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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영조 Jan 25. 2018

초오유(2)
진짜 산사람 되기

세계 7대륙 최고봉 원정의 기록

초오유 남벽은 험준하기로 유명하다. 우리 원정대는 북쪽 능선을 공략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초보 원정


2000년 8월 21일 집을 나섰다. 김포공항을 출발해 홍콩을 거쳐 네팔 카트만두에 도착하니 만 하루가 걸렸다.모든 게 뒤숭숭했다. 낯설었다.


도착 이튿날부터 낯설음이 불편함으로 바뀌었다. 심한 감기몸살에 걸린 것이다. 낯선 환경에서 목이 붓고 열이 오르니 고생이 배가됐다. 그 와중에 짐을 꾸리고 비자를 신청하러 다니느라 컨디션은 더욱 낭패스러웠다.


다행히 카트만두로 의료봉사를 온 한국인 의사가 소식을 듣고 숙소까지 찾아와 주사를 놔준 덕에 한결 떨쳐낼 수 있었다. 목은 여전히 불편했지만 이정도로 호전된 것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26일, 카트만두에 도착한지 나흘 만에 장비와 물자를 트럭에 싣고 네팔-티벳 국경마을 코다리로 이동했다.


도로 곳곳이 유실돼 다른 차로 짐을 옮겨 싣기를 여러 번 반복하고, 그 때마다 순식간에 달라붙은 산거머리에게 시달리다보니 진이 다 빠져나가는 듯 했다.


어렵게 도착한 코다리에서 1박을 하고 다음날 아침 장무를 거쳐 니알람으로 향했다.


첫 고소


니알람은 고도가 3,700m다.


도착하니 곧 가슴이 답답해지며 걷기도 불편한 상태가 찾아왔다. 생전 처음 겪는 고소증세였다. 두통으로 불편한 상태에서 잠을 설쳤다.


이튿날 뜨는 둥 마는 둥 아침식사를 마치고 4,300m 급 앞산에 올라 고소에 적응하는 훈련을 시작했다.


“이러다가 무슨 일이라도 나는 게 아닐까?”


고소를 처음 겪었기에 온갖 불안감이 엄습했다.


그렇게 니알람에서 1박을 더 하고, 딩그리를 거쳐4,800m 지점에 있는 베이스캠프로 향했다.


첫 고소를 겪으며 초췌해진 모습. 뒤로 티벳고원이 펼쳐져있다.


진짜 등정이 시작되는 곳, 베이스켐프.


하지만 기쁨과 설렘도 잠시. 차량으로 빠르게 고도를 오르니 고소에 적응할 시간이 부족했던 것이다. 전날의 고소증세와는 비교도 안 되는 강도였다.


고소에 시달리나 못해 다시 내려가야만 하는 대원들이 속출했다. 결국 참다못한 나를 비롯해 몇 명은 딩그리로 돌아갔고, 증상이 심한 부단장은 니알람까지 내려가야 했다.


집이 그리웠다.


하루 동안 몸과 마음을 추스르니 고소증세가 좀 나아졌다. 하지만 여전히 두통은 심해서 아침식사를 아예 못했다. 그래도 전보다 좋아진 상태를 위안삼아 또 다시 베이스켐프로 향했다. 이번엔 차량이 없으니 두 발로 걸어가야 했다.


작은 행운이 찾아왔다. 마침 초오유 베이스캠프로 들어가는 미국원정대를 만난 것이다. 트럭을 얻어 타니 한결 기분이 좋아졌다.

 

디딤돌


9월 1일, 드디어 출정이다.

초오유 여신과의 첫 만남은 매우  맑은 날이었고 하늘과 여신은 마치 준비한 것을 내 보인 것처럼 완벽했다.


베이스켐프를 출발해5,700m 고지 ABC(전진캠프)로 향했다. 하루 만에 갈 수 없는 거리인지라 중간캠프에 들러 1박을 했다.


다음날 아침 여전히 날 괴롭히는 고소를 등에 얹고 서둘러 출발했다. 얕은 경사에도 발걸음을 땔 때마다 머리가 지끈거렸다.


“산사람의 꿈은 만년설을 직접 밟아보는 것, 이제 나도 진짜 산사람이 된다!”


생각할수록 기대감이 고소의 무게를 덜어내는 듯 했다.

Abc 전진캠프에서 캠프1에 오르는 너덜 사면이다. 고소적응과 물자 운송을 위해 이구간을 수도없이 오르고 내렸다.


ABC에 도착해 다시 적응기간을 가졌다. 어느덧 조금씩 고소에 적응해가고 있는 느낌이 들어 좋았다.


이곳에 머무는 동안 등정대의 필수코스인 라마제를 올렸다. 대원들의 사기가 오르고 원정대 전체에 활력이 넘쳤다. 고이접어 가져온 국립공원관리공단 깃발을 잘 보이는 곳에 달아놓으니 보기 좋아 뿌듯했다.


“내일은 제1캠프로 올라간다.”

베이스캠프 라마제단에 국립공원관리공단 깃발을 걸었다. 성공할 자신김이 넘쳤다


5일 오전 6시 30분, 이른 시간에 ABC를 출발해 8시간을 걸어 6,500m 지점까지 올라 텐트를 설치했다.


이곳이 제1캠프다. 제1캠프에 사흘 간 머물며 적응등반을 하고 등정에 필요한 물자를 옮겨놓은 뒤 ABC로 돌아갔다.


한국에서 선물이 왔다. 아내의 음성이 담긴 녹음테이프였다.


“애들과 잘 지내고 있어요. 어머니도 건강하시고요. 안전하게 등반하고 돌아와요.”


중간 중간 아이들의 옹알이가 들리니 더욱 서러웠다. 어머니는 내가 이곳에 온 줄 모르신다. 아내를 겨우 설득하며 얻은 교훈 에 따라 어머니에게는 아예 알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가족사진을 보니 참다못한 울음이 터졌다.


캠프에서


ABC에 온지 10일째, 내가 속한 2조가 제2캠프 구축을 위해 출발하는 날이다.


제2캠프는 7,400m 지점. 가는 길에 강풍을 만나 고전했다. 결국 우리는 견디다 못해 짐을 세락(빙하의 갈라진 틈)에 임시 보관하고 제1캠프로 후퇴해야 했다.


다음날 제2캠프 구축에 나선 운행조로부터 ‘제2캠프 구축 완료’ 무전을 받고 안도했다.


이제 최소 인원만 남고 ABC로 내려간다. 추석 명절을 쇠러.


근 보름 만에 세수를 하고 머리를 감았다. 경험자들로부터 전하는 얘기인즉, 머리를 따듯하게 해야 고소가 덜 하기 때문에 아예 물을 대지 않는 게 좋다는 것이다.


오랜 만에 머리를 감으니 나는 듯 상쾌하다. 동쪽을 향해 차례상을 차리고 인근에 있는 다른 나라 원정대를 초청해 모처럼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내일이면 제2캠프로 본격 진출하는 날, 기분이 설랬다.나는 공격 2조에 편성됐다.

원정대로 함께 간 친구 염봉섭이 그린 초오유의 여태. 그는 서양화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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