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로 다시 돌아왔다.
흔히들 말하는 인생의 나락을 경험하고 있을 때였다. 사기를 당하고, 가정이 파탄 나고, 몸과 마음 또한 이보다 더 나쁠 수 없을 정도로 나빠졌다. 더 이상의 삶이 나뿐만 아니라 모두에게 해가 된다고 판단하던 시기였다. 이 세상을 떠날 거라는 다짐이 점점 강해질수록, 한 가지 '미련'이 나를 계속 붙잡았다. 하나밖에 없는, 이제 초등학교에 입학한 딸이 아빠란 사람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이었다. 아빠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한 판단의 실마리를 딸에게 남겨 줄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나에 대한 글을 남기는 것이라 생각했다. 글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딸과 나를 영원히 이어 줄 수 있는 중력이자 전령이 틀림없음을 굳게 믿었다. 종이가 아닌 온라인이라면 그 영속성은 무한대다. 딸이 혹시라도 아빠 생각이 날 때마다 언제라도 볼 수 있게 하려면 온라인에 내 글을 남기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결론을 내렸고, 내가 선택한 그 최고의 전령은 바로 '브런치'였다.
세 번의 도전 끝에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 도전의 과정은 나에게 꽤 힘든 시기였다. 작가가 되었다는 메일을 받았을 때, 시큰둥할 줄 알았던 내 마음속에 한 줄기 빛이 스며 들어왔다. 칠흑 같은 어둠 속의 숲을 정처 없이 헤매고 있을 때, 그래도 딸 얼굴 한 번이라도 보고 죽자라는 심정으로 끝내 무거운 발걸음을 한 걸음씩 옮기며 살아가고 있을 때,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는 소식은 나에게 희망의 빛이 되어 주었다. 딸을 위해 마지막으로 글을 남겨야 된다는 사명감으로 하루하루 고단한 삶의 끝을 늘 브런치에 글을 남기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글이 단순히 딸에게 하는 아빠의 잔소리로 읽히는 게 싫어 여러 분야의 책을 읽기 시작한 것도 그때쯤이다. 모순 투성이의 삶에 대해 회의하던 나에게, 철학은 많은 부분을 해소에 해주었다. 쇼펜하우어, 니체에 큰 감명을 받고 그들의 철학에 더 깊게 빠져든 것도 그때부터였다. 자연스럽게 딸에게 남기는 내 마지막 글의 내용들은 내가 살아왔던 비루한 삶에 대한 철학적 해석이 주를 이뤘다.
그러던 어느 날, 생각도 못했던 메일 하나가 나에게 왔다. 내 책을 내고 싶다는 출판사의 오퍼였다. 내 글에 관심을 가져준 출판사 사장님과 전화통화를 끝내고, 나는 아내와 딸을 붙잡고 펑펑 울어 댔다. 내가 진짜 작가가 된다는 사실보다 더 큰 기쁨은, 이 거지 같은 삶을 기어이 살아내고야 말겠다는 희망을 그 순간 품었기 때문이었다. 새로운 희망은 촘촘하고 켜켜이 쌓여, 도저히 해체할 수 없을 거라 생각했던 내 울분을 말끔히 토해내게 했다. 고군분투, 우여곡절 끝에 내 책이 나왔다. 내 책이 베스트셀러가 될 거라는 꿈은 애초에 꾸지도 않았다. 집필 과정에서의 희로애락을 어떻게 다 말로 풀어낼 수 있을까? 힘겹게 버텨내며 드디어 출간된 내 책은 지나온 내 삶에 대한 보상이었고, 딸에게 물려줄 가장 큰 보물이며, 브런치가 내게 준 인생 최고의 선물이었다.
책은 당연히 잘 팔리지 않았지만, 삶의 의지는 확고해졌다. 니체의 '나를 죽이지 못한 고통은 나를 더 강하게 만든다'는 명언을 늘 가슴속에 품고 살아갔다. 닥치는 대로 일을 하고 일 년 중 명절 며칠을 제외하고는 계속 일만 했다. 한 가정을 책임져야 하는 무게가 무겁게 느껴지지 않아서였다. 그로 인해 브런치에 글을 남기는 것이 여간 쉽지가 않았다. 마음 한편에서 다시 브런치에 글을 남겨야 한다는 생각이 떠난 적이 없었지만, 책을 한 권 출간하고 나서부터는 어떤 글을 남겨야 할지에 관한 고민이 피곤한 몸과 만나, 브런치를 거들떠보지도 않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럼에도 브런치는 나에게 계속 연락을 주었다. 카톡으로 '작가님'이라고 호칭해 주며, 내가 작가인 사실을 늘 상기시켜 주었다. 답장 없이 '읽씹'하는 나에게, 브런치는 늘 따듯하게 소식을 알려주며 글을 쓰라는 응원을 끊지 않았다. 특별한 계기도, 대단한 동기도 없이 나는 어느 날 문득 3년 만에 브런치에 접속하고 글을 남기기 시작했다.
지나온 3년의 내 삶에 브런치는 없었다. 브런치에 글을 쓰지 않았음은 곧 내 삶의 대한 사색과 반성이 없었음을 의미한다. 3년의 삶이 '재미'가 없던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었을까? 글을 쓰며 자신의 삶을 되돌아본다. 되돌아보다 보면 이렇게 살지 말아야지, 저렇게 살아야지, 하며 여러 의지가 생긴다. 그 의지를 나는 '삶의 재미'라 부른다. 다시 글 쓰는 재미를 삶의 가장 의미 있는 가치로 삼고 살아봐야겠다. 힘든 삶을 살아내려면, 그래서 딸도 잘 키우고, 가정도 잘 건사하려면, 내가 먼저 삶에 '재미'를 느껴야 한다. 재미 중에 최고는 글 쓰는 재미이다. 내가 해봐서 안다. 브런치는 배은망덕하고 이기적인 나를 따뜻하게 다시 받아주었다. 그래서 나는 브런치로 다시 돌아와 지금 이 글을 썼다. 이제 고치고, 저장하고, 발행만 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