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오디션 보는 날,

: 도저히 적응이 안될 것 같은 그런 날 - <5>

by 황 영

너의 오디션 날



토요일 아침, 너랑 네 엄마랑 바쁘게 외출 준비를 할 때, 아빠도 사실은 깨어 있었다. '오디션 잘 보고 와'라고 말할까 생각도 했었지만, 그마저도 부담 줄까 봐 그냥 자는 척했다. 네가 나가고 나서 바로 일어나 창밖에 비치는 하늘을 바라봤다. 구름 한 점 없어서 뜨거울 수밖에 없는 날씨였지만 그래도 우리 딸 서울 가는데 비가 오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했다.


너도 알다시피 토요일, 일요일이 아빠는 더 바쁘다. 보통은 딴생각을 할 시간이 없을 정도로 수업준비를 하고 수업을 한다. 오늘은 좀 느낌이 달랐다. 간간히 우리 딸 생각이 날 수밖에 없었다. 잘하고 있는지, 잘했는지, 그래서 기분이 좋았는지, 아님 또 저번처럼 다 못 보여 준 것 같다고 눈물바다를 만들었는지. 그걸 보는 너의 엄마도 기분이 지금 어떨지, 같이 웃고 있는지, 울고 있는지. 딸의 오디션이 주는 긴장감이 생각보다 거세게 다가왔다. 너 오디션 보는 게 이번이 처음도 아니고, 앞으로도 계속 있을 텐데 언제 익숙해 질지 모르겠다. 익숙해 지기나 할까?


생면부지 사람들 앞에서 자신이 가진 능력을 보여 주는 일이 얼마나 가혹한 일인지 생각해 본다. 보통 그 나이 때라면 자신을 사랑해 주는 사람들 속에 푹 파묻혀 칭찬과 응원만 먹고살아도 어느 누구 뭐라 하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때론 가슴을 후벼 파는 칼날 같은 말을 면전에서 들어야 하고, 그럼에도 (적어도 그들 앞에서는) 미소를 잃지 말아야 하는데. 아빠는 우리 딸이 그러고 있을 거라 생각하면 심장이 쪼그라들어 쇳소리 나는 한숨만 나온다. 너뿐만 아니라 수백 명 이상이 오디션을 보러 왔을 텐데 그 모든 아이들에게 존경을 표한다. 그들은 결코 인생을 허투루 살지 않았기에, 어쩌면 가장 치열하게 순간순간을 참고 견디며, 스스로를 채찍질을 하며 살아왔기에, 그래서 우리 딸과 같기에, 난 그들을 존경할 수밖에 없다. 아이들의 부모님들도 그들의 아이들만큼이나 애절하고 간절한 삶을 살고 있기에 진심 어린 응원을 보내고 싶다.




수업이 다 끝나고, 이제 집에 들어가면 되는데 선뜻 용기가 나질 않았다. 현관문을 열었을 때, 나를 반겨줄 시루의 앙증맞은 뜀박질은 변함이 없을 테지만 부디 너의 엄마와 너의 얼굴에 미소가 머물러 있기를 바랐다. 혹시 그렇지 않는다면 옷만 갈아입고 바로 나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 분위기에서는 엄마가 차려 주는 저녁을 먹는 것이 여간 눈치가 보이고 고통스러워서 피하고 싶어서였다. 시루에게는 내가 집에 들어왔다가 곧바로 다시 나가는 게 참 황당한 일이라고 생각하겠지만, (그때의 시루의 표정을 본 적 있니? 귀엽고 웃음이 나온다.) 그렇게 하는 것이 그 상황에선 최선이라 생각했다.


