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스파르타, 페르시아 전쟁, 살라미스 해전
이오이나인은 그리스 전역에 터를 잡지는 않았다.
개중 다수는 펠로폰네소스 반도의 북부,
그러니까 아티카 반도에 터를 잡았다.
이들은 바다 가까이에 정착해서
포도와 곡식, 올리브를 재배했다.
이들은 도시를 건설해서
아테나 여신에게 봉헌하기도 했는데,
아테나 여신은 호메로스의 서사시에서
항해자 오디세우스를 도와주었던 여신이다.
이 도시의 이름은 '아테네'이다.
<곰 브리치 세계사> P.69
기원전 500년경, 수많은 도시국가 중 최고의 폴리스(Polis), '아테네'가 탄생한 순간이다. 아테네는 페르시아와의 전쟁이 끝난 후, 오늘날까지 삶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현대 사고의 모든 기원을 만들었다. 정치, 철학, 과학 및 법 등의 모든 학문적 토대 또한 마련했다.
The origins of contemporary Western thought can be traced back to the golden age of ancient Greece, when Greek thinkers laid the foundations for modern Western politics, philosophy, science, and law.
[2014년 6월 수능 모의 평가 31번]
현대 서양 사고의 기원은 고대 그리스의 전성기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는데, 그때 그리스의 사상가들은 현대 서양의 정치, 철학, 과학 및 법의 토대를 마련하였다.
당시 기준, 인구 20만 명의 아테네가 오늘날 60억 인구에게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업적을 이룩하는데 걸린 시간은 100년도 채 되지 않았다. 짧은 기간 동안 서구 문명의 토대를 만들 수 있었던 아테네의 힘은 무엇이었을까? 고대 철학을 완성했던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를 배출할 수 있었던 배경은 또 무엇이었을까? 기원전 338년, 북부의 마케도니아에 의해 종말을 고하기 전까지, 도대체 아테네에는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3000년의 유구한 역사를 가진 이집트 왕국은 대제국 페르시아에 의해 한순간에 무너졌다. 당대 최고의 문명을 함락한 페르시아는 가히 세계를 정복할 수 있는 최강의 제국임에 틀림없었다. 당시 에게해를 비롯한 지중해 연안의 도시 국가들은 이러한 페르시아의 힘에 압도당하며 스스로 굴복하여 살길을 도모했다. 그러나, 작은 도시국가들로 구성된 그리스 연합은 이러한 당시의 대세에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다. 페르시아는 자신들의 통제를 따르지 않고, 에게해 연안을 시건방지게 나대는 그리스를 그냥 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기원전 490년, 페르시아의 왕 중의 왕이었던 '다리우스'는 그리스를 응징하기 위해 새로 정비한 함대를 출정시켜 전쟁의 시작을 알렸다.
페르시아 함대는 수많은 섬을 파괴하고 여러 도시국가를 함락했다. 아테네와 가까운, (그 유명한) 마라톤 지역에 도착한 7만 명의 페르시아 군은 1만 명밖에 되지 않은 아테네군과의 일전을 여유롭게 준비한다. 하지만, 난세가 영웅을 낳는 법. 아테네에는 전쟁영웅 '밀티아데스'가 있었다. 그는 유유자적하게 전장을 캠핑장으로 생각하며 즐기고 있었던 페르시아 군에게 기습공격을 가했다. 혼비백산하며 달아나는데 급급했던 페르시아 군은 치욕적인 패배를 당했고, 아테네군은 7 대 1 싸움을 승리로 이끈 전설로 기록됐다.
그리스를, 그리고 눈엣가시였던 아테네를 손에 넣지 못한 채 눈을 감은, 아니 눈을 감지 못하고 죽은 다리우스는 그의 아들 '크세르크세스'에게 그리스 정복의 야망을 넘긴다. 아버지의 못다 이룬 한을 풀기 위해 아버지보다 더 혹독하리라 다짐한 '크세르크세스'는 페르시아 왕국의 지배를 받는 모든 민족을 총동원에서 모은 100만 대군을 이끌고 아테네를 향해 진군했다.
동원된 군사가 40만이라는 주장과 100만이 넘었다는 주장이 있다. 이는 아직 정확하게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당시 기준으로 봤을 때, 압도적으로 페르시아가 우세했다는 점에는 이견이 없다.
아테네를 중심으로 연합군을 형성한 그리스 군은 이미 겁에 질려 있었다. 하지만 유일하게 쫄지 않는 300명이 있었고, 이들은 아테네의 침략을 막기 위해 '테르모필라이'라는 좁은 길목에서 페르시아 군을 기다렸다.
이것이 영화 '300'으로 유명해진 '테르모필라이 전투'이며, 그들은 바로 '스파르타'였다.
역사적인 아이러니가 느껴지는 대목이다. 훗날 스파르타는 아테네를 침공하여 함락시킨다.
자크 루이 다비드 : <플라톤의 아름다운 복수! 편 참조>
In 480 B.C. Xerxes, the son of the King of Persia, prepared to invade Greece. Sparta agreed to help Greece to stop the invading Persians. But on the third day, owing to a Greek traitor, Greece was defeated and every man died. However, the battle at Thermopylae is celebrated as an example of heroic resistance against overwhelming forces.
