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아테네, 포세이돈, 평화의 상징
We can infer that there was prosperity in ancient Athens because this was a time that saw the planting of many olive trees.
[2010년 9월 수능 모의 평가 41번]
올리브를 많이 심었던 시기의 고대 아테네는 번성하고 있었다고 추론할 수 있다.
모의고사 지문에서 올리브 나무를 다뤘다. 샌드위치를 먹을 때 빼 달라고 했던 올리브다. 맛도 없다. 색깔도 검은색이든 녹색이든 맘에 안 든다. 이토록 싫어하는 올리브가 한 나라의 번영과 관련이 있다니, 믿고 싶지 않다. 하지만 수업 시간에 올리브에 대해 거론하지 않고 그냥 넘어가기에는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다. 분명 숨겨진 이야기가 있을 것이다.
고대 아테네의 수명은 흥망성쇠가 뚜렷이 보일 만큼 역동적이었지만 허망할 정도로 짧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테네는 서구 문명의 시작점이라 불릴 만큼 지대한 유산을 후세에 남겼다. 그렇다면 올리브 나무를 '많이' 심은 것이 아테네의 번영과 무슨 상관이 있었을까? 아테네 인들에게 올리브 나무는 어떤 의미였을까?
올리브와 아테네의 관계는 그리스 신화를 통해 엿볼 수 있다. 바다의 신 '포세이돈'과 전쟁과 지혜의 신 '아테나'는 아티카 지역의 한 도시를 갖기 위해 경쟁을 벌인다. 이 곳 사람들이 가장 필요로 할 선물을 한 가지씩 주고 이들에게서 선택받는 이가 이 도시의 수호신이 되기로 합의한다.
포세이돈은 바위산이 많은 아테네에 물이 가장 필요하다고 여겼다. 자신의 삼지창으로 바위를 찔러 샘물이 솟아오르게 했다. 물만큼 필요한 게 있을까? 포세이돈의 선공에 아테나는 깊이 고민했다. 물만큼 그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 결심을 굳힌 아테나는 들고 있던 창을 바위산을 향해 던졌다. 바위산에 꽂힌 창은 열매가 가득한 올리브 나무가 되었다. 아테나는 이곳 사람들에게 걱정 없이 먹을 수 있는 올리브를 선물했다.
물과 먹거리를 선물 받은 사람들은 포세이돈과 아테나의 호의에 크게 감복했다.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같이 어려운 질문에 사람들은 갈등했다.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우물쭈물거리는 사람들은 지중해성 기후의 뜨거운 햇빛 때문에 땀을 많이 흘렸다. 사람들은 햇빛을 피하고자 자연스럽게 올리브 나무 밑 그늘로 모여들었다. 시원한 그늘 아래서 사람들은 행복했다. 나무 위에 탐스럽게 열린 올리브를 올려다볼 여유도 생겼다.
아테나는 사람들의 선택을 받았다. 회색빛의 척박한 바위를 뚫고 끈질기게 솟아나 자라나는 올리브 나무가 이곳 사람들에게 더 어울린다고 생각한 포세이돈은 자신의 패배를 인정했다. 이렇게 아테나가 수호신이 되었고, 사람들은 도시를 '아테네'로 이름 지었다.
올리브는 아테네 사람들에게 실용적 자산을 넘어 자신들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하나의 상징이 되었다.
올리브 나무는 다른 나무에 비해 천천히 자란다. 지금은 품종개량을 통해 수확까지 오래 걸리지 않지만, 당시 올리브 나무에 열매가 열리는데 30년이 걸렸다. 시간도 시간이지만, 열매를 맺는 것 자체도 쉽지 않았다. 타는 듯한 열기와 메마른 토양을 이겨내야만 했다. 섭씨 40도를 넘는 기온에서도 언제나 푸르름을 유지하는 올리브 나무는 긴 인고의 시간을 이겨낸 후 열매를 맺는다. 열매와 잎, 목재, 풍부한 기름을 제공하는 올리브 나무는 아테네 인들에게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자산이었다. 또한 어떠한 고난과 역경에도 굴하지 않고 목표를 이뤄내야 한다는 교훈도 주었다.
