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딸에게 편지를 쓰라고 - <2>
사랑하는 딸아.
너에게 편지를 쓰겠다고 맘먹은 또 하나의 결정적인 동기는 사실 빈센트 반 고흐의 책을 읽고 나서다.
빈세트 반 고흐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니? 사실 아빠도 잘 몰랐었다. 자신의 귀를 스스로 자른 제정신이 아닌 미친 화가. <별이 빛나는 밤>이라는 작품은 모르는 사람이 없지만, 그 외에는 별 볼 일 없는 그림을 그렸다는 정도가, 아빠가 아는 전부였다. 정말 잘 못 알고 있었던 거지. 지금 생각하니 창피하다. 이 책을 읽고 난 뒤 아빠는 빈센트 반 고흐의 열렬한 팬이 되었다.
이 책은 고흐가 자신의 친동생 '레오'에게 보내는 편지가 주를 이룬다. 간간히 다른 사람에게 보내는 편지도 있고, 레오가 고흐에게 보내는 편지도 포함되어 있지만 거의 대부분은 고흐가 레오에게 쓴 편지다. 고흐가 그린 작품도 이 책 안에 수록되어 있다. 고흐는 편지에 그림을 그리기 전에 했던 구상, 그리는 과정 중에 느꼈던 희열, 좌절, 또 작품이 완성된 후의 이야기를 레오에게 친절하게 설명한다. 그림을 모르고 보는 것보다 알고 봤을 때 다가오는 감동과 재미, 아마도 이것이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 책의 또 다른 매력은 화가로서가 아닌 한 인간으로서의 고흐의 삶을 들여다볼 수 있다는 점이다. 고흐는 가난했지만 피하지 않았다. 당당하고 담담하게 자신의 비루함을 솔직하게 받아들였다. 나는 고흐가 자신의 그림 실력에 취해 세상을 올바로 바라보지 못했던 나르시시스트라고 생각했었는데, 결코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요즘 많이 인용되는 '자기 객관화'를 굳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 철저하게 했다. 현실을 직시했고, 그 안에서 최선과 차선을 넘나들었던 고흐가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그림에 대한 순수한 사랑이었을 것이다. 고흐만큼 그림을 사랑한 사람이 있었을까? 내가 아는 한 없다고 생각한다. 아빠도 고흐를 닮고 싶다. 경제적 어려움이 늘 존재하는 현재의 삶에서 아빠는 이제 고흐가 가졌던 마음가짐으로 세상을 살아내어야겠다고 생각했다. 포기하지 않고 주어진 상황에서 늘 최선을 찾아 끊임없이 행동할 것, 이것이 고흐가 내게 가르쳐준 교훈 중에 하나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책을 빨리 읽어버리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한 장, 한 장이 넘어갈 때마다 이제 얼마 남지 않았음을 깨닫고 이내 슬퍼진다. 책장을 넘기다 보면 그림을 그리고, 편지를 쓰고 있는 고흐 옆에 어느덧 앉아있게 된다. 고흐는 애잔하고 짠해 보인다. 하지만 꿋꿋이 붓을 잡고, 떨리는 손으로 캔버스에 유화를 그리는 그의 모습을 응원한다. 고흐는 가난했다. 그래서 아팠다. 아프면 안되었다. 아파서 그림을 못 그리면 레오의 빚을 갚을 길이 없어지기 때문이었다. 화랑에서 일하던 레오는 그런 형을 위해 적지 않은 돈을 부치며 치료를 권하고, 또 계속 그림을 그려달라고 말했다. 고흐는 동생에게 계속 미안해했다. 거의 모든 편지에 들어가는 공통된 내용 중에 하나는 레오에게 필요한 돈을 보내달라는 말과 '미안해' 그리고 '고마워'였다. 고흐는 이 말들을 지겹도록 반복해서 편지에 썼다.
