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지문 속의 인문학> 우울할 땐, 떡볶이!

feat. 우울증 극복 시리즈, 심리학

by 황 영
Sadness in our culture is often considered an unnecessary and undesirable emotion. Numerous self­help books promote the benefits of positive thinking and positive behaviors, assigning negative affect in general, and sadness in particular, to the category of “problem emotions” that need to be eliminated.
[2016년 9월 고2 전국 연합 모의고사 29번]

우리 문화에서 슬픔은 종종 불필요하고 바람직하지 않은 감정으로 여겨진다. 수많은 자기 계발서들은 일반적으로 부정적인 감정, 특히 슬픔을 제거될 필요가 있는 ‘문제적 감정’의 범주로 지정하면서 긍정적 사고와 행동을 장려한다.


스트레스를 받는다.
우울해진다.
슬프다.
울고 싶다.


어떤 이유에서건 우울해지고 울고 싶다면, 우리는 울어야 한다. 표현하지 않고 억누르는 감정은 앞서 다룬 '스트레스'중에서 '디스트레스'와 같아 우리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하지만 사람들은 슬프고, 우울해지는 감정을 바람직하지 않은 것으로 인식하고 최대한 잊어버리려 노력하며 억누른다. 또한 그런 감정을 표현하는 타인들을 향해서도 옳지 않은 행동이라 수근덕거린다. '너 하나 때문에 분위기가 이상해졌다'며 설사 그런 마음이 들어도 결코 표현하면 안 된다는 인식은 전체주의적 성향이 강한 우리나라와 일부 아시아권 나라에 사회적 매너로 자리매김했다.


전체주의적 성향이 강한 사회에서는 각 개인보다 집단의 공동 이익에 더 많은 가치를 둔다. 그러므로 구성원에 불과한 한 개인의 부정적인 생각이 혹시라도 전염되어 전체의 이익에 악영향을 미칠까 걱정한다. 그로 인해 개인의 부정적인 생각은 표현하지 않는 것이 미덕이며, 개인 스스로 이것을 해결하여 전체의 해가 되는 일을 막아야 하는 것이 사회적 의무라 생각했고, 그렇게 행동하도록 교육받았다. 즉 개인이 가진 부정적인 감정도 '잘못됐고', 그 부정적인 감정을 표출하는 것은 더욱이 해서는 안될 '잘못된' 행동이라고 간주한다.


내가 왜 이러지.
저 때문에 불편하셨다면 죄송합니다.


슬픔을 느끼고 있는 개인은 오히려 상대를 불편하게 했다는 '죄책감'이 먼저 들게 된다. 그러한 죄책감에서 벗어나고자 우리는 영화 속의 배우처럼 눈물을 보이면서도 미소를 띠는 최고의 연기력을 선보인다. '괜찮지?'라는 말로 괜찮음을 강요당하면서, 사람들은 그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안 괜찮아도 '괜찮다'며 연기한다. 말 그대로 연기다. 연기는 연기일 뿐이며, 계속 지속되어서는 안 된다.





For many actors, they experience greater empathy and social cognition for their character, which may intensify identity boundary blurring. Audience attribution errors may increase distress in the actor, including fearing that their personality identity is not stable.
[2021년 3월 고3 전국 모의고사 23번]

많은 배우들이 자신의 배역에 대해 감정이입을 경험하는데, 그것은 배우와 배역 인물 간 정체성의 경계를 더욱 모호하게 할 수도 있다. 관객들의 좋은 연기에 대한 기대감은 배우 자신의 정체성이 안정적이지 못하게 되는 두려움을 초래한다.
Audience attribution errors : 직역하면 '관객의 귀속 오류'이다. 배우와 배역을 하나로 착각하는 현상을 가리키는 용어이다. 여기서는 이해하기 쉽게 '관객들의 좋은 연기에 대한 기대감'으로 의역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배우들의 연기 방법 중에 '메소드 연기'가 있다. 배우들이 그들의 생각과 감정을 배역에 완전히 몰입시켜 실제 인물처럼 연기하는 기법을 말한다. 메소드 연기를 하는 배우들은 그 배역의 영혼이 마치 자신의 몸에 '빙의'된 것처럼 작품 속뿐만 아니라 실제 삶에서도 그 배역의 모습으로 살아간다. 메소드 연기를 사용하는 배우들의 연기는 보는 이들에게 최고의 몰입감을 선사하며 찬사를 받는다. 하지만 이 연기에는 심각한 부작용이 존재한다.


