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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영조 Jan 31. 2018

초오유(4)
7대륙 원정의 서막을 올리다

세계 7대륙 최고봉 원정의 기록


빨리 시간이 흘러 날이 밝으면 출발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전진캠프롤 출발하며


나홀로


21일 오전 2시 30분, 한밤중에 억지로 몸을 일으켜 가까스로 스프 한 봉지를 끓여 입을 적셨다. 비좁은 텐트에서 장비를 걸치는 게 참으로 죽을 맛이었다. 


어렵게 장비를 꾸리고 텐트 밖으로 나간 시간은 오전 4시 30분. 무지막지하게 몰아치는 강풍 너머 별들이 정신없이 반짝이고 있었다.


호흡을 가다듬고 동료에게 출발하자고 했지만, 아직 결정을 못한 듯 별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셰르파 역시 컨디션이 좋지 못해 오를 수 없단다.


그 때 앞서 출발했던 순천제일대 팀이 등정을 포기하고 돌아오는 모습이 저 멀리 보였다. 상황을 물어보니 울산대 팀 역시 8,000m 지점 록밴드에서 악천후 때문에 하산하는 중이란다.


“이젠 나 혼자만 남았다.”


혼자서 초오유의 봉우리의 길을 찾아 오르기 시작했다.이 고공의 끝없는 암흑눈밭에서 점 하나도 안 되는 헤드랜턴에 의지해 전진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도 모르겠다.

팔다리를 옥죄는 강풍과 머리를 빠개는 고소를 뚫고 드디어 록밴드 하단에 도착했다.


하지만 여기까지였다. 


도저히 길을 찾을 수 없었다. 


한밤중 생전 처음 와본 산에서 길을 찾는 것도 쉽지 않을 텐데, 여기는 거대한 히말라야의 8,000m 어느 곳이었다.아무런 생명체도 살지 않는 곳,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이곳에 나 홀로 서 있었다.


“도대체 어디란 말인가?”


몸을 얼음바닥에 쉴 새 없이 내동댕이치는듯한 바람과 추위에 정신이 혼미해지고 있었다. 


마음 깊은 곳에서 갈등이 밀려오기 시작하더니 어느새 산 전체가 나를 누르는 것 같았다. 아무리 돌아봐도 길은 없었다. 설사 길을 찾더라도 이 어두운 눈보라 속을 뚫고 가는 것이 가능할까?

마음이 요동쳤다. 이곳은 종이 한 장 차이로 삶과 죽음이 공존한다. 그리고 이제 그 중 하나가 서서히 커지고 있다. 시간이 갈수록 가만히 서 있는 것조차 죽음으로 나아가는 것이라는 공포가 밀려왔다. 


마음을 고쳐먹어야만 했다.

돌아서는 마지막 지점에서 가슴에 품었던 회사기와 가족사진을 꺼냈다.


“이제 내려가는 길뿐이다.”


어쩌면 하산이 아니라 탈출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럼에도 목표를 뒤로하고 딛는 한 걸음 한 걸음이 무거워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 욕심은 위로 가고 본능은 아래로 가니 몸과 마음이 분리되는 것 같았다.


얼마나 내려왔을까? 

정상을 향하는 목포팀을 만났다. 위쪽 상황을 자세히 알려주고 성공을 빌어줬다. 


저들은 위로 가고 나는 내려가는 현실이 비참했다. 

한참을 내려가다가 문득 돌아봤다. 

어둠속의 눈보라가 여전히 초오유를 휘감고 있었다. 그리고 저 멀리 아래를 향하는 불빛의 무리가 보였다.


“목포 팀도 포기구나….”


서러움


제3캠프를 거쳐 제2캠프까지 내려와 ABC로 “실패”라고 짧은 무전을 날렸다. 


텐트 안에서 햇살을 받으니 온기가 몸에 퍼지며 녹아서 바닥에 달라붙는 듯 했다. 

따뜻했다. 

편안했다. 

저절로 잠이 왔다. 

그리고 눈물이 흘렀다.


억울했다. 

여기 오기까지 노력하고 또 노력한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서러움이 복받쳤다.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22일, 날이 밝자마자 ABC로 향했다. ABC에 도착하니 또 다시 눈물이 쏟아졌다.


“또 다시 이런 기회가 있을까?”


록밴드에서 길을 찾아 정상으로 갔어야 했다는 생각이 밀려왔다. 상황이 어렵다고 물러난 게 핑계 같아 부끄러웠다.


ABC에 도착하니 비로소 체력이 바닥났다는 사실이 말단세포까지 전달되는 느낌이다. 몰골도 말이 아니었다.


정신없이 얼마나 잤을까. 잠자리에서 일어나니 23일 정오다. 


이제는 정리를 해야 할 때다. 내일이면 짐을 옮길 야크가 온다. 장비를 정리하며 올려본 초오유에 구름띠가 둘러쳐있었다.

40일전 가던길을 되돌아 오는 코다리 마을에서.

새로운 시작


초오유를 뒤로 하고 내려오는 길, 머릿속에 문득 전광석화가 번뜩였다.


“세계 7대륙 최고봉을 스스로 오르리라.”


등 뒤에서 나를 굽어보고 있는 ‘깐깐한 청록의 여신’ 초오유에게 굽어 살펴주십사 부탁했다.


한국으로 온 나는 곧 일상으로 복귀했다. 나는 직장인이니까. 그렇게 몇 달은 별 탈 없었다.

집에 돌아온 나를 보고는 무섭다며 도망가는 큰 아이와의 불편한 상황.


그 해 겨울, 변화가 찾아왔다. 그 변화가 무엇인지 정확하게는 몰랐다. 하지만 뭔가 목표와 계획을 세우라고 집요하게 나를 재촉하는 무엇이었다. 히말라야의 산바람이 내 몸 속으로 들어온 것 같은 기분이었다.


“깐깐한 청록의 여신이 닦달하는 것인가?”


며칠 많은 고민을 했다. 가족, 직장, 돈, 시간 …. 그리고 결심했다.


“가자! 7대륙 최고봉으로!”


마음속에 명확히 새겼다. 나는 초오유에서 그것을 가져왔던 것이다. 새로운 꿈을 말이다.

초오유에 에너지를 다 쏟아부은 나. 체중이 12kg나 빠졌다.



원정일지 


2000년 8얼 22일 김포공항 → 홍콩  → 카트만두

23일 목감기로 고생

25일 중국대사관 비자신청, 한국인 의사 만남

26일 티베트 국경마을 코다리 도착

27일 니알람(3,700m)으로 이동, 고소적응 훈련

29일 딩그리 도착

30일 베이스캠프(4,800m) 구축 후 딩그리 복귀


9월 1일 전진캠프로 이동 시작, 중간캠프에서 숙영

2일 전진캠프(5,700m) 도착

4일 라마제

5일 제1캠프(6,500m) 구축

7일 제1캠프로 물자 수송

8일 가족영상편지 받음

10일 제2캠프(7,400m) 구축  

12일 추석, 전진캠프에서 차례

12일 제1캠프 진입

14일 제2캠프 진입

15일 전진캠프로 복귀

16일 공격 1조 정상등정 성공

17일 제1캐프 진입

18일 제2캠프 진입

19일 셰르파 교체

20일 제3캠프 도착

21일 단독 정상 공략 실패 후 제2캠프로 복귀

22일 전진캠프로 복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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