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지문 속의 인문학> 스트레스의 아버지?!

feat. 한스 셀리에, 우울증 극복 시리즈

by 황 영


Psychologists distinguish between two types of stress: good stress, called eustress, and bad stress, called distress. Many people would probably be surprised that stress can benefit you and your body, but that is exactly what eustress does.
[2013년 9월 고1 전국 연합 모의고사 30번]

심리학자들은 두 종류의 스트레스를 구별한다: '유스트레스'라 불리는 좋은 스트레스와 '디스트레스'라 불리는 나쁜 스트레스가 그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아마도 스트레스가 당신과 당신의 몸에 이익이 된다는 것에 놀라겠지만 그것이 바로 '유스트레스'가 하는 일이다.




우리에게 스트레스는 '만병과 만악의 근원'이다. 지인 중에 누군가 암에 걸려 투병 중이라는 소식을 들었을 때, 우리는 그 이유를 최근에 그 사람이 겪은 이혼 과정에서의 스트레스 때문일 거라 추측하며 안타까워한다. 내기 골프에서 돈을 잃어 상심에 빠진 친구에게도 코로나 때문에 장사가 안돼서 생긴 스트레스 때문에 실력 발휘가 안되었을 거라 말하며 위로한다. 웬만하면 집에 반려견을 혼자 두지 말라고 한다. 개가 스트레스를 받기 때문이란다. 선인장에 물을 자주 주면 안 된다고 한다. 선인장이 스트레스를 받아서 빨리 죽기 때문이란다. 사람이건 동물이건 식물이건 모든 질병과 불행의 원인을 스트레스 탓으로 돌려도 우리는 쉽게 고개를 끄덕거리며 수긍한다. 이처럼 스트레스는 우리에게 해로운 존재로 각인되었다.


반드시 막아야 할 위험한 전염병으로 인식하고 있는 스트레스가 나쁜 스트레스와 좋은 스트레스로 나뉜다고 지문은 말한다. 좋은 스트레스는 또 무엇일까? '소리 없는 아우성'이라는 표현처럼 역설법의 예일까? 이래저래 생각하니 머리가 복잡해지면서 '스트레스'가 쌓인다. 지금 내가 스트레스를 생각하면서 느끼는 스트레스는 좋은 스트레스일까, 나쁜 스트레스일까?


'스트레스'(Stress)의 어원은 '팽팽하게 죄다', '팽팽한 긴장감을 준다'라는 라틴어 'strictus'이다. '스트레스'(stress)라는 심리학적 용어, 정확하게는 '스트레스 과학'을 대중에게 널리 알린 사람은 헝가리 태생의 미국 내분비학자이며 의사였던 '한스 셀리에'(Hans Selye)였고, 위 지문에 등장하는 '디스트레스'와 '유스트레스'라는 개념도 그가 만들었다.





한스 셀리에(Hans Selye : 1907~1982) <출처 : 위키미디어>


1936년, 셀리에는 암소의 난소에서 추출한 호르몬의 일종으로 추측되는 어떤 물질을 쥐에게 주사하는 실험을 진행하고 있었다. 셀리에는 그 물질이 무엇이고, 어떤 역할을 하는지 알아내고 싶었다. 반응이 어떻게 나올까 부푼 기대를 안고 쥐에게 주사하며 변화를 면밀히 관찰했건만, 셀리에가 본 것은 하나같이 죽어나가는 쥐의 시체였다. 죽은 쥐를 해부해 본 셀리에는 죽음의 원인이 출혈성 궤양임을 알아냈고, 이것이 난소 추출물에 대한 부작용일 것이라 판단했다. 셀리에는 대조군을 만들어 일부 쥐에게는 무해한 식염수를 주사하고, 일부 쥐에게는 난소 추출물을 계속 주사했다. 결과가 달리 나올 것이라 믿었던 셀리에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무엇을 주사하든 쥐들은 똑같은 증상을 보이며 결국 죽음에 이르렀다.


한동안 어리둥절하며 방황하던 셀리에는 제리가 큰 망치로 톰의 머리를 후려 패는 것과 같은 충격적인 깨달음을 얻게 된다.


