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손영조 Feb 10. 2018

엘부르즈(1)
알프스에서 만난 시신

-세계 7대륙 최고봉 등정의 기록

엘부르즈 

엘부르즈(5,642m)은 아제르바이잔 남서쪽 끝 부근 이란과 접경지역인 코카서스 산맥(러시아에서는 카프카즈 산맥으로 불림)의 중앙에 위치한 유럽 최고봉이다. 서로 다른 화산활동으로 생성된 서봉(Zapadnaya, 5,642m)과 동봉(Vostochaya, 5,621m), 두 봉우리로 이루어져 있다.   

동봉은 1829년 제정 러시아 원정대의 현지 가이드인 카쉬로프(Khillar Khashirov)가 북면을 통해 초등했다. 서봉은 1874년 영국 원정대의 그로브(F. Crauford Grove)가 남면을 통해 최초로 정상에 올랐다.

반면 이 지역 사람들은 가이드 아히야 소타예프(Akhia Sottaiev)가 1849년에 서봉을 초등했다고 주장해 대립이 있다.   

한국인으로는 1989년 김인식 씨가 처음 올랐다.  


엘부르즈는 페르시아어로 눈덮인산 또는 하얀산. 그리스신화에서 프로메테우스의 형벌이 진행된 곳, 유럽 최고봉이다.


초오유가 준 운명 같은 선물  


나는 전업 산악인이 아니다. 다만 산을 지독하게 좋아하는 직장인이다.


산에 대한 사랑과 열정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자신이 있지만, 직장인이 해외원정을 나서기엔 조건이 좋지 않다.


직장인이니 해외원정을 가려면 일단 휴가를 쓰거나 휴직을 해야 하는데, 이게 녹록치만은 않다.

내가 부자도 아니고, 화려한 경력이 있는 것도 아니니 후원이나 협찬을 기대할 수도 없다.   


그럼에도 나는 항상 꿈꾸고 있었다.

내가 꾸리는 원정대가 세계 7대륙 최고봉을 오르는 꿈을.   


밀레니엄을 맞아 진행된 나의 생애 첫 해외원정 초오유는 실패 했다.

하지만 이 실패가 오히려 내게 더 큰 도전을 선물로 주었다.   

그 때, 하산을 준비하며 장비를 정리할 때.

그 순간 왜 세계 7대륙 최고봉에 도전한다는 계획을 세웠을까?


아직도 알쏭달쏭하다.


무언가의 힘에 이끌리는 느낌이었을지도, 혹시 바람의 여신 초오유가 은근히 권한 것은 아닐까?   

아무리 생각해도 운명처럼 느껴진다.    


세계 7대륙 최고봉 첫 관문


오세아니아의 칼스텐츠(4884m), 남미 아콩카과(6959m), 북미 매킨리(6195m), 아프리카 킬리만자로(5895m), 유럽 엘부르즈(5642m), 아시아의 에베레스트(8848m), 그리고 남극의 빈슨 매시프(4897m)까지, 세계 7대륙 최고봉을 꼽아보면서 가슴이 설랬다.


꿈을 이루기 위한 첫 도전으로 어떤 봉우리를 택해야 할까?

많은 고민을 했다.   


심사숙고 끝에 나의 경험, 기간, 경비 등을 감안해 결정한 곳은 유럽의 최고봉 엘부르즈(5,642m)였다. 그 의미는 특별했다.


세계 7대륙 최고봉 첫 원정은 반드시 성공해야 했고, 더불어 내 스스로 만족도와 자신감을 얻어야 하는 중요한 도전이었다. 또 내가 주도해 처음 원정대를 꾸린다는 부담감을 극복하는 것도 과제였다. 


마음을 굳힌 나는 바로 남원에서 4명으로 구성된 원정대를 꾸리고 준비를 시작했다.   


불안과 긴장

   

2001년 8월 11일, 한밤중에 카고색을 둘러매고 집을 나섰다.

따뜻한 온기로 사진을 품고 집을 나섯다.

아내는 아무 말 없이 날 배웅했다. 이별에는 밤이 더 어울릴까?



서울로 가는 기차 안에서 처음 꾸린 원정대에 대한 불안과 긴장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인천공항에 도착하니 오전 9시 30분. 첫 소식은 우리가 타고 갈 비행기의 고장이었다.

오는 내내 마음을 울렁이게 했던 불안감이 터진 둑을 뚫고 나오는 강물처럼 쏟아졌다.


비행기 출발이 지연되면 여러 가지 문제를 초래하게 된다. 우선 길지 않은 휴가에 맞춰 빡빡하게 채워진 일정이 꼬인다. 그러면 일정을 맞추기 위해 무리한 산행을 감행할 수도 있고, 이는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귀국이 늦어져 업무복귀가 늦어지는 것도 큰일이다.  


다행히 비행기는 다음날 오후에 이륙할 수 있었다. 


10시간을 날아가 모스크바에 다달았다. 


착륙 전 창밖으로 보이는 시내 풍경은 한 폭의 아름다운 그림이다. 도시를 둘러싼 자작나무 군락과 침엽수의 숲이 장관이었다. 그 광활한 숲 사이사이 들어선 마을은 마치 동화 속의 그곳 같았다. 생전 처음 본 러시아의 첫인상은 광활하고 아름다운 자연이었다.   


이튿날 우리는 러시아 국내선을 타고 미네랄리예 보디(Mineralriyje Vody)로 향했다. 국제선은 한 명이 개인화물 30kg까지 허용되는데, 러시아 국내선은 이에 대한 정보가 없어 불안했다. 


