 제법 호전돼 산행에 지장이 없을 것 같았다. 


안도감이 스쳤다.  

간단하게 요기하고 정상 등정을 위한 장비와 식량, 깃발 등을 꼼꼼하게 챙겼다.

코리안 스트롱맨!


오전 2시 30분, 우리는 바렐산장을 나섰다. 

구름 한 점 없는 밤하늘엔 온통 별만 가득했다. 코끝이 싸할 정도의 한기가 느껴진다. 작은 헤드랜턴 불빛에 의지하며 얼마나 올랐을까? 먼동이 밝아온다.   


프리웃산장을 지나 어제 고소순응차 올랐던 파츠코프바위 상단까지 무리 없이 올라왔다.

고도가 높아지면서 머리가 찌근찌근할 고소증세가 느껴졌지만, 대원 어느 누구도 자신의 고통을 전하지 않았다.  모두가 정상등정의 의욕으로 고통을 참고 있는 것 같았다.  


해발 5,500m를 넘으면 꼭 찾아오는 친구 고소와 묵묵히 오른다. 어찌보면 고소라는 친구는 멋진 등 반 파트너 이다.  

어느새 5,200m 지점에 위치한 안부(鞍部)를 만났다.

* 안부(鞍部) : 산의 능선이 말안장 모양으로 움푹 들어간 곳


안부에 도착하니 고소 증세가 더욱 심해진다.여기까지 오는 동안 몇 번을 주저앉으며 쉬었는지, 수통의 물도 거의 바닥난 상태다. 


먼저 출발했다가 정상등정에 실패하고 내려가는 외국 원정대가 우리에게 “코리안 스트롱맨!”이라고 외쳐준다.   

조금 남았던 물을 마지막으로 털어 넣고 점검을 해보니 한 대원의 컨디션이 안 좋았다.그는 오심과 무기력증에 시달리며 체력까지 바닥나 등반을 포기하겠다고 한다. 


또 다른 한 사람은 고통을 나름대로 이겨내고는 있는데, 그래도 불안해보였다. 그나마 한 명은 컨디션이 좋아보여 다행이었다.  


"현재 위치가 고도 5,200m라는 것을 잘 인지해야 한다."

 

내 자신에게 현실을 상기시켰다. 히말라야의 거대한 산에 비하면 낮은 것 같지만 이곳 여건도 우리를 충분히 위험에 빠트릴 수 있었다.   

지금 우리에게 가장 큰 걱정은 고소였다. 산소 부족은 필연적으로 두통과 오심, 무기력, 체력저하를 불러온다.  


동봉과 서봉의 안부, 정상 직전이다. 어둠과 구름을 뚫고 산행 12시간 째 모습.


함께 오르기


어느새 태양은 머리 위로 솟구치고 있었다. 그나마 컨디션이 양호한 두 대원을 먼저 올려보냈다. 

남아서 힘들어하는 대원을 독려했다. 여기까지 오려고 그 얼마나 노력해야했는지, 그냥 돌아갈 때 어떤 기분일지….

다시 힘을 내 설사면을 오르기 시작했다.


40도 이상의 경사진 설사면, 뒤를 돌아보면 그대로 굴러 떨어질 것 같았다. 고소와 추위에 텅 빈 머리를 숙이고 한 발 한 발 동물적으로 걸음을 옮길 뿐이다.

고소의 영향을 받지 않아 컨디션이 가장 좋았던 대원은 벌써 설사면 성단을 넘어가 보이지 않는다. 그 모습에 나도 숨을 고르고 전진했다.

머릿속으로 정상에 오른 내 모습이 스쳐 지나갔다.

"다 왔어! 여기가 끝이야!"

호흡이 다시 버거워질 때 눈앞에 더 이상 오를 곳이 없었다. 유럽 최고봉 엘부르즈 정상에 선 것이다. 베이스캠프를 나선지 13시간만이다.

눈 앞에 펼쳐진 광경에 그 긴 시간이 압축되어버렸다.
 

대신 지구 7대륙 최고봉 등정의 첫 관문을 통과했다는 뿌듯함이 가득찼다.
  

유럽대륙에서 내가 선 이곳보다 높은 곳이 없다니. 발아래 새하얀 구름의 무리, 그 구름을 뚫고 솟구친 봉우리, 그 봉우리를 덮은 새파란 하늘이었다.

그리고 그곳에 있는 우리였다.


가쁜 숨을 고르며 기념촬영을 했다.


출발 때 폼속에 고이 가져왔던 가족사진을 들고


지난번 히말라야 초오유 등정에 실패해 펴지 못했던 우리 회사 국립공원관리공단 깃발이 펄럭였다. 


지구 7대륙 최고봉 첫 관문을 통과했다.


모든 것이 좋았다.


나를 괴롭히는 고소와 추위에 시달리고 있지만 내려가기는 싫었다.


"계속 이곳에 서 있고 싶다고…."


하지만 이제 내려갈 시간이다.

짧지만 강렬한 정상의 기쁨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발길을 아래로 돌렸다. 내려가는 것도 오르는 것만큼이나 힘들었지만, 정상의 기쁨이 이를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만들었다.

한참을 내려가니 비로소 허기감과 갈증이 몰려왔다. 발걸음을 바삐 움직여 바렐산장으로 향했다.

산장에 도착하니 오후 5시.

간단하게 식사를 마치고 침낭 속에 들어가니 행복감이 밀려왔다. 가만히 있는 내 머릿속에서 다음에 오를 산이 빙빙 돌아다녔다. 어느새 잠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꿈 속의 나는 어느 산 정상에 서 있었다.
꿈 속에서 시간이 빨리 지나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모든 것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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