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스무 살의 너에게 편지를 보낸다.
사랑은 결핍을 안고 끝까지 걸어갈 체력이다. 장례식장에서 돌아온 밤, 스무 해 전 사라졌던 사랑의 비누 냄새가 내 몸을 다시 흔들며, 그 말이 증명됐다. 그날 이후, 나는 부치지 못한 편지의 첫 줄을 다시 썼다. 스무 살의 너에게, 편지를 보낸다.
그토록 사랑했던 우리가 스무 해 만에 다시 만났다. 윤 교수님의 어머님 장례식장에서였다. 가는 길에 널 만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하늘에 맡기고, 만나지 못해도 아쉬워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네가 보인다면, 나는 어떤 표정을 해야 할지 신호에 멈출 때마다 거울을 보며 입꼬리를 연습했다. 네가 조금이라도 부담을 느낀다면, 곧바로 집으로 돌아가자고 스스로를 달랬다.
누군가의 죽음을 마주하는 일은 언제나 어렵다. 장례식장에 들어서기 전, 나는 심호흡으로 자세를 고쳐 세웠다. 이번에는 훨씬 더 긴장했다. 부조금을 넣고 방명록에 이름을 정성껏 적었다. 신발을 벗고 안으로 들어서자 영정사진이 보였다. 일면식 없는 분이었지만 교수님을 많이 닮아 슬펐다. 향을 올리고, 절을 두 번 올렸다. 돌아서서 교수님께 마음을 다해 절했다. 장례는 어쩌면, 떠나간 이보다 남아 있는 이들을 위로하는 자리일지도 모른다. 일어서며 상복을 입은 교수님의 표정을 조심스레 살폈다. 교수님은 예전처럼 인자한 미소로 오느라 고생했다며 내 어깨를 토닥여 주셨다. 정작 위로받아야 할 분이 오히려 고맙다고 하셨다. 진작 찾아뵙지 못하고 이런 일로 뵙게 된 것이 죄송해 울컥했다. 과한 감정을 드러내지 않으려 침을 꿀꺽 삼키고 눈물을 뒤로 물렸다. 세상에 온전한 호상은 없겠지만, 모든 장례가 같은 빛깔의 슬픔만을 품진 않는다. 공기에는 향 내와 낮은 숨들이 천천히 번졌다.
테이블에 앉아 주위를 둘러봤다. 문상객으로 붐볐고, 여기저기서 흘러나오는 대화에는 웃음이 섞였다. 어떻게 살고 떠나야 이런 단정한 분위기 속에서 작별을 맞을 수 있을까. 혼자 육개장을 뒤적이며 내 장례를 상상하던 때였다. 교수님과 네가 다가와 내 앞에 앉았다. 너와의 재회가 이토록 순식간일 줄은 미처 몰랐다.
“둘이 오랜만에 만나는 거지?”
교수님의 말에 건성으로 '그렇다'고 대답하며, 드디어 너를 바라봤다. 우리는 '오랜만이야'라는 인사도 대충 건네고 서로의 얼굴을 오래 보았다. 담담한 척하는 내 눈에, 네 눈동자가 우리가 헤어지던 날처럼 아주 잠깐 흔들렸다. 겨우 몇 초였지만, 우리는 4년의 시간과 스무 해의 공백을 눈빛으로 가늠했다. 곧 몇 명의 후배와 동기들이 합석했고, 둘만 있는 자리는 아니었지만 나는 둘만 있는 듯했다. 내가 하는 말은 너를 돌아 흘렀고, 나의 침묵마저 너에게 닿는 듯했다. 장례식장의 얇은 향내 위로, 너의 향수가 고요히 겹쳐 왔다.
“대학 다닐 때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게 뭐야?”
교수님의 질문에 각자 자신의 추억을 꺼냈다. 모두가 기억하는 일, 몇 사람만, 혹은 말한 사람만 기억하는 일이 웃음과 감탄 속에서 섞여 나왔다. 내가 기억하는 일은 너도 기억하고 있었다. 기억나지 않는 장면인데도 그것을 기억해 주길 바라는 네 기색을 읽었을 때, 나는 '아, 이제 생각난다'며 조심스레 거짓 추임새를 얹었다. 네가 원하는 내가 되고 싶은 오래된 버릇이, 예전과 다를 바 없이 솟구쳤다. 내 추임새에 너는 미소로 화답했다. 그 미소는 세상을 흐릿하게 만들고, 온전히 너만을 선명하게 보게 했다. 내가 너를 사랑하게 된 첫 번째 이유, 바로 그 미소였다. 스무 해의 틈이 그 한 번의 미소로 잠시 지워지는 듯했다. 내 차례가 되었을 때, 나는 우리가 함께했던 어느 해의 '로미오와 줄리엣' 영어 연극제가 가장 또렷하다고 말했다. 교수님과 몇몇 동기, 후배가 고개를 끄덕였다. 차마 너를 똑바로 보지는 못했지만, 너 역시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으리라 짐작했다.
