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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작가 윤정인 Feb 27. 2018

[프롤로그]이토록 눈부신 시칠리아!

시작, 시칠리아 여행


잊고 있으면서도 잊지 않았다. 게으르게도 어제 한낮에 꾸벅 졸다가 <이탈리아 기행>의 한 장면이 정말 '문득' 떠올랐다. 괴테는 나폴리에서 시칠리아로 가는 내내 거센 파도에 시달린다. 그는 틈틈이 <타소> 극본과 거친 물살을 보면서 작가적 의도를 잃지 않았다고 이야기한다. 시칠리아 여행을 떠나기 전 이상하게 그 장면 하나가 유독 머리에 맴돌았었다. 그 장면을 떠올리고 나서야 시칠리아 여행을  회상해 볼 마음이 생겼다. 다시 시칠리아에 갈 것이다. 하지만 당장은 아니었다.  내내 시칠리아에 대해 적고 싶었지만, 단편적인 글만 수첩에 흩어져 있다. 이를테면 입안에 진하게 맴돌았던 와인, 1930년대의 팔레르모 엽서를 팔았던 노인. 귀를 울리는 도시의 여러 소리. 순수한 진액 같은 것들. 시칠리아는 내게 그런 곳이다.   







시칠리아 24일 여행 일정
카타니아 Catania-타오르미나 Taormina-에트나 Etna-카스텔몰라 Castelmola-시라쿠사 Siracusa -노토 Noto-라구사 Ragusa-모디카 Modica - 팔레르모 Palermo-체팔루 Cefalu-몬레알레 Monreale -아그리젠토Agrigento -에리체 Erice-시아카 Sciacca-트라파니 Trapani(파빅나나 Favignana)



Sicily prologue

카타니아 시내 한복판에 있는 로마 원형 극장. Roman Amphitheater of Catania



어느 오후, 카타니아의 골목길에서.



활력이 넘치는 카타니아 어시장.


카타니아
사실 시칠리아 첫인상은 그다지 좋진 않았다.  매끈하고 말끔하게 정돈된 몰타의 거리만 걷다가 침울하고 잿빛의 카타니아를 보니 기분이 우울해졌다. 물론, 며칠 여기에 머무는 사이 그런 감정은 싹 사라졌지만.  다른 도시를 여행하면서도 카타니아가 그리워지곤 했다. 하루에 몇 번은 드나들었던 두오모 광장, 활력이 넘치던 어시장,  아이들과 노인들이 모인 평화로운 작은 공원까지. 부연 먼지 낀 어느 오후에 먹었던 아란치니와 카푸치노마저 그리워지는 매력 있는 도시. 




타오르미나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색색의 파스타. 가격이 가장 저렴하기도 하다.


타오르미나 원형 극장. Taormina Amphitheater.


타오르미나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시칠리아는 구릉 위에 자리한 마을이 많다. 라퓨타에 로망이 있는 나는 처음 시칠리아의 갈 곳을 정할 때, 구릉 위의 마을에 집착했다. 나중에서야 뚜벅이 여행자에겐 사치란 걸 알았다. 타오르미나는 그중 관광객들이 접근하기 쉬운 편에 속했다. 반면 그만큼 상업적인 느낌을 팍팍 풍겼던 마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늘 꼭대기에 있는 듯한 그리스 극장의 위엄과 길거리 가판에 아무렇게나 널려있던 색색의 파스타가 기분 좋게 만들어주던 곳.








에트나 화산. 걸어가는 길.


에트나 화산 분화구. 저 위를 걸으며 분화구를 관찰할 수 있다.


