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탈레스, 소피스트, 플라톤
얼마 전 나훈아가 오랜만에 한국 음악계를 뒤집어 놓았다. '대한민국 어게인'이라 이름 지어진 콘서트에서 나훈아는 코로나 19 시국에 힘들어하는 국민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했다. 민소매에 찢어진 청바지를 입고 무대를 종횡무진하는 나훈아의 모습에서 하얗게 센 머리를 뺀다면 어디에도 70대의 모습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정점은 신곡 '테스 형'이었다.
테스 형, 세상이 왜 이래
왜 이렇게 힘들어
아 테스 형 소크라테스 형
사랑은 또 왜 이래
너 자신을 알라며 툭 내뱉고 간 말을
내가 어찌 알겠소
모르겠소 테스 형
처음 '테스 형'이 내 귀에 들릴 때 궁금증이 일었다. 10초 후에 '소크라테스'라는 가사가 들리자 의구심은 사라졌다. 일단 '소크라테스'를 '테스'라고 줄였고, 거기에 '형'이라는 호칭을 더했다. 세상에 '테스 형'이라니! 대중 앞에 얼굴을 드러내지 않았던 긴 세월 동안 세상의 진리를 찾기 위해, 사랑의 진리를 찾기 위해, 깊은 성찰의 시간을 보냈음을 국민에게 알리는 멋진 은유의 표현이었다.
수능과 모의고사 지문에 철학에 관한 내용은 많이 출제된다. 학생들에게 입에 게거품을 물고 철학의 중요성에 대해 강조하며 개처럼 물고 늘어지며 설명을 해도 학생들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이제 됐다. 한시름 놓았다. 훈아 형이 말했으니, 이제 우리는 노브레이크, 노빠꾸다. 반드시 꼭 알아야 한다.
바로 소크라테스에 관한 이야기들 말이다.
기원전 6세기, 탈레스를 시작으로 고대 그리스의 철학은 그 체계를 잡아 나가기 시작했다. 수학, 기하학, 건축, 천문학 등의 거대한 업적들이 쌓여 올려지게 되었고, 거기에 윤리학과 논리학이 더해졌다.
기원전 5세기 페르시아 전쟁 이후 아테네가 정치 문화의 중심지가 되면서 자연 중심이었던 철학적 관심이 인간 중심으로 쏠리게 되었다. 당시 중요한 역할을 한 담당한 철학자는 '소피스트(Sophist)'였다.
사전적의 의미의 'sophist'는 '고대 그리스의 소피스트'라는 뜻의 일반명사와 함께 '궤변가'라는 뜻을 가진다. '말만 그럴싸하게 잘하는 사람'이라고 소피스트을 생각한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해 폄하된 의미이다. '캠브리지 사전'에 의하면, 형용사 'sphisticated'는 '정교한, 세련된, 복잡한, 수준 높은, 지적인' 의미의 뉘앙스를 골고루 가지고 있다. 'sophia' 어원은 '지혜'이다. 소피스트들이 어떤 부류의 사람들이었지는 짐작 가능한 대목이다.
쉽게 이야기해 보자면, 당시의 소피스트는 광장에서 사람들을 가르치는 강사였고, 그 강의를 통해 인기를 얻고, 그에 따라 돈도 버는 일종의 '엔터테이너', 즉 연예인과 다를 바 없었다.
당시 아테네는 민주주의 문화가 활짝 꽃을 피우고 있었다. 누구나(여자, 노예를 제외한) 정치에 참여할 수 있었고, 자신의 의견을 많은 사람들 앞에서 논리 정연하게 피력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했다. 특히 당시 재판은 하루 만에 끝났다. 하루밖에 주어지지 않는 변론의 기회를 최대한 살리기 위해서 소위 '말빨'이 필요했고, 학교가 존재하지 않았던 아테네에서 말빨을 잘 가르치는 '소피스트'는 바로 슈퍼스타급 연예인의 대우를 받는 일인 지식 기업가, 컨설턴트였다.