아니나 다를까. 걱정했던 대로 개인당 20kg 이상은 실을 수 없단다. 초과 1㎏마다 25달러를 내야했다. 가난한 우리의 원정대가 이를 감당하기는 어려웠다.


무더운 날씨였지만 몸에 걸칠 수 있는 것은 최대한 카고색에서 내었다. 한더위에 이중화를 신고 방풍덧바지를 껴입었다. 버너같은 물품도 기내용으로 다시 포장하느라 한바탕 수선을 떨었다. 그래도 안심할 수 없어 카고가 올라간 저울의 한쪽 끝을 발끝으로 살짝 들어올려 간신히 커트라인에 들었다.    


2시간을 비행해 도착한 미네랄리예 보디 공항에서 버스를 타고 엘부르즈로 향했다. 버스로만 4시간의 여정이다.  


이동하는 동안 창밖으로 광활한 대평원과 만년설의 풍경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하늘을 찌를 듯 가파른 단애로 이어진 박산계곡 양쪽에는 높이 3,000m가 넘는 봉우리들이 늘어서 있었다.  

농촌 마을의 이국적 풍경이 편안하게 와 닿았다.

드디어 엘부르즈 초입인 박산(Baksan) 국립공원 이트콜에 도착했다.


하루 만에 모스크바공항에서 이트콜까지 고도가 높아지자 고소증세인 오한과 두통이 약간 느껴졌다.   


러시아 도착 사흘째인 15일, 우리는 베이스캐프인 바렐(Barrel)산장까지 가야한다.

바랠산장까지는 케이블카와 리프트를 번갈아 타야 한다.


오전 6시 기상해 케이블카 탑승장이 있는 아자우(Azau)역으로 이동했다.  

케이블카를 기다리면 망중한을 즐겨본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지난밤 번개를 맞아 리프트 구간이 고장이란다. 케이블카 2구간과 리프트 1구간을 지나야만 바렐산장에 도착할 수 있다.


난감했다.  


케이블카 1구간은 아자우역에서 미르(Mir)역까지, 2구간은 미르역에서 가라바쉬(Garabashi)역까지이고, 나머지 구간이 가라바쉬에서 바렐산장까지이다.


일정이 계속 지연되면 곤란했다. 우리는 무조건 올라가야 한다.


"그나마 한 구간 고장이 다행이라 생각하자."


일단 가라바쉬역까지 가기로 결정했다.


카고 색과 씨름하며 힘들게 가라바쉬에 도착했다. 엘부르즈의 만년설이 우리를 환하게 반겨주는 듯 해 올라온 보람이 새삼 느껴졌다. 더욱 힘을 내 카고색을 바렐산장까지 옮기고서 주위를 돌아보니 엘부르즈의 동봉과 서봉이 바로 눈앞에 서 있듯이 했다.  


갑자기 오른 탓일까? 메스꺼움과 오한이 엄습했다.  


사망사고   


늦은 점심을 먹고 쉬는 중 현지 구조대가 들것을 조립해 우리가 있는 베랄 다가왔다.

다들 의아해하며 몸을 일으키는데, 구조대는 베랄 옆 십자가가 꽂혀있는 눈구덩이를 파기 시작한다.  


"무슨 일이지? "


잠시 후 나온 것은 뜻밖에 한 구의 시신이었다.  

3일 전 하산 중에 길을 잃고 크레바스에 빠져 숨진 산악인이라고 한다.

이제 막 베이스캠프에 도착한 우리는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착잡한 마음을 달랠 길 없었다.    

크레바스에 빠져 숨진 산악인의 시신을 운구하는 현지 레인져


우리는 마음을 다잡고 4,200m 부근 프리웃산장까지 고소적응 훈련을 다녀왔다.

 

그런데 내려오는 길에 대원의 증상이 심상치 않은 모습이다. 그는 고소를 처음 경험하는 것이라 상당히 불안해했다.  마음을 진정시키고 아스피린을 먹이며 내가 알고 있는 대처법을 일러주었다.  


다음날, 고소 순응을 위해 4,800m의 파츠코프(Pastukhov) 바위를 목표로 출발했다.

고소 증세가 심한 한 명은 바렐산장에 남았다.   

고소순응을 위해 운행에 들어간다. 고산에서 고소는 이기는 상대가 아니고 잘 관리해야 하는 친구다.


프리웃산장에 도착하니 또 한 구의 시신이 바렐산장으로 운반되고 있었다. 어제 운반되었던 시신과 일행이었다고 한다. 이틀새 시신을 두 구나 본 우리는 충격이 이만저만한게 아니었다.  

처음으로 설산에 도전하는 대원들의 사기를 많이 떨어뜨렸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경각심을 더욱 불러일으켰다.   


어렵사리 파츠코프 바위에 오르니 동봉이 손에 잡힐 것처럼 가까웠다. 발 아래 새하얀 구름과 파란 하늘이 파노라마로 펼쳐져 있었다.

눈 쌓인 높은 봉우리가 아름다웠다. 고소 때문에 아팠던 머리가 깨끗해지는 느낌이었다. 고소 순응을 마치고 바렐산장으로 내려오니 눈구덩이에 다른 십자가가 꽂혀있다. 아마도 오전에 프리웃산장에서 운반된 그 시신인 것 같았다.   

작가의 이전글 초오유(4) 7대륙 원정의 서막을 올리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