에트나 화산
에트나 화산에 가기 전  실제 분출이 일어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겁이 나기보다는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가이드 파울로가 운전하는 차 안에서 나는 프랑스, 불가리아인 부부와 젊은 이태리 커플과 함께였다. 멀리서 보이는 에트나 화산은 하얀 연기를 뿜은 평온한 모습을 띄고 있었다. 파울로는 '저건 에트나 산이 안전하다는 신호'라고 말했다. 검은색에 가까운 흙이 죽음의 땅처럼 느껴졌던 에트나 위에서 파울로의 발자국을 쫓아 내내 따라다녔던 기억. 멀리서 본 에트나 화산의 꺼져버린 분화구 역시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카스텔몰라 마을 입구


카스텔몰라. 위에서 내려다 본 풍경


카스텔몰라
카스텔몰라는 타오르미나 윗동네다. 일정치 않은 버스 시간 때문에 하루는 날리고, 다음날 다시 와야 했다. 하지만 교통편 때문에 이 도시를 놓치기엔 너무나 아깝다.  타오르미나 축소판인듯하면서도 훨씬 조용하고 아늑한 동네다.  높은 지대 덕분에 지중해와 붉은 지붕이 그림처럼 펼쳐진 마을을 한눈에 볼 수 있는 멋진 전망대이기도 하다.  처음으로 맛본 카놀리의 맛이 형편없었다는 것만 빼고는. 아름다운 풍경에 감탄, 또 감탄했던 도시.







오르티지아(Ortigia)에 있는 두오모 광장(Piazza Duomo).


시장에서 파는 파니니를 들고 점심을 해결했던 곳. 사랑스러운 시라쿠사 고양이들.


시라쿠사 두오모 광장(Piazza Duomo)


시라쿠사
시칠리아에서 가장 좋았던 도시를  꼽는다면 단연코 시라쿠사다. 이 무렵 나는 체력이 바닥이었고, 슬슬 뜨거워지는 시칠리아의 강렬한 햇빛을 실감하고 있었다. 틈만 나면 오렌지주스를 손에 들고 아무 벤치에 앉아 메마른 흙빛의 건물을 보면서 멍하니 사람 구경, 바다 구경을 하곤 했다. 시간이 지나고 시라쿠사의 오르티지아섬을 몇 번이고 돌았는데, 점차 시라쿠사가 얼마나 사랑스러운 도시임을 알게 됐다. 영화 <말레나>에 나왔던 아름다운 두오모 광장을 아침저녁으로 걸어 다녔고, 바다 앞에서 해가 질 때까지 앉아 있기도 했다. 뜨거운 햇볕을 정면으로 맞으며 먹는 와인조차도 강렬했다. 로컬 시장의 유명한 파니니의 맛은 잊을 수 없다.






노토 마을 입구


노토에서 가장 유명한 노토 대성당(Cathedral of Noto)


노토
시라쿠사에서 체력이 바닥났다고 했는데, 노토에 갔을 무렵은 절정이었다.  이때쯤 나는 내내 졸았다. 버스 안에서도, 젤라또를 손에 들고서, 노토의 한 벤치에 앉아서도. 거대한 노토 대성당은 오후 황금 시간대에 문을 닫았고, 그 때문에 길바닥에서 시간을 허비했다. 노토에 미안해질 정도로 건성으로 다녔던 최악의 일정. 흙빛의 이 도시에 언젠가 다시 한번 가보리라.








라구사 두오모 성당(Duomo San Giorgio) 앞에서.


아름다운 라구사 이블라(Ragusa Ibla) 전경


항상 숙소에서 사랑스런 눈으로 나를 맞이해주곤 했던 심바.


라구사
마을 구조가 굉장히 독특했던 도시 라구사.  높은 지대에서 바라본 라구사 이블라 풍경은 예술이다. 신시가지와 구시가지를 한꺼번에 보려면 수많은 계단을 오르락내리락 해야 하는데, 걱정했던 것보단 힘이 덜 들었다.  오히려 계단의 곳곳의 포인트에서 라구사의 여러 얼굴을 볼 수 있어 더 좋았던 것도 같다. 시칠리아의 여러 도시 중 유독 라구사가 내 집처럼 느껴지는 데는 여러 이유가 있지만, 역시나 심바 때문이다. 호스트 마르코가 키우는 고양이 심바는 무척 사람을 따르는 흔치 않은 아가 고양이로 내 캐리어에 둥지를 틀고 동그란 눈으로 나를 쳐다보곤 했다. 