"그래, 맞아. 너희 둘 그때 참 열심히 했지. 예뻤어, 너희들. 내 눈에 늘 그렇게 보였어."
교수님의 말에 모두가 동의했다. 대화는 이내 살림 이야기와 자식 자랑으로 미끄러져 갔다. 무료함 속, 나는 내 어둠이 드러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랐다. 교수님은 부부 사이의 애정이 중년을 넘어서부터 더 중요하다고 강조하셨다. 교수님이 한 명씩 각자의 남편 아내와의 사이를 물으셨고 이내 내 차례가 되었을 때, 친한 후배 운용이의 입에서 내 이야기가 먼저 터져 나왔다.
"교수님, 형은 이혼한 지 꽤 됐어요. 그리고 얼마 전에 책도 한 권 내셨어요. 아…… 다들 모르셨어요?"
악의는 없었지만, 녀석의 순수함은 종종 해도 될 말과 안 해도 될 말을 구분하지 못했다. 일제히 나를 향하는 시선들을 너털웃음으로 뭉개듯 흘려보냈다. 나는 필사적으로 너의 표정을 쫓았다. 너는 침묵했고, 그 표정은 마치 오래된 사진처럼 고요했다. 나는 그 침묵 속에서,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너의 지난 시간과 내가 만든 균열의 깊이를 헤아리려 애썼다. 다만, 네 왼손 약지 위 사라진 반지 자국에 시선이 멈췄다. 그 자국은 옅었지만, 어쩌면 스무 해의 세월보다 더 깊은 균열을 담고 있는지도 몰랐다.
장례식장을 나서는 길, 엘리베이터에는 하늘이 잠시 허락한 듯, 너와 나 둘 뿐이었다. 층수를 알리는 붉은 숫자가 한 칸씩 내려갔다. 좁은 상자 안에는 향내와 조문객의 숨이 얇게 남아 있었다.
“오빠, 책 냈다는 거 오늘에서야 알았네. 꼭 사서 읽어볼게.”
“…… 뭐 하러 사. 내가 한 권 가져다줄게.”
택배가 아니라 직접, 네 손에 건네주겠다는 말이 나도 모르게 입술을 뛰쳐나왔다. 4층에서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가는 짧은 순간, 혹시 네가 거절하더라도 그건 당연한 일, 실망하지 말자고 마음속으로 되뇌었다. 버튼 주변의 작은 불빛이 손끝에 미세하게 닿았다. 엘리베이터가 멈출 때마다 바닥이 아주 얕게 흔들렸고, '딩' 소리가 천장에 붙었다가 가라앉았다.
“그래 주면 나야 고맙지.”
무슨 뜻일까. 너 역시 나처럼, 잠깐의 재회를 조금 더 길게 늘리고 싶은 걸까? 그럼에도 주차장에서 혹시 다시는 못 보게 될까 봐 간절하게 너를 보았다. 네 눈에는 아직 스치지 못한 아쉬움이 얇게 깃들었다. '또 보자'라는 흔한 인사말을 망설이다 결국 하지 못했다. 대신 더 흔한 말이 새어 나왔다. '잘 가.' 내 책을 직접 건네려면 약속을 잡았어야 했다. 연락을 기다리는 걸까? 번호는 그대로일까? 돌아가서 물어볼까? 나는 너를 다시 만나도 되는 걸까?
시동을 걸었다. 오늘, 우리는 다시 만났다. 스무 해 전 서로 사랑했던 우리가 헤어진 뒤, 그렇게 다시 만난 것이다.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절대 하지 않았을, 그 정신 나간 이별을 내가 먼저 말했고 너는 받아들였다. 간간이 네 소식이 들릴 때면 염치없이 네가 행복하기만을 바랐다. 내비게이션은 켜지 않았다. 신호는 몇 번이나 바뀌었고, 초록불이 켜질 때마다 한 박자 늦게 출발했다. 뒤차의 경적이 멀리서 왔다가 다시 멀어졌다. 백미러 속 내 눈동자에, 아까 거울에서 연습하던 입꼬리가 어설프게 남아 있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집 앞이었다. 과정은 하나도 기억나지 않았다. 어떤 길을 지나 여기까지 왔을까. 오늘의 시간이 내게 물었다. 너에게 차마 부치지 못한 편지를 이제는 보내야겠다고, 오래 미뤄둔 일이라 되뇌며 살아왔다. 스무 살의 너로 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쉰 살의 내가 스무 살의 너에게 보내는 편지를, 이번에는 네가 읽어주기를 꿈꿨다. 편지는 과거를 지나 현재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나는 그 길 끝에서 다시 너를 만날 준비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