당시 아테네 아고라 인근 플라카 지구는 오늘날 강남의 대치동 학원가와 다를 바 없었다. 당대의 인기 있는 모든 소피스트들이 한 곳에 모여 시너지 효과를 일으키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상도덕은 오다가 쌈을 싸 먹었냐며 소피스트에게 온갖 비난을 다 받는, 오늘날 트롤 짓을 하는 이가 등장한다. 그는 정치로 출세해보겠다고, 재판에서 꼭 이겨야겠다고 돈을 싸들고 온 사람들에게 가짜가 아닌 진짜의 지식을, 그것도 무료로 강의를 해 주겠다며 사람들을 소피스트들로부터 돌려세웠다. 그를 만나지 못한 사람은 있어도 한 번밖에 만난 사람은 없다는 입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준수하지 않은 외모와는 전혀 딴판인 촌철살인급의 말빨에 그를 만난 사람들은 빠져나올 수 없는 반전 매력에 빠지게 되었고, 머지않아 그의 이마처럼 눈 부시게 빛나는 지적 고귀함을 가까이에서 느끼고자 더욱더 많은 사람들이 그의 주변에 모여들기 시작했다.
할 거면 저 멀리 가서라도 할 것이지 그것도 그들의 본거지인 플라카 한 중심에서 벌어지는 이 광경을 목격하며, 소피스트들은 영업방해 아니냐는 항의와 함께 그를 견제하기 시작했다. 평소 아내의 악담 덕택에 강철과도 같은 멘탈을 소유하게 된 그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오히려 더 대담하게 소피스트 한 명, 한 명씩 찾아가 산파술이라 불리는 그만의 독특한 대화법으로 도장깨기를 시전 했다. 소피스트를 논리적으로 무참히 무너뜨린 그의 이름은 바로 '소크라테스'였다.
소크라테스는 시크함, 그 자체였다. 소피스트와 일대일로 맞붙는 상황에서 무표정으로 평정심을 유지했다. '삶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당신은 뭐라고 생각하느냐'라고 되묻고, 한참을 경청한다. 경청하면서 생기는 의문점에 소크라테스는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을 이어갔고, 결국 상대방은 말문이 막히거나 억지 주장을 해댔다. 상대의 비논리적인 억측을 인지한 소크라테스는 나지막이 마지막 말을 전하며, 태연히 등을 돌렸다.
잘 들었습니다.
저는 죄송하지만 잘 알지 못합니다.
이만 가보겠습니다.
소피스트들은 이게 뭐냐며 황당해하면서도 자신들이 이겼다며 제대로 된 자신의 목소리를 내지 못한 소크라테스를 보며 비웃었다. 옆에서 모든 대화를 기록하고 있었던 제자 플라톤은 몹시 당황스러웠을 것이다. 이 세상에서 누구보다도 현명하다고 믿었던 자신의 스승이, 소피스트들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어 주기를 원했건만, 결국 이해할 수 없는 질문만 계속 던지다가, '나는 잘 모른다'라는 일종의 패배 선언을 하면서 돌아서는 스승의 모습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도 자신을 보며 씩 웃어주는 스승의 모습을 보며 '정신승리'에 도취한 사람이라고 실망에 실망을 거듭했을지도 모른다.
스승에 대한 답답함과 울분, 굴욕감을 참지 못한 플라톤은 스승에게 질문을 던진다.
도대체 왜 모른다고 하셨습니까? 정말 모르시는 겁니까?
정신승리도 승리입니까?
플라톤을 비롯한 여러 제자들은 이제 마지막으로 스승의 변명을 듣고, 다시 전에 다니던 학원으로 돌아갈 참이었다.
나는 내가 모른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저들은 자신이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저들은 그저 아는 척만 할 뿐이다.
그래서 내가 가장 현명한 사람이다.
너희들은 너의 영혼을
저 가짜 지식을 파는
사람에게 맡길 수 있는가?
떠나는 제자는 한 명도 없었고, 무료 강의에 이 정도의 퀄리티 있는 강의는 기적이라며 제자의 수는 늘어만 갔다.
Who am I? This may sound like a question found on a freshman philosophy exam, but Socrates was serious when he told his students, “Know yourself.”
[2012년 9월 고1 전국 연합 모의고사 21번]
나는 누구인가? 이것은 신입생 철학 시험에서 발견되는 질문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자신의 학생들에게 “너 자신을 알라.”라고 말했을 때의 소크라테스는 진지했다.
