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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 영 May 12. 2021

철학은 쾌락이 진정한 행복이 아님을 알게 해 준다!

1교시 <행복> 네번 째 이야기

에피쿠로스는 쾌락주의 철학자로 유명하다. 인간의 진정한 행복은 쾌락에서 온다는 에피쿠로스의 말은 예나 지금이나 많은 오해를 낳는다. 사실 에피쿠로스는 절제된 쾌락을 추구했다. 짧게 정리하자면, 에피쿠로스의 쾌락은 '소확행'에 가깝다. 작은 쾌락에서 행복이 비롯되며, 행복은 극대화된 쾌락이 아니라 극소화된 고통이라 그는 생각했다. 에피쿠로스는 부족함과 고통이 없는 상태에서 인간은 '아타락시아(평정심)'을 느끼며 인간은 그 상태에서 가장 큰 행복을 얻는다고 주장했다. 


에피쿠로스는 또한 다가올 미래보다 현재의 삶에 집중했다.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하며 살아가는 삶을 부질없다 여겼고, '지금 여기'의 삶에 충실할 것을 강조했다.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인용되어 유명해진 '카르페 디엠', 즉 현재에 충실하라는 말도 에피쿠로스가 한 말이다. 정리하자면, 에피쿠로스는 행복이란 지금의 고통을 최소화시키는 쾌락을 추구하며 자족하는 현실의 소확행이라 규정했다.


1989년 작. 6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각본상 수상. 내 인생 영화다.  <포스터 출처 : 위키 백과>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 나에게 소확행의 알파는 어묵 먹기다. 먹는 것에 행복을 느끼는 지극히 원초적인 모습에, 그 많은 좋은 음식 중에 하필 어묵이라는 지극히 싸구려적인 나의 모습에 초라함이 스미지만, 이를 무릅쓰고 남에게 알릴 수 있을 만큼 난 어묵을 사랑하고 어묵은 나에게 행복을 준다. 직장 옆 인근 초등학교 앞, 사람들이 많이 붐비는 상가 거리 구석에 수줍게 위치한 포장마차는 사시사철 어묵을 판다. 어묵은 요즘 어디에서나 쉽게 사 먹을 수 있고 집에서도 조리해 먹을 수 있지만, 나는 포장마차에서 먹는 어묵이 제일 좋다. 어린 시절 기억에 남을 만한 추억이 딱히 있는 것도 아닌데, 내 해마는 자꾸 어묵을 꼭 포장마차에서 먹으라고 강요한다. 포장마차 앞에 서서 경건한 마음으로 종이컵 하나에 뜨거운 국물을 고이 담아 한 모금 마신다. 서둘러 허겁지겁 어묵을 먹지 말고 천천히 즐기자는 일종의 다짐이자 의식이며, 여름이라고 그 의식을 멈추진 않는다. 덥다고 예배를 빠지고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아직 신앙이 두텁지 못한 탓일 게다. 국물을 들이키며 목구멍을 혹사시키는 일은 고통이 아니라, 고통의 전환이다. 학원 원장, 동료 선생, 제자들에게 받았던 고통을 잠시나마 잊게 해주는 일이란 말이다. 잘 생긴 어묵 하나를 집어 들어 곱게 간장 옷을 입혀 입에 물고 오물거리며 지나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바라본다. 적어도 내 손에 어묵이 들려있는 한, 난 세상을 좀 더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안목을 가진다. 그래, 다들 열심히 사는구나, 나도 열심히 살아야지. 원장도 다 이유가 있어서 나한테 지랄 맞게 굴었겠지. 그래 참자. 어묵이 맛있으니까 참아 준다. 어묵은 나에게 진정제이자 마취제이며, 그래서 소확행이다. 


B학생은 게임할 때 쾌락을 느끼고 행복하다 말했다. 맨날 게임만 하면 절대로 행복을 느낄 수 없다. B학생에게는 힘든 고3 생활 속에서 간간히 짬을 내어, 혹은 엄마 몰래하는 게임이 소확행이다. (물론 게임에서 지면 극한 불행을 경험한다고도 했다. 게임은 하는 것만으로 행복을 주는 게 아니라, 이겨야 재밌고 행복하나 보다.)