쥐의 사인이 몸에 투여된 약물 때문이 아니라, 실험과정을 통해 얻은 불쾌한 경험 때문이 아니었을까라는 추측을 하게 된다. 셀리에는 쥐를 다루는데 서툴렀다. 난소 추출물이나 식염수를 주사하기 위해 손으로 움켜 잡을 때마다 쥐는 주사 맞기 싫은 어린아이처럼 울고 발악하며 그의 손을 빠져나가 실험실 어디론가 숨었다. 숨은 쥐를 다시 실험대로 옮기는 과정에서 어떤 물리적인 힘이 가해졌음은 분명하다. 계속되는 실험에서 쥐는 반복적으로 불쾌한 경험을 할 수밖에 없었고, 바로 이것 때문에 쥐의 신체에 변화가 나타났을 거라 셀리에는 생각했다.


셀리에는 이를 증명하기 위해 약물 투여 대신 톰이 제리에게 하는 행동처럼, 쥐에게 고통을 주기로 결심했다. 몹시 추운 날 연구소 바깥에 내놓기도 하고, 엄청 더운 보일러실에 두기도 했다. 어떤 날은 쥐에게 엄청난 소음을 계속 듣게 했고, 또 어떤 쥐에게는 휴식 없이 계속 운동을 시키는 UDT조교의 악랄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심지어는 일부러 쥐에게 상처를 낸 뒤 살 수 있을 만큼 치료해 주는 사이코 패스 같은 일도 서슴지 않았다.


고통에 노출된 쥐는 거의 대부분 48시간 이내 소화기 궤양이 걸렸고, 면역체계에 장애가 생긴 뒤, 예외 없는 죽음을 맞이했다.


셀리에는 죽어나가는 쥐을 보며 자신이 치료하며 돌봤던 환자들을 떠올렸다. 애초에 한 가지 질병으로 치료를 받던 환자들이 치료과정을 통해 겪게 되는 고통으로 식욕이 떨어지고 열이 나는 등, 병이 더욱 악화되는 현상을 셀리에는 수도 없이 목격한 터다.


셀리에는 자신의 이러한 발견을 정리해 과학저널 '네이처'에 발표했다. 논문의 제목은 '다양한 유해 자극으로 생긴 증후군'이었고, 이 논문에서 그는 '손상을 입히는 자극의 유형에 무관하게 전형적인 증상이 나타난다'며 이를 '일반 적응 증후군(General Adaptation Syndrome, 줄여서 GAS)'이라고 이름 지었다. 얼마 후, 셀리에는 이 증상을 '스트레스 반응'이라고 불렀다.



일반적 적응 증후군의 진행과정 <출처 : 과학동아>
일반 적응 증후군의 진행과정 - 생명체의 항상성을 깨뜨리려는 변화, 즉 스트레스에 대응해 항상성을 유지하려는 반응이 일반 적응 증후군(GAS)이다. 스트레스가 장기간 계속되면 GAS의 세 번째 단계인 소진 단계로 넘어가 각종 질환이 나타난다.







셀리에는 '스트레스의 아버지'라 불리며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다. 하지만 이후 '스트레스 과학'을 전파하는 그의 일련의 주장과 행동에 대해 비난하는 이도 적지 않았다.


담배 제조사들은 셀리에에게 스트레스가 인간의 건강에 미치는 유해한 영향에 관한 논문을 써달라고 부탁하며 막대한 자금을 지원했다. 무시할 수 없는 거액의 지원을 받은 셀리에는 이 제안을 스트레스 없이 시원하게 받아들였다. 담배 제조사가 원하는 내용, 즉 흡연이 이 무시무시한 스트레스의 폐해를 예방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라는 내용을 논문에 실었을 뿐만 아니라, 미국 의회에 나가 이에 대해 증언도 했다. 오늘날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당시 사람들의 흡연에 대한 인식은 오늘날보다 관대했기 때문에 별 문제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셀리에의 행동에 대해 비난하는 사람들은 당시에도 없지는 않았다. 과학과 의학을 근거로 자신의 주장을 일관성 있게 펼쳐 나가지 못하고, 자본주의의 달콤한 힘에 굴복한 것처럼 보였던 셀리에의 행보는 여전히 씁쓸한 뒷맛을 남긴다.


또한 학계 전문가들은 셀리에가 범한 '논리적 비약'에 중점을 두며 냉소적인 반응을 보였다. 전문가들은 셀리에가 스트레스를 너무 광범위하게 정의했다며 셀리에의 주장을 평가절하했다.


셀리에는 쥐 실험에서
인간의 스트레스를 떠올리는
엄청난 '논리적 비약'을 감행했다.