영화 <다크 나이트>에서 '조커'역을 연기한 '히스 레저'가 바로 그 예다. 그는 악역 중의 악역이라는 '조커'의 연기를 한 달 동안 해야 했다. 연기를 제외한 모든 시간을 자신의 숙소로 배정된 호텔에 틀어박혀 지내며 오로지 영화를 위해 악마의 캐릭터를 연구했다. 그 노력이 반영된 연기를 보며 관객들은 그에게 최고의 '조커'연기였다는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하지만 '히스 레저'는 영화 촬영이 끝난 후 자기 자신과 배역 사이의 정체성에 혼란을 겪으며 힘들어했고, 결국 치료를 위해 복용했던 약물의 남용으로 생을 마감해야 했다.


maxresdefault.jpg 영화 <다크 나이트>에서 '조커'역을 연기한 '히스 레저'


배우가 배역에 빠져나오지 못하고 심각한 우울증을 겪으며 힘들어했다는 내용은 매체를 통해 흔히 접할 수 있는 사실이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자신의 감정대로 살지 못하고, 남들이 원하는 감정만을 보이며 사는 삶이 얼마나 위험한 것임을 깨달아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느끼는 감정과 억지로 보여줘야 하는 감정 사이에서의 괴리감은 당사자를 죽음으로 몰아갈 수 있을 만큼 좋지 않은 결과를 낳는다.


우리는 절대로 남에게 보이는 삶을 살아서는 안된다. 스트레스를 받는다면, 그 스트레스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며 무엇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지를 알아야 하고, 자신 스스로에게 혹은 타인에게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쉽지 않은 일이지만 해내야 하고, 도움이 된다면 그 방법을 배워서라도 실행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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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의 작가 백세희는 우리에게 스트레스와 슬픔을 극복하는 방법을 친절하고 겸손하게 소개한다.


“자기가 지금 힘든 줄도 모르고 사는 사람이 많아요.
이유 없는 허전함에 시달리면서.”

“우리는 울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
울고 싶을 때 울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 중에서



과거에는 심한 스트레스에서 오는 슬픔과 우울함을 계속 느끼는 것이 특별한 사람들에게만 찾아오는 희귀병이라 생각하고 행여 '정신이상자'라는 낙인이 찍힐까 봐 상담소나 병원에 가는 것을 꺼려했다. 용기를 내어 그곳에 갔더라도, 남에게 절대로 알리지 않았다. 심지어는 가족에게 알리는 일 조차 조심스러웠다.


다행스럽게도 심리학과 정신분석학의 연구는 각종 매체를 통해 이러한 인식을 서서히 바꾸기 시작했다. 병원과 상담소에서만 들을 수 있었던 내용이 대중에게 널리 알려지게 되었고 우울함에 관한 담론은 더 이상 개인이 쉬쉬하며 감추어야 하는 사실이 아닌 우리 모두가 함께 극복해야 할 사회적 이슈로 자리를 잡게 되었다. 이러한 심리학의 대중화는 슬픈 감정을 억누르며 표현하지 말아야 할 대상으로 생각할 것이 아니라, 그 감정 자체를 이해하고 표현하는 것이 인간의 삶에 훨씬 유용하다는 점을 사람들에게 인식시키는 데 공헌했다.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는 학문적인 어려운 용어를 배제하고 솔직하고 담백하게 자신의 치료과정을 이야기했고, 바로 이 점을 통해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이끌어 낼 수 있었다.





평소에 죽고 싶다고 입버릇처럼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나를 포함해 참 많다.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말이 씨가 된다'며 말리는 사람도 많다. 죽고 싶다고 말하는 편이 아무 표현도 하지 않는 것보다 훨씬 낫다. 이 말로 인해 대화가 이어지고 소통하고 공감하는 편이 말하지 않는 것보다 훨씬 더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매운 것을 먹으면 스트레스가 풀린다고 말한다.

매운맛은 고통이다. 오직 인간만이 고통을 즐길 수 있다.

떡볶이를 즐기며 먹는 것은 결국 내가 인간으로서 '살아있음'을 확인하는 결정적 증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