'너 자신을 알아라.'라는 소크라테스의 명언은, '자신이 모르고 있는 것을 알아야 한다. 무지를 아는 것이 모든 앎의 시작이다'라는 의미를 가진다.
소크라테스의 인기가 하늘을 찌르는 이러한 상황을 소피스트들은 이해할 수 없었고, 그로 인해 더한 시기와 질투가 이어졌다. 결국 소크라테스는 '청년을 부패시키고 국가의 여러 신을 믿지 않는 자'라는 죄명으로 고소되었고, 배심원들의 내린 결정은 사형이었다. 소크라테스는 다른 유명인사들이 그러했듯, 도주할 수도 있었으나 태연히 독배를 들어마시고, 올곧이 죽음을 맞이했다.
'악법도 법이다.'라는 말을 이때 했다는 기록은 없다. 하지만 억울한 점이 있으면 밝히라는 배심원 앞에서 소크라테스는 법의 테두리 안에 지금까지 보호받으며 살았던 내가, 불리한 상황에 빠졌다는 이유로 법을 부정하는 것이 옳은가에 대한 회의가 든다라며, 억울하지만 죽음을 받아들이겠다는 시크함의 절정을 보여주었다.
소크라테스는 시대를 초월하며 관통하는 철학적인 중요한 질문들을 인간에게 던짐으로써, 각자 자신의 삶에 대해 성찰을 강요한다. 이것이 바로 모든 인문학의 근본이자 목적이다. 소크라테스는 위대함은 바로 여기에서 출발한다.
The Greek philosopher Socrates observed, “the unexamined life is not worth living.” For most people, however, reflection and self-examination do not come naturally. As much as any other kind of thinking, reflection requires solitude.
[2011년 6월 수능 모의평가 40번]
그리스의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검증되지 않은 삶은 살 가치가 없다.”라고 진술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자기반성과 자기 검증은 자연스럽게 오지 않는다. 다른 종류의 사고와 마찬가 지로, 자기반성과 성찰은 고독을 필요로 한다.
가치 있는 삶은 반드시 자기 스스로를 되돌아보는 반성의 시간이 필요하고,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혼자만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절대적으로 혼자 있는 시간이 부족한 현대인의 삶에서 반드시 필요한 부분이 아닐 수 없다.
One of the most difficult things many successful people do is to challenge their own beliefs. Socrates said it well when he said, “The unexamined life is not worth living.” But we need to add that the examined life is painful, risky, full of vulnerability. And, yet, to revitalize public conversation, we have to ensure that self-criticism and self-correction are accented in our individual lives, as well as in our society and world.
[2017년 4월 고3 전국연합 모의고사 19번]
많은 성공한 사람들이 하는 가장 힘들어하는 것 중 하나는 그들 자신의 신념이 흔들리는 것이다. 소크라테스의 “반성하지 않는 삶은 살아갈 가치가 없다.”라는 말은 이것을 잘 표현한다. 그러나 우리는 반성하는 삶이 고통스럽고, 위험하고, 취약함으로 가득하다는 것도 알아야 한다. 대중적 논의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우리는 자기비판과 자기 수정이 우리 사회와 세상뿐만 아니라 개인의 삶에서도 강조된다는 점을 확실히 인식해야만 한다.
개인의 자기비판, 자기 성찰은 결국 이 사회 전체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수능과 모의고사는 소크라테스의 명언 중 위의 인용 문구를 두 번이나 선택했다. 지금 우리는 소크라테스가 던지는 메시지가 무엇일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혼자만의 시간과 공간에서 뼈를 깎는 아픔으로 자신의 대한 반성의 삶을 살고 있는지 말이다. 세상에서 가장 우리를 화나게 하는 광경 중에 하나는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뻔뻔함이며, 자신의 잘못을 진심으로 뉘우치지 않고 거짓으로 위장하는 가증스러움이다. 스포츠계와 연예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이런 모습들이 이제는 사라졌으면 한다. 더 이상은 보고 싶지 않은 뉴스들이기 때문이다.
책을 읽고, 인문학적 소양을 쌓아야 한다. 그중에 제일은 바로 소크라테스가 우리에게 남긴 말들을 곱씹어 보며 자신을 되돌아보는 일이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훈아 형’은 ‘테스 형’의 깊은 경지에 범접한 사람임에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