- 켈리 맥고니걸 <스트레스의 힘> 중에서


켈리 맥고니걸(Kelly Mcgonigal)(1977~) : 스탠퍼드대학교(Stanford University)의 심리학 강사
켈리 맥고니걸 <출처 : 구글 이미지>


만약 셀리에가 쥐에게 가했던 고통을 인간이 겪는다면, 당연히 궤양 이상의 질병을 얻게 되고, 그 상태가 지속된다면 살아남을 인간은 거의 없다. 실험실의 쥐와 똑같은 경험을 겪는 인간은 극히 드물다. 또한 신체에 어떠한 고통을 받았다고 해서, 그것이 전부 스트레스로 인한 질병으로 귀결될 수도 없다. 전문가들은 쥐가 받았던 스트레스가 인간이 일상적으로 받는 스트레스와는 다르다는 사실을 셀리에가 간과한 것이라고 주장하며 셀리에의 이론에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셀리에는 이러한 학계의 비난을 받아들이는 듯,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해서 늘 궤양에 걸리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그는 디스트레스(distress, 해로운 스트레스)의 해독제 역할을 하는 유스트레스(eustress, 긍정적 스트레스)에 대해 이야기하며 스트레스의 대한 이미지를 개선하려 노력했다.


셀리에의 이 이론 또한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았다. 특히 미국 국방부는 2차 세계대전을 겪은 후 군인들이 받는 스트레스에 주목했고, 셀리에의 스트레스 이론을 적극 반영하여 군인들의 스트레스 관리에 애썼다. 군인들의 스트레스 관리가 군사작전 성공을 결정하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경험을 통해 인지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1970년대 중반까지 미국 내 스트레스 연구자의 3분의 1 이상이 미 국방부 소속 연구소에서 근무했다는 사실은 미군이 얼마만큼 스트레스 관리에 신경을 썼는지를 보여주는 방증이다.


Instead of seeing stress as a threat, the military culture derives pride from the shared resilience it creates.
[2020년 3월 고3 전국 연합 모의고사 22번]

스트레스를 위협적인 것으로 바라보는 대신에, 군대 문화는 스트레스가 만들어 내는 공유된 회복력에서 자부심을 끌어낸다.


군대는 현존하는 조직 중, 가장 극심한 스트레스를 경험하는 집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군인들은 동료들과 함께 적절한 수준의 스트레스를 이겨 내고 난 후, 남은 평생 동안 말할 수 있는 유의미한 이야깃거리와 끈끈한 소속감을 형성한다. 그렇게 형성된 에너지는 강한 전투력을 유지할 수 있게 함으로써 최강의 군대를 만든다.


군대를 제대한 우리나라 아재들의 대화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주제가 '군대 이야기'인 것에는 다 이유가 있다. 군 복무 시절 힘들었던 훈련에 대한 경험을 이야기하면서, 그 고난과 역경을 딛고 얻어낸 소중한 성취감이 제대 이후에도 삶의 긍정적 에너지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윗글에서 언급한 대로, 스트레스를 극복한 후 얻는 성취감, 즉 스트레스를 경험한 후에 오는 '회복력'을 통해 그들은 군대라는 조직과 자신에 대한 엄청난 자부심을 느낀다. '고생 끝에 낙(樂)이 온다'는 우리나라의 속담과 맞아떨어지는 부분이다. '고생'은 스트레스이며 '낙'은 성취감이다.


이것이 스트레스가 무한한 잠재력의 원천으로 바뀔 수 있음을 보여주는 '유스트레스'의 좋은 예이다.






스트레스는 항상 존재하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스트레스가 자신에게는 물론 타인에게도
반드시 유용하게 쓰일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 한스 셀리에



셀리에는 생물학적으로 스트레스의 존재를 최초로 증명한 인물로 인정받는다. 셀리에는 그 공로를 인정받아 1949년 처음으로 노벨 생리 의학상 후보에 올랐다. 그 이후 총 17번 노벨상 후보에 올랐지만 단 한 번도 수상하지 못했다. 셀리에는 1982년, 75세의 나이로 사망하기 전까지 1500여 편의 논문과 40여 권의 책을 집필하며 자신의 스트레스를 인류를 위해 유용하게 사용했다.



나는 스트레스에 대해 생각하다 스트레스가 쌓여서 이 글을 썼다.

글을 쓰고 보니 내가 받았던 스트레스는 '좋은 스트레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