시클리 마을 풍경


시클리 마을 풍경


산 미켈레 성당 앞(Chiesa di San Michele Arcangelo)


시클리
많은 관광객을 만났지만, 시클리를 아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는 칭찬 아닌 칭찬을 마르코에게 들었다. 라구사 또는 모디카정도 가는 것이 이 지역에서는 최선의 선택이다.  모처럼 시간 여유가 있는 관광객들이나 운 좋게 색다른 마을을 발견하는 것이다. 별 기대 없이 갔던 시클리였다. 게다가 비까지 내리는 최악의 상황. 그럼에도 아름다운 마을로 기억하고 있다. 작은 마을임에도 궁전이나 성당 등 고풍스러운 건물이 마을을 꽉 채우고 있고 보존도 잘 되어 있다.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마을이란 건 얼마 후에 안 사실이었다.







 

언덕 위 모디카 풍경


유명 초콜릿 가게 Antica Dolceria Bonajuto


모디카
라구사와 닮았지만, 훨씬 더 쾌적하고 생기 있는 도시다.  라구사는 위에서 내려다봐야 하는 도시라면, 모디카는 올려다봐야 한다는 것도 재밌다. 언덕 위 건물이 겹겹이 쌓인 모양새가 마치 하늘 위로 솟구친 마을 같았다. 모디카는 초콜릿이 유명하다. 고대 아스텍 제조법으로 아직까지 제조하고 있다는 초콜릿은 어떤 맛일까. 가장 유명한 초콜릿 가게에 가서 맛을 봤지만, 식감이 영 내 입맛엔 아니다. 양손 가득 초콜릿을 사가는 사람들을 보며 괜히 그냥 가기 머쓱해 점원이 추천하는 것 몇 개를 구입했다. 그 초콜릿은 아직도 방치 중이지만. 







팔레르모 거리 풍경


팔레르모 거리 풍경


팔레르모 거리 풍경


팔레르모
시칠리아 섬 주도. 호불호가 갈리는 도시라고 들었다. 나는 불호 쪽에 가까웠다. 팔레르모가 매력적이지 않다기보다는 내가 작고 조용한 도시를 선호하는 것이 더 크다. 그래도 카타니아 이후로 모처럼 시내에 나온 것 같아 나쁘진 않았다. 주말에 시내에 가면 우리나라 명동과 비슷하게 젊음과 활기가 느껴졌던 도시. 널찍하고 시원하다. 반면 도시 규모에 비해 뭔가 심심한 감은 없지 않았다. 주변 아름다운 도시를 돌기 위한 거점으로 삼기에 적당한 도시 정도. 








체팔루 로까(Rocca)에 올라서 본 풍경


체팔루 해변. 영화 <시네마천국> 촬영지이기도 하다.


체팔루
시칠리아 여행 전 나는 체팔루를 가장 기대했다. 사람들이 극찬하는 도시기도 했고, 사랑하는 영화<시네마 천국>의 촬영지기 때문에.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마을 뒤 로까에 올라 바다와 어우러지는 마을 풍경을 감상하고, 해변에서 영화를 보는 그 꿈같은 장면을 촬영한 곳을 거닐었다.  햇빛을 항상 피해 다니던 내가 유일하게 일광욕을 즐겼던 도시. 






몬레알레 대성당. Cattedrale di Monreale


몬레알레
사실은 가고 싶지 않은 곳이었다. 오로지 황금빛 모자이크로 번쩍이는 성당이 유명하다는 이 작은 마을을 가게 된 것은 같은 숙소에 묵었던 미국인 가족의 강력한 추천 때문이었다.  내가 간 날은 미사가 열리는 날이었고, 그 장엄한 풍경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황금빛 모자이크로 뒤덮인 내부가 압도적으로 느껴졌던 순간. 사람들 속에서 경건함을 느꼈다. 







아그리젠토 고고학 지역


아그리젠토 고고학 지역, Temple of Juno.


아그리젠토
'신전의 전시장'이라고 불리는 아그리젠토. 기원전 582년에 그리스 식민 도시로 건설된 곳.  그 숫자가 너무나 까마득해서 와닿지조차 않는다. 그동안 몇몇 그리스 유적지를 봐왔지만, 가장 감동적이었다. 그전에는 아마 시간의 보존이란 개념을 이해할 수 없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거대한 규모로 널브러진 돌무더기부터 지금까지 반듯하게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고대 건축물까지. 신비함을 넘어 경이로움을 느낄 수 있는 고대의 도시.








