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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영조 Jan 29. 2018

초오유(3)
고소는 괴로워

세계 7대륙 최고봉 원정의 기록

9월 13일, 기대 반 두려움 반으로 ABC를 나섰다. 물자를 나를 때마다 그토록 힘들게 느껴졌던 제1캠프 앞 깔딱고개도 순조로웠다.


제1캠프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바로 제2캠프로 향했다. 제1캠프부터는 만년설이 덮여 있는 설상등반이다.

1캠프에서 2캠프로 운행 중 주변 산군을 풍경으로.

제2캠프에 오르니 산과 구름이 발아래 펼쳐진 진풍경, 난생 처음 보는 풍광이 제법 감격스러웠다. 말로 표현 못할 무언가가 가슴을 두드렸다. 이 느낌 때문에 산악인은 죽을 고비를 넘기고도 다시 찾아오는 게 아닐까.


본대로부터 내일까지 7,600m 지점 제3캠프까지 고소 순응 등반을 하고 ABC로 복귀하라는 무전을 받았다.


다음날. 간밤에 눈이 많이 내려 제3캠프 등반을 접기로 했다. 화이트아웃(눈보라로 시야가 제한된 상황) 때문에 오전 내내 텐트에서 대기하다가 오후가 돼서야 하산을 시작했다. 하산 중 올라오는 공격 1조와 만났다. 성공을 빌어주며 서로를 보냈다.


 ABC에 도착하니 대장님이 반가운 소식을 전했다.


“9월 17일 정상 공격을 위해 출발하라.”

그곳에서 난 초오유 정상을 셀수 없이 바라보았다. 연신과 랑데뷰를 꿈꾸며.


엇갈림


공격 1조는 우리 조보다 하루 앞서 16일 초오유를 공략했다.


결과는 성공. 오전 5시에 제3캠프를 출발해 오후2시 45분 정상에 올랐다는 무전이 날아왔다.


베이스캠프의 분위기가 뜨겁게 달아올랐고, 덩달아 우리 팀의 사기도 한껏 올랐다. 인근 외국 원정대가 우리 캠프로 찾아와 축하해줬다. 이제 다른 원정대도 우리 1조가 닦아 놓은 길을 따라 앞 다퉈 정상 등정을 시도할 것이다.


 “이제 내 차례다!”

그곳에서 라마제는 일상이다. 산행 전 항상 기도를 올린다.

드디어 17일이 밝았다. 오늘은 제1캠프까지만 간다.


마침 제1캠프 앞 깔딱고개에서 하산 중인 1조를 만나 축하인사를 전했다. 덩달아 우리 조도 기분이 들떳다. 한 달음에 성공할 것 같았다.


캠프에 도착하니 예상치 못한 지시가 무전을 타고 날아왔다. 조난당한 다른 팀 대원 2명을 구조하라는 것이다.


이들은 앞서 무리하게 제2캠프로 진출하다가 강풍과 화이트아웃에 막혀 제1캠프와 제2캠프 사이에 있는 세락에 갇혔다는 내용이었다.


해가 저물면 상황이 매우 위태해지기 때문에 서둘러야 했다. 난 캠프에서 따뜻한 물을 준비하고 옆 텐트의 순천제일대 대원 1명과 목포 팀 1명이 구조에 나섰다.


천만다행! 다행히 멀지 않은 곳에 조난자들이 있어 무사히 데려올 수 있었다.


다음날 오전 10시 제1캠프를 출발해 오후 4시 30분 제2캠프에 도착했다. 하지만 오는 도중 대원 1명이 컨디션 난조를 버티지 못하고 ABC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자 심란함이 밀려왔다.


잠시 후 본대에서 세르파를 지원해준다는 무전을 받고서야 다시 힘이 솟았다.

좌부터 영학.우석형.나.미곤.관주. 모두 남원이 고향이다.

이곳은6,900m, 산소 농도가 정상치의 50%에 불과해 가만히 앉아 숨만 쉬어도 힘들었다. 내일은 상황이 좋아지길 기대하며 불편한 잠자리에 들었다.


19일이다. 기상이 좋지 않아 텐트 안에서 대기하던 차에 셰르파가 올라왔다. 그런데 셰르파 역시 컨디션이 좋지 않아 당장은 정상 공격에 동행하지 못하겠다고 말하지 않는가.


“그럼 차라리 오지를 말던지….”


스멀스멀 불안감이 피어올랐다. 날씨는 여전히 좋지 않은 상황에서 제3캠프로 진출하라는 무전이 계속 날아왔다.


“일생의 한 번뿐일 기회를 날씨 때문에 접을 수 없지.”


내일 제3캠프로 이동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마음으로 외쳤다.


“진짜 단 한 번의 기회다!”


9월 20일, 오전 11시에 출발해 오후 4시 30분 고도7,800m 제3캠프에 안착했다.


이 구간은 경사가 심한 설사면이 대부분이어서 체력 소모도 심했다.


아래에서 볼 때는 하늘을 뚫고 올라가는 듯 까마득했던 영봉들을 발 아래로 두니 신선이 따로 없었다. 구름 사이사이 섬처럼 고개를 내밀고 나를 올려보고 있는 히말라야의 봉우리라니.


감격도 잠시. 우리 공격 2조는 나와 우리팀 1명, 그리고 목포 팀도 2명, 셰르파 1명 등 총 5명이 함께 움직이는데, 텐트는 2~3인용 1동 뿐이었다.


그래서 우리팀 1명은 순천제일대 팀의 텐트로, 셰르파는 울산대 팀의 텐트에서 밤을 신세져야했다.


고소증세 때문에 뜬눈으로 지세는 밤, 텐트를 휘감으며 내달리는 강풍의 소음이 그치질 않았다. 우모복에 얼굴을 파묻어 보지만 추위를 어찌하지 못했다.


“이젠 집은 고사하고 베이스캠프가 그립다니.”


빨리 시간이 흘러 날이 밝으면 출발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나와 함께 했던 셀파 밍마. 죽도록 고생을 같이 했더니 나중엔 닮게 되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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