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고개 진미용실

by 황 영


나의 일곱 살은 온통 분홍색과 보라색 플라스틱 구르프, 그리고 코끝을 찌르는 알싸한 파마약 냄새로 박제되어 있다. 잠들기 전 엄마를 안으면 늘 엄마의 손끝에서는 아세톤 냄새가 났다. 차갑고 날카롭지만, 세상의 모든 얼룩을 말끔히 지워낼 것 같은 든든한 냄새. 나에게는 그 어떤 꽃향기보다 따뜻한 냄새였다. 광주 월산동, 서부경찰서 앞 사거리에 위치한 ‘진미용실’은 엄마의 일터이자 우리의 집이었으며, 나라는 작은 행성이 세상을 구경하는 유일한 관측소였다.


미용실 입구에는 빨강, 파랑, 하양이 섞인 원통형 간판이 쉼 없이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나는 그 삼색 줄무늬가 서로를 잡아먹으며 만들어내는 기묘한 소용돌이를 넋 놓고 바라보곤 했다. 엄마는 그 안에서 가위 하나로 손님들의 머리 위에 소담한 꽃밭을 만들거나, 꼬불꼬불한 라면 가닥을 심어주었다. 가위가 허공을 가를 때마다 ‘삭삭’하고 잘려 나가는 머리카락들은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먼지처럼 바닥에 쌓였다.


내가 세상과 만나는 방식은 미용실 앞 낡은 나무 의자나 옆집 월산상회의 낮은 평상에 엉덩이를 붙이는 것이었다. 그곳에 앉으면 돌고개 사거리라는 거대한 무대가 한눈에 들어왔다. 농성동 쪽으로 향하는 6번 버스가 내뿜는 시커먼 연기, 머리에 나물바구니를 이고 양동시장으로 향하는 할머니들의 바쁜 발걸음. 나는 누가 언제 지나가는지를 머릿속으로 세어보는 꼬마 서기였다.


“영준아, 월산상회 가서 설탕 한 봉지만 받아온나. 이모들이 커피가 너무 쓰단디, 설탕이 딱 떨어져 부럿다.”


엄마의 목소리에는 가위질 소리만큼이나 경쾌한 기운이 묻어 있었다. 나는 평상 위로 몸을 날리듯 월산상회로 달려갔다. 평상 한쪽엔 늘 하회탈처럼 웃는 아저씨가 있었다. 아저씨는 깊게 파인 얼굴 주름 사이에 항상 웃음을 숨겨두고 있었다. 그는 늘 그렇듯 나에게 눈깔사탕 하나를 건넸고, 내 머리를 둥글게 쓰다듬었다.


“우리 영준이, 오늘도 사거리 구경하느라 눈이 바쁘네? 저기 봐라, 저기. 오늘은 똥차가 엉덩이를 실룩거리며 지나가네.”


아저씨와 나는 사거리의 충실한 기록자였다. 흰 장갑을 낀 경찰 아저씨가 호루라기를 불며 팔을 휘두르면, 차들도 오토바이도 그 지휘에 맞춰 얌전하게 제 길을 찾았다. 그것은 세상이 아주 잘 돌아가고 있다는 신호였고, 내 관측소 렌즈에 담기는 가장 평화로운 춤이었다. 그 평화는 영원할 줄 알았다. 적어도 그날 아침, 발바닥 밑에서부터 기분 나쁜 떨림이 전해지기 전까지는 말이다.


처음엔 아주 가벼운 떨림이었다. 미용실 거울 옆에 세워둔 분홍색 파마약 병들이 ‘달그락’ 소리를 내며 서로 어깨를 부딪쳤다. 엄마의 가위질이 공중에서 멈췄다. 머리에 구르프를 잔뜩 만 채 꾸벅꾸벅 졸던 이모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 동시에 눈을 떴다. 진동은 곧 바닥 전체를 뒤흔드는 커다란 울음소리로 변했다.


사거리 너머 농성동 방향에서부터 짙은 국방색 쇠뭉치들이 기어 오기 시작했다. 유치원에서 보았던 그림책 속의 괴물보다 훨씬 커다란 탱크였다. 굴러가는 바퀴 대신 달린 두꺼운 쇠벨트가 아스팔트를 과자처럼 으깨며 다가오고 있었다. 탱크 주위에는 총을 든 아저씨들이 걸어왔다. 경찰 아저씨의 수신호는 이제 아무 소용이 없었다. 매캐한 쇳가루 냄새와 지독한 기름 냄새가 미용실의 파마약 냄새를 한순간에 집어삼켰다.


어느새 곁으로 온 엄마의 치맛자락을 꽉 쥐었다. 엄마의 손가락이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헬멧을 깊게 눌러쓴 군인들이 미용실 앞을 지나갔다. 그중 한 명과 찰나의 순간 눈이 마주쳤다. 헬멧 아래로 보이는 그의 눈은 며칠 밤을 잠들지 못한 사람처럼 핏발이 서서 섬뜩하게 붉었다. 그건 사람이 아니라, 무언가에 쫓기는 겁먹은 짐승의 눈빛 같았다.


월산상회 아저씨도 더 이상 웃지 않았다. 아저씨는 평소 보물처럼 아끼던 파란 플라스틱 의자를 챙겨 들고 서둘러 가게 안으로 숨어버렸다. 사거리의 모든 소음이 사라지고, 오직 탱크가 내뿜는 가래 끓는 듯한 쇳소리만이 사거리의 숨통을 조였다.


“영준아 들어가자. 문 닫아야 쓰겄다.”


엄마는 다급하게 셔터를 내렸다. ‘드르륵, 쾅!’ 무거운 쇠 셔터가 바닥에 부딪히는 소리와 함께 미용실 안은 순식간에 밤처럼 어두워졌다. 셔터는 세상과 우리를 가르는 차가운 벽이 되었다. 어두컴컴해진 미용실 안, 이모들은 ‘뭔 일이래’를 속삭이며 셔터 틈새로 바깥을 힐끗거렸다. 거울 속의 나는 유령처럼 창백해져 있었다. 구석 책상 위에는 어제 삼촌이 고무줄과 구르프를 엮어 만들어준 새총이 놓여 있었다. 나는 손때 묻어 팽팽해진 그 새총을 집어 들고 품에 꼭 안았다.


밖에서는 여전히 무거운 궤도차가 동네의 평화를 짓이기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의 눈부신 우주, 돌고개 사거리가 그렇게 붉은 눈의 군인들에게 천천히 먹혀가고 있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