기원전 480년, 페르시아의 '크세르크세스'에게 아테네가 함락되던 날, 아테네 인들의 모든 업적은 하얀 재로 변했다. 잿더미 속에서 올리브나무는 새싹을 띄웠다. 기적처럼 소생하는 새싹은 아테네 인들의 마음에 희망의 불을 지폈다. 페르시아에 굴복하여 노예가 되기보다 자유인으로 명예로운 죽음을 맞이하겠다는 결사항전의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아테네는 압도적인 수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살라미스 해전'을 승리한 이후 찬란한 문명의 꽃을 피우게 된다.
페르시아 군과 전투에서 승리한, 아테네 인들은 올리브 나무를 '많이' 심었다. 당시 세계를 지배했던 최강국 페르시아를 물리쳤다는 아테네인들의 자부심은 앞으로 다가올 평화와 번영에 대한 확신으로 이어졌다.
Since olive trees do not produce their fruits for about thirty years, their planting indicates that people were optimistic about the future.
[2010년 9월 수능 모의 평가 41번]
올리브 나무는 30년 동안 열매를 생산하지 않기 때문에 아테네 인들이 올리브 나무를 심었다는 것은 그들의 미래를 낙관적으로 생각했음을 보여준다.
올리브는 아테네 인들의 정체성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평화와 번영의 상징이 되었다.
올리브 나무에 대한 의미는 오늘날의 그리스까지 이어진다. 올리브 나무는 그리스의 국수(國樹)이며, 그리스의 국장(國章)의 일부다.
국수(國樹) : 국가를 대표하는 나무
국장 (國章) : 국가를 대표하는 문장
유엔(UN)을 상징하는 깃발과 로고에서도 역시 평화의 상징 올리브 잎을 볼 수 있다.
유엔. 국제연합(UN : United nations) : 1945년 10월 24일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국제 평화와 안전을 보장하고, 국제 협력 증진과 인권 개선 등의 활동을 통해 세계의 번영을 추구하기 위해 세워졌다.
올리브 잎이 유엔을 대표하는 상징이 된 이유는 서구 문명에 큰 영향을 끼친 아테네를 존중해서만은 아니다. 구약성경에도 올리브 나무는 평화의 상징으로 등장한다.
성경 창세기에 따르면, 하느님은 인간을 창조한 이래 자신의 뜻을 거역하며 날로 포악해지는 그들을 멸망시키기 위해 대홍수를 일으키기로 맘먹었다. 다만 의로운 사람이었던 노아와 그 가족만은 살려 주기로 결심한다. 하느님은 노아에게 배(방주)를 만들어 가족과 짐승 암수 몇 쌍을 태워 홍수를 피하라고 명령한다. 결국 예정대로 대홍수가 일어나고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물은 전멸하고 만다. 그렇게 몇 날 며칠을 망망대해에서 헤매고 있을 때 노아는 비둘기를 보내 상륙할 육지를 찾게 했고, 얼마 후 비둘기는 입에 올리브 가지를 물고서 노아에게 돌아온다.
비둘기가 물고 온 올리브 나뭇가지는 오늘날 여전히 인류의 희망과 평화의 상징으로 널리 쓰이고 있다.
극한 환경 속에서도 잘 견디며 자라나는 올리브 나무의 수명은 상당히 길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페르시아 정복 전쟁에 나섰던 기원전 331년부터 생존한 나무가 아직도 건재하게 살아있다. 그 외에도 2000년이 넘은 것으로 추정되는 올리브 나무는 그리스에 적잖이 존재한다. 올리브 나무의 생명력은 굉장히 질기다.
아테네의 상징인 아크로폴리스로 올라가는 길목에 올리브 나무숲이 있다. 올리브 나무는 위풍당당하다. 아테나를 위해 지어진 파르테논 신전을 보호해야 한다는 의무를 다하듯이 말이다.
아테네가 존재하는 한, 그리고 전 세계가 평화로이 인류의 공존을 위해 노력하는 한, 올리브 나무는 그 자리에 앞으로도 오랫동안 서있을 것이다.
오랜만에 샌드위치를 사러 갔다.
올리브를 '많이' 넣어 달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