[2012년 3월 고2 전국 연합 모의고사 38번]
기원전 480년, 페르시아 왕의 아들 크세르크세스가 그리스를 침공할 준비를 했다. 스파르타는 침공하는 페르시아를 막기 위해서 그리스를 돕는 것에 동의했다. 그러나 세 번째 날, 한 그리스인 배신자 때문에, 그리스 군은 패배하고 모두 전사했다. 그러나 테르모필레에서의 전투는 압도적인 힘에 대항한 영웅적인 저항의 일례로 칭송받는다.
지나가는 나그네여, 가서 스파르타 사람들에게 전해 주시오.
우리가 그들의 명령을 이행하고 이곳에 누워 있다고.
헤로도토스의 <역사> 7권 중에서
헤로도토스 : 그리스의 역사가, 역사학의 아버지
페르시아 군은 이후 아테네에 도달했고, 불을 질러 아테네 전부를 잿더미로 만들었다. 스파르타와 연합군의 패배를 예측한 아테네 시민들은 이미 아테네를 비우고 살라미스 섬으로 피신한 후였다. 아버지의 못다 이룬 한을 풀려는 크세르크세스에게 관용이란 없었다. 남아 있는 아테네 시민과 군병력을 모조리 제압하기 위해 크세르크세스는 대규모의 페르시아 함대를 살라미스로 보냈다.
신은 아테네에게 두 번째 영웅을 허락했다. '테미스토클래스'였다. 페르시아와의 해전을 예측하고 페르시아보다 작지만 빠른 함선을 미리 준비했던 테미스토클래스는 많은 섬이 밀집되어 있는 해협에서 종횡무진하며 필사적으로 전투를 벌인 결과 기적과도 같은 대승을 거둔다. 이것이 바로 '살라미스 해전'이다.
'살라미스 해전'은 인류사에 있어 매우 가치 있는 전투였다. 이 전투의 승리로 인해 고대 그리스, 특히 아테네의 입지가 강화되었고 이후 황금기를 통해 서구 문명의 기틀이 조성되었기 때문이다.
그리스와 페르시아를 세계의 전부라고 생각했던
당시 아테네 시민들에게
페르시아 전쟁은 '세계대전'이었다.
유시민 <역사의 역사> 중에서
세계대전의 승리로 아테네는 '세계'를 얻었고, 세계를 '아테네의 세상'으로 만들었다.
승전 후, 소크라테스는 평화롭게 플라카 지구와 아고라를 거닐며 사람들과 철학적 대화와 토론을 나누는 호사를 누렸고, 그를 완성시켜준 최고의 제자 플라톤도 만나게 된다.
승전 후, '페리클래스'는 불타버린 아테네를 재건하기 위해 오늘날까지도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로 꼽히는 아크로폴리스와 파르테논 신전을 비롯한 여러 건축물들을 계획했고, 그에 지시에 따라 그리스 예술가들은 아름다운 조각들로 아테네를 채워 나갔다.
그리스의 찬란한 시대는 오래지 않아 막을 내렸다.
그리스인은 다른 모든 것은 할 수 있어도
평화는 유지할 줄 몰랐다.
<곰브리치 세계사> P. 106
역사가 증명하듯, 지리적으로 가까운 나라들의 사이가 좋은 경우는 극히 드물다. 아테네와 스파르타도 결국 파국으로 치닫게 된다. 아테네와 스파르타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이 발발했다. 전투로 특화된 스파르타는 곧장 아테네로 쳐들어가 아테네를 또 한 번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페르시아와의 전쟁을 통해 얻은 교훈으로 외세의 침략을 방어하기 위해 쌓았던 아테네의 성벽도 모조리 파괴했다. 엎친 데 겹친 격으로 장티푸스로 추정되는 전염병이 돌아 전쟁 중 아테네의 상황은 점점 더 악화되었다. 아테네인이 존경하는 지도자 '페리클레스'도 이 전염병으로 죽었다.
스파르타의 거센 압박과 봉쇄에도 1년을 꿋꿋이 버텼던 아테네는 결국 굶주림으로 항복하고 말았다. 전체주의 스파르타가 민주주의 아테네를 완전히 해체한 순간이었다. 하지만 스파르타의 승전의 기쁨도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그리스 북부 산악 지대에 살았던 마케도니아인들은 하늘이 주신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필리포스'왕은 손수 진두지휘하여 전쟁으로 약해진 그리스를 침략했다. 이미 지쳐버린 스파르타와 그리스 연합군은 마케도니아의 침략을 막을 수 없었다. 결국 필리포스의 아들 '알렉산드로스'에 의해 정복을 당한 스파르타는 마케도니아 제국의 손아귀에 들어갔다.
필리포스 : 마케도니아 왕.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아버지. 국력을 키워 아들 알렉산드로스가 대제국 건설할 토대를 마련해 주었다.
영원히 역사 속에 묻힐 뻔한 아테네와 그리스 문화는 알렉산드로스에 의해 살아남았다. 알렉산드로스는 그리스 문화의 가치를 인정했고 이를 전 세계에 널리 전파하고 싶어 했다. 싸움과 전투에 능한 것뿐만 아니라,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으며 이는 훌륭한 스승, '아리스토텔레스'의 가르침 덕분이었는지도 모른다.
기원전 5세기, 눈부시게 찬란한 문화, 과학, 군사 기술을 소유했던 그리스의 도시국가는 결국 내부의 분열로 인해 종말을 맞이했다. 짧지만 찬란했던 그리스, 그중의 최고의 폴리스였던 아테네는 평화의 중요성도 후세에 남겨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