고흐는 자연을 사랑했고, 그 사랑을 그렸다. 자연을 있는 그대로 그리지 않았다. 그의 눈에 비친 자연을 자신만의 색깔로 화폭에 담았다. 대중에게 인기를 얻을 작품이 무엇인지 고흐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타협하지 않았다. 남들이 보고 싶어 하는 그림을 고흐는 그리지 않았다. '언젠가는 내 그림이 팔릴 날이 오겠지.' 이 말은 자신의 그림이 언젠가 인정받는 날이 올 것이라는 (그래서 동생의 빚도 갚을 수 있을 거라는) 고흐의 애잔한 희망이었다.
사랑하는 딸아.
고흐의 시선이 아름답고 경이로운 자연에만 머문 것은 아니었다. 고흐는 '사람', 그중에 사회의 밑바닥에 있는 '사람', '서민'에 머물렀다. 아빠는 고흐의 시선에 경의를 표한다. 그들을 바라보는 고흐를 본다. 가슴이 벅차오름을 느낀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결코 알 수 없었던 사실이다.
고흐는 사람을 귀하게 여겼다. 특히 힘든 농사일을 끝내고 난 뒤 다 함께 먹는 저녁식사로 감자를 먹는 사람들, 그리고 그들의 손을 소중하게 바라봤다. 고흐는 인물화도 꽤 남겼다. 빠짐없이 모델료를 지급했다. 레오가 보내주는 돈은 그들에게 모델료를 지급하고 그림을 그리는 중간중간 차 한잔, 빵 한 조각 대접하는데 썼다. 고흐는 모델들에게 늘 고마움을 표했다. 고흐는 당장의 부귀영화보다 자신이 지켜야 할 예술적 사명을 포기하지 않았다. 자연과 사람에 대한 진심을 담은 그림이 그것이었다. 어떤 협상도 타협도 하지 않았다. 예술가라면 아빠는 당연히 이런 고흐의 고집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이돌도 결국 예술을 하는 사람이다. 가수도, 작곡가도, 배우도, 화가도 다 인간에게 이로움을 주는 예술이라는 행위를 해서 먹고 산다. 가끔 부와 명예를 동시에 얻은 이런 부류의 사람들이 오로지 자신의 힘으로만 이를 얻은 것으로 착각하고 안하무인으로 행동하며 살아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당연히 이런 이들은 얼마 가지 못해 가진 모든 것을 잃고 자멸한다.
사랑하는 딸아.
올라가야 할 때는 과감하게 올라가라. 아빠처럼 맘이 약해 빠져서는 안 된다. 그러다, 더 이상 올라가지 않아도 된다고 스스로 판단했을 때, 그때 너의 시선을 너보다 아래에 있는 사람에게 따뜻하게 두어라. 아빠는 네가 나보다 덜한 바보가 되길 바란다. 그러니 꼭 올라갈 때까지는 뒤도 돌아보지 말고 올라가 너의 목표를 이뤄라. 고흐처럼 생각하고 행동해야 한다. 사람들에게 늘 감사해야 한다. 글을, 편지 쓰는 것을 멈추지 않아야 한다. 사람들에게 따뜻한 시선을 보내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한다. 예술을 하는 사람이란 바로 그래야 한다고 아빠는 생각한다.
P.S. 일단은 부자가 되어야 훨씬 더 많이 베풀 수 있을 것이다. 고흐가 살아생전에 그림이 잘 팔려 부자가 되었다면, 분명 사람들에게 선행을 베푸는 최고의 자선가라는 타이틀도 얻었을 것이다. 고흐가 인정받지 못하고 가난했기 때문에 그런 멋진 그림을 그릴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의견에 아빠는 동의할 수 없다. 고흐는 따뜻한 맘을 지닌 천재였다. 돈이 더 있었다면 고흐는 역사에 길이 남을 명작을 훨씬 더 많이 남겼을 것이다.
2025년 8월 6일
소나기가 내리는 날,
할리스 카페 2층에서
아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