절벽 끝에 자리한 페폴리 성(Torretta Pepoli)


에리체 골목길 풍경


에리체 마을



에리체
천공의 도시. 앞서서 라퓨타에 대해 이야기했지만, 시칠리아에서 그 천공의 섬과 가장 흡사한 곳이라면 에리체가 아닐까.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에리체 위에서 굽어 내려봤을 때의 풍경이었다.  구름이 아린 풍경 덕에 정말 하늘 끝에 올라와 있는 기분이었다.  어느 가이드북에도 빠지지 않는 마리아 가게에서 산 전통 과자를 씹으며 작은 돌로 가득 메워진 골목길을 끊임없이 걸었는데, 그 끝에서 보이는 건 항상 하늘이었다. 








시아카의 아름다운 해변 풍경


파스텔톤의 건물이 즐비한 한적한 거리.



시아카
가장 기대했던 팔라조 아드리아노를 가지 못하고, 대신 시아카에 가게 됐다. '도자기 마을이며 싱싱한 해산물이 유명합니다.'라는 가이드북의 건조한 설명이 무색하게 눈이 시릴 정도로 푸른 도시였다. 고요함 속에서 파스텔톤 건물 사이를 돌아다니며 평화로움을 느꼈다. 특히 시아카의 바다색은 예술이었다. 









트라파니 항구 거리


트라파니 거리 풍경


트라파니
시칠리아 섬 서쪽에 위치한 작은 항구도시. 주변 도시를 다녀올 때 거점으로 삼기에 좋다. 에리체, 파빅나나에 가기 위해 트라파니에 잠깐 들렀었다. 전형적인 휴양지의 느낌이 물씬 나는 도시. 






파빅나나 Beach Bue Marino



파빅나나
아, 애증의 섬 파빅나나  이 아름답고 반짝반짝 빛나는 섬에서 오후 내내 좋은 시간을 보냈다. 평화롭게 섬 주위를 자전거를 타고 도는 사람들 사이에서 무작정 걷다가 에메랄드빛 바다를 보며 감상에 젖었다. 발가락 뼈에 금이 가기 전까지. 계획에 없던 보트 투어를 탄 것부터가 불운의 시작이었다. 덕분에 일주일 남은 여행을 포기해야 했고, 꿈의 섬 스트롬볼리를 포기해야 했다. 시칠리아에 언젠가 다시 가야 할 이유가 생겼다. 









시칠리아 음식

시칠리아 하면 미식의 고장 아닌가. 음식에 까칠한 나조차도 반할 수밖에 없었던 시칠리아의 음식을 몇 가지 미리, 그리고 아주 간략하게 소개한다. 와서 보니 여전히 편식 위주(주로 파스타!)의 식단이지만, 나름 여러 종류의 음식을 먹어보려고 시도했다. 본연 재료의 맛을 주로 살려 요리하는 것이 시칠리아 음식의 특징. 싱싱한 해산물로 만든 요리는 조미료가 따로 필요 없다. 시칠리아에서만 맛볼 수 있는 달콤한 디저트, 저렴하지만 맛을 훌륭한 커피, 그리고 더위를 식혀주는 젤라또까지. 맛으로 기억하는 시칠리아에 대하여.




성게 스파게티 spaghetti ricci e crem


알라 노르마 pasta alla norma


바질 페스토 펜네


정어리 파스타 Pasta Con le Sarde


안티파스토 Antipasto


오징어순대와 비슷한 요리. Calamaro ripieno.


시칠리아 전통 과자


매일 흡입. 카푸치노.


내가 가장 좋아했던 젤라또 조합. 피스타치오와 레몬.


해산물 튀김


빵 사이에 아이스크림을. 브리오쉬 brioche


시칠리아 유명 디저트, 카놀리 Cannoli


시칠리아 대표 음식, 아란치니 Arancini


시칠리아에서는 별달리 맛집을 찾지 않아도 됐다. 특히 빵집이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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