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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영조 Jan 24. 2018

초우유(1)
걸을 수나 있으면 다행이라고?

세계 7대륙 최고봉 원정의 기록


초오유 

초오유는 네팔과 중국령 티베트 국경지역에 위치한다. 

세계에서 여섯 번째로 높다.

초오유 남면은 2000m가 넘는 급경사벽, 북면은 완사면으로 이뤄져 있다.

세계 최초 등정은 1954년 오스트리아의 헤르베르트 티키와 제프 외힐러가 기록했다.

앞서 1952년 에베레스트 원정대 에드먼드 힐러리가 북서쪽으로 6,800m까지 오르다가 실패했다.

한국인은 1989년 대구경북연맹 팀이 서면으로 등정했다고 발표했지만 의혹이 제기돼 인정받지 못했고, 1992년 울산-서울 합동원정대 남선우와 김영태가 등정에 성공한 것으로 기록됐다.


“뭘 그렇게 중얼거려?”


직장 동료가 물었다. 나는 그 때마다 히죽 웃는 미소로 답했다. 그 무렵 나는 잠깐의 시간이 날 때마다 혼잣말로 되뇌었다.


“나는 갈 수 있다…, 나는 갈 수 있다….”


그러면 나는 어느새 새파란 하늘을 뚫고 치솟은 히말라야의 하얀 고봉을 오르고 있었다. 마음껏 상상했다. 그리고 다짐했다.


“나는 간다!”


세상이 온통 떠들썩했던 밀레니엄의 해 2000년. 초오유 해외원정대에 포함된 나는 히말라야를 오른다는 설렘에 들떴다.


전북 남원에 세계에서 6번째로 높은 봉우리 초오유 원정대가 결성됐다. 나의 생애 첫 해외원정이고, 그곳은 꿈에 그리던 히말라야다.


부서진 발목


내가 갈 곳은 고도 8,201m 초오유. 그 유명한 에드먼드 힐러리도 6,800m 부근에서 돌려보낸 깐깐한 청록여신의 봉우리.


초오유, 산스크리스트어로 바람의 여신, 청록의 여신이라는 뜻, 히말라야 산군 6위의 당당함이 보인다


하지만 그곳에 가기도 전에 내가 넘어야 할 더 거대한 봉우리는 현실 그 자체였으니. 당장 직장문제가 10,000m급의 까마득한 바위덩이였다.


장기간 원정을 위해선 휴직을 하는 길 밖에 없고, 그 기간 동안은 당연히 무급이었다.


경제적 부담에 더해 원정기간 내내 나를 걱정하며 밤잠 못 잘 아내와 네 살배기 아들과 두살배기 딸은 그 바위덩이에 몰아치는 칼바람 같았다.

"큰아이 4살 아들과 작은아이 2살 딸" 난 이 사진을 가슴에 품고 집을 나섯다.

어렵게, 어렵게 말을 꺼냈지만 마음속엔 미안함이 한가득했다.


제법 오랜 시간이 걸렸다. 졸졸 쫓아다니면서 ‘무사히 다녀올 테니 걱정 마’라는 내가 얼마나 답답해보였을까.


4년 전, 발목에 깁스를 하고 병상에 누워 있는 내게 아내가 말했었다.


“당신 이제 산은 포기해야겠네.”


또 나를 가로막는 벽은 바로 나, 내 발목이었다.

4년 전 암벽등반을 하다가 추락해 오른쪽 복사뼈가 여섯 조각났다. 암벽등반을 해본 사람이 없었던 남원에서 후배를 양성하다가 닥친 사고였다.


“걸을 수나 있으면 다행이겠네요”


의사의 말을 듣는 순간, 등반인생이 영원히 끝났다는 자괴감에 한숨과 눈물이 쏟아졌다. 몇 달 동안 목발을 짚으며 불안과 절망에 빠졌다.


다행히 수술 결과가 좋아서 걷는 것은 문제없게 됐지만, 걸을 때마다 들리는 ‘우두둑’소리가 예전과 같지 않음을 알려왔다.


사고 후 내 발목의 구부러짐은 정상 상태의 60% 정도만 가능했다. 그래서 경사진 곳을 걸으면 몸의 균형이 쏠리고, 이를 막으려고 오른발 뒤꿈치를 들어 걸으면 장딴지 근육이 금세 피로해졌다.


그래도 이게 최선의 결과였다.


왼쪽 발목도 성치 않았다. 운동 중 접질린 발목을 파스만 바르며 방치했다가 이후 ‘상습 꺽임’이 자리를 잡은 것이다.


장애물 제거


이런 상태로 히말라야를 오를 수 있을까? 이번 기회를 놓치면 영원히 포기하게 될 것 같았다. 포기한다는 생각을 아예 지워버렸다. 그리고 걸림돌을 하나씩 해결하기로 마음먹었다.


당장 돈이 없었다.

최소 500만 원!

평소엔 50만 원도 무서워서 못 쓰는 내가 쿨~하게 회사 상조회에서 500만 원을 대출받고 차차 갚아가기로 했다. 산에 갈 때는 씀씀이의 개념이 달라지는 내가 신기했다. 


본격적인 새벽 훈련에 들어갔다.


오전 5시에 일어나 남원산성까지 자전거로 달리고, 산성에서 정상까지는 산악구보 하듯 뛰었다. 낮에도 시간이 날 때마다 운동장으로 뛰어가 인터벌훈련을 하며 심폐기능을 확장시켰다.


평생을 피우던 담배도 이 때 단숨에 끊어버렸다. 그렇게 원정대가 출발하기 전 7개월 동안 매일 나를 단련했다.


첫 해외원정이라는 설렘, 꿈에 그리던 히말라야를 향한 기대가 가득했다.


“나는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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