평소보다 더 느리고 신중한 손놀림으로 비밀번호를 입력했고, 평소보다 더 소심한 몸놀림으로 현관에 들어섰다. 시루는 한 치의 틀림없이 예상대로였다. 오늘따라 꼬리의 흔들림이 더 경쾌해 보이는 듯했다. 엄마가 더 많이 놀아 준 것이라 판단했다. 너는 자고 있었다. 피곤했겠지. 엄마도 누워 있었다. 괜히 깨우기 싫어 안방문을 조심히 닫았다. 소파에 잠시 앉아 숨을 돌린 후, 집을 다시 나가지 않아도 된다는 판단과 함께 부엌으로 향했다. 찬장을 열어보니 진라면 매운맛과 사리곰탕면이 각각 두 개씩 있었다. 사리곰탕면을 사놓고 왜 안 먹냐는 네 엄마의 핀잔이 생각났다. 아직 사리곰탕면을 먹을 때가 아니라고, 마음속으로 네 엄마에게 외친 나는 곧바로 진라면 매운맛 두 개를 꺼내었고, 오늘은 냄비보단 프라이팬에다가 끓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아래 서랍을 열었다. 별로 무겁지도 않은 그 프라이팬을 놓치며 결국 내지 말아야 할 소음을 내고야 말았다. 눈치 없이 시루는 짖어댔고 나는 시루의 눈과 주둥이를 번갈아 응시하며 '조용해'라고 핀잔을 주었다. 다행히 아무도 일어나지 않았다. 더 적확한 표현으로 아무도 거실로 나오지 않았다.


라면을 다 끓이고 참치 캔 하나도 꺼냈다. 참치 캔 하나 정도의 사치는 누려도 되겠지라는 생각을 감히 했다. 음소거 라면 먹기를 시전 했다. 후루룩 거리는 소리가 집안의 고요함을 전혀 해치지 않았다. 조용히 내 방으로 돌아와 책상에 앉았다. 둘 다 곤히 자고 있다는 것은 곤히 자도 될 만큼의 성과가 있었던 것이겠지. 혹시라도 좋지 않은 결과가 나왔다면 엄마는 누워는 있되 잠들지 못한 채로 한숨만 쉬면서 눈만 붙이고 있을 것이다. 엄마는 분명 코를 골고 있었다.




"라면 먹었어?" 너는 반쯤 감긴 눈으로 나에게 물었고, 나는 "응"이라고 대답하며 열심히 너의 얼굴을 살폈다. 너는 내가 뭘 알고 싶어 하는지 알았는지 '오늘 나쁘지 않았어, 아빠.' 하고 말하며 물 한 컵 벌컥 마신 후 다시 방으로 들어가 잠을 청했다. 그래 그럴 줄 았았단다, 아빠는. 속으로 내심 기대했다. 오디션을 본 회사에서 연락이 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우리 딸이 기어이 아이돌이 되면 어떤 삶이 펼쳐질까? 아이돌 아빠라고 나대지 말고 늘 겸손하게 살아야겠다, 도덕적으로 더 완벽한 삶을 살아야겠다... 이런저런 생각하다가 이게 무슨 김칫국 마시는 일이며, 혹시라도 이 생각이 우리 딸에게 부정탈 짓이 될 수 있단 생각에 맘을 진정시키고 속된 마음을 독서로 정화시키기 위해 책을 펼쳤다. 책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소파에 누워 잠을 청했다. '오늘 수고했다'라고 너에게 말해 줄 걸 그랬다. 내일 아침에 꼭 이야기해야겠다고 다짐했다.






P.S. 오디션을 본 회사에서 연락이 오지 않았다고 네가 말했을 때, 아빠는 너의 얼굴이 그다지 슬퍼 보이거나 의기소침에 해 보이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느꼈다. 자랑스러운 우리 딸아, 너는 나에게 결과보다 과정이 더 중요하다는 말을 했다. 고맙고 장하다.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씩씩하게 버텨 주며 한걸음 한 걸음씩 나아가 주길 바란다. 행여 울고 싶을 때, 부디 혼자 울지 말고 시루라도 붙잡고 울어라. 우리 가족은 너와 함께 울어줄 수 있는 사람이다. 함께 우는 것은 서러워서도 아니고, 널 위로하기 위함도 아니다. 아직 너를 알아봐 주는 세상이 없으니, 조금만 더 참고 노력하며 기다리자는 우리의 굳은 다짐이다. 그러니 제발 혼자 울지 말아라.



2025. 8. 18

사랑하는 아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