인생을 소확행으로 가득 채운다면 그것이 진정 행복한 삶일까? 소확행은 우리의 삶이 얼마나 고단한지를 보여주는 반증이 아닐까? 어묵을 다 먹고 나서, 게임을 다 하고 나서 느껴지는 공허함. 잠시 쉬었다고 해서, 잠시 잊을 수 있었다고 해서, 이어지는 삶의 고통이 끝나거나 그것이 덜 힘들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모든 것이 참 곤궁하다. 당장 다음 달의 월세와 각종 공과금, 딸아이의 학원비 걱정은 어묵을 먹었다고 사라지지는 않는다. 내신, 모의고사, 소원해진 친구와의 관계 회복, 얼굴에 핀 여드름 걱정이 게임을 한다고 해서 없어지지도 않는다. 그냥 잊고 싶은 거다. 현실에서 느껴지는 불안감을 잠시라도 잊어야 우리는 삶을 살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소확행은 힘든 고통을 잠시 잊게 해주는 마취제다. 슬픈 일은 우리가 그 마취제 없이는 절대로 살아갈 수 없는 삶 속에 있다는 점이다. 다량의 마취제로 연명하는 삶이 진정 행복한 삶이라 말할 수 있을까? 


Through this we have forgotten that being happy in life is not just about pleasure. Comfort, cntentment ans satisfaction have never been the exlixir of happiness. Rather, happiness is often found in those moments we are most vulnerable, alone or in pain.[2020년 6월 수능 모의 평가 38번]

우리는 우리 삶에서의 행복이 단순한 쾌락이 아니라는 사실을 잊는다. 편암함과 만족감은 절대로 행복의 특효약이 될 수 없다. 오히려 행복은 우리가 상처 받기 쉽고 외롭고 괴로워하고 있는 순간에 존재한다. 


소확행으로 간혹 느끼는 쾌락으로는 절대로 진정한 행복에 다다를 수 없다. 쾌락은 유쾌한 즐거움, 혹은 그런 감정이라고 사전에 적혀있다. 그렇다면 인간은 과연 즐거운 감정만으로 진정한 행복을 느낄 수 있을까? 뇌과학은 쾌락을 느끼게 하는 대표적인 호르몬이 도파민, 옥시토신, 세르토닌이라고 밝혔다. 단정적으로 도파민, 옥시토신, 세르토닌을 병원에서 처방받아 필요할 때마다 복용한다면 인간은 진정한 행복에 이를 수 있을까? 결과는 뻔하다. 이는 마약을 복용하는 것과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행복해 지기 위해 마약을 복용하는 누군가를 행복한 사람이라고 부를 자는 이 세상에 없다. 어떤 삶이 진정으로 행복한 삶인지에 대한 답으로, 쾌락은 가치 없는 허무한 답일 뿐이다.





지금까지 난 철학을 했다. 다시 한번 강조하자면, 철학은 이성적 사고, 그 자체다. 쾌락이 절대로 진정한 행복이 아님을 이성으로 확인한 순간, 옆 자리 수학선생님의 쾌락 넘치는 웃음소리가 들렸다. 수학선생님은 코인으로 삼백만 원을 벌었다며 좋아했다. 난 한 번도 보지 못한 코인이다. 자판기에서 커피를 뽑아 먹을 때 쓰는 코인으로 그렇게 많은 돈을 벌 수 있다니, 코인이 대단한 힘을 가진 것만은 분명하다. 나는 수학선생님에게 '돈을 벌어서 행복하냐'라고 물었다. 수학선생님은 '삼백만 원만큼 행복하다'라고 답했다. 


과연 그럴까. 돈이 곧 행복인 걸까. 돈으로 진정한 행복을 살 수 있을까?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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