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여행책을 쓰고 싶은 건가요?
처음 여행 에세이를 쓰려고 마음먹었을 때, 나는 자신감에 가득 차 있었다. 그동안의 여행 경험은 충분했고, 글쓰기도 그럭저럭 익숙했다. 여행 이야기를 그럴듯하게 글로 포장해서 엮기만 하면 그게 책이 되는 줄 알았다. 수십 편의 글을 마음 가는 대로 쓰는 것과 책에 들어갈 글을 쓰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일이라는 걸 그땐 몰랐다. 양적으로 글을 채워야 한다는 부담도 있지만, 잡다한 고민거리가 끊임없이 생겨나는 것이 더 큰 문제였다. 이를테면 정말 멋진 글 한편을 써냈더라도 그것이 책의 주제를 해친다면 과감히 들어낸다. 글은 유기적이면서도 통일성을 갖춰야 한다. 제각각 다른 색을 갖고 있는 글이라도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가 있어야 한다. 여행책도 예외는 아니다. 비교적 자유로운 형태의 여행기라도 말하고자 하는 바가 명확한 게 좋다. 이 문장을 앞에 쓴 글에도 넣지 않았나? 글 분량이 너무 적지는 않은가? 내 글이 책으로서 가치가 있을까? 책을 쓰는 동안에도 불신하고 비관적인 생각을 끊임없이 반복하는 경우가 이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든 쓰면 길이 보인다. 이런 고민은 다음 글에서 차차 풀어보기로 하고, 이번 화에서는 조금 근본적인 이야기부터 시작해보려 한다.
당신은 왜 여행책을 쓰고 싶은가? 책을 쓸 계획이 있다면 여기서부터 시작했으면 한다. 목표 의식이 생길 뿐 아니라 어떤 주제로 책을 쓸지, 어떤 루트로 책을 출간할지 기본적인 방향이 잡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다녀왔던 여행지를 기록하기 위해. 내 여행 기록을 책으로 엮어 주변 지인과 공유하기 위해. 저자로 내 이름이 올라와 있는 책 한 권쯤은 내보고 싶어서. 본격적으로 여행 작가로 활동하기 위해. 어떤 사소한 이유라도 좋다.
책쓰기 강좌를 통해 만난 분들은 크게 두 가지 경우로 나뉘었다. 여행 경험을 물리적인 기록 매체에 남기려는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을 위해서 책을 쓰고자 하는 분, 또는 정식으로 책을 출간하는 것이 우선인 경우. 이렇게 목적이 다르다면 접근해야 할 방식도 달라진다. 전자의 경우는 오로지 개인의 경험 기록이 목적이기 때문에 책을 출간하는데 제약이 덜하다. 주제의 선택, 글의 품질, 출간 방식이 모두 자유로워진다. 아시다시피 요즘 책을 출간할 수 있는 경로는 다양하다. 책 기획, 글쓰기, 디자인, 인쇄까지 모두 개인이 도맡아 하는 독립출판물, 비슷하게 내가 원하는 형태로 주문 제작할 수 있는 POD(Publish On Demand) 방식, 글만 있다면 쉽게 발행이 가능한 전자 출판까지. 손쉽게 책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시스템이 여기저기 잘 구축되어 있다. 그러고 보니 에스프레소 뽑는 시간에 주문한 책 한 권을 뚝딱 만들어내는 파리의 한 서점도 있다. 저자와 독자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제약이 없으니 개성이 드러나는 책이 많을 수밖에 없다. 개인 출판을 계획하는 이는 내 글을 출판사, 독자의 기준에 굳이 맞추지 않아도 된다. 그저 내가 원하는 대로 마음껏 써내기만 하면 된다.
후자의 경우라면 조금 달라진다. 출판사를 통해 정식으로 책을 출간하는 것. 많은 예비 작가들이 대부분 원하는 것이다. 규모가 크고 많은 책을 내고 마케팅까지 잘하는 출판사일수록 더 좋다. 전자에 비해 좋은 점은 내 책이 인증된다는 점이다. 지금 서점의 가판에 올라와 있는 대부분의 책은 출판 전문가들이 책으로써 가치가 있는지 없는지를 판단한 후 더 완벽해지도록 다듬고 편집한 결과물이다. 그렇기에 독자들은 이 출판 시장에 나온 책들에 대한 기본적인 믿음이 있다. 한 권이라도 책을 쓴 이들에게는 작가 혹은 저자라는 명칭이 주어진다. 많은 것이 주어지는 대신 제약이 많다. 온전히 글만 쓴다고 책을 만들 수 없다. 출판사의 눈에 들기 위해 내 콘텐츠를 가치 있게 만들거나 흥미롭게 포장해야 한다. 운 좋게 출간 계약을 하고 책을 준비한다 하더라도 내가 쓰고 싶은 글을 모두 내 책에 넣을 수 없다. 내 기획의 반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도 생긴다. 기존 출판시장에 맞는 네모 반듯한 책 규격 안에 내 생각들을 모두 구겨 넣어야 한다. 책을 출간하는 이상, 그 글은 내 것이 아니라 읽는 사람의 것이다. 일기장에 써오던 글과 남들이 읽는 글의 간극은 너무나 크다. 역시 여러모로 신경 써야 할 것이 많은 것이 책쓰기다.
여행책을 쓰다 보면 이런 유형의 고민이 생기기도 한다. 어떤 지역에 대한 여행 에세이를 쓰기로 결심했다고 치자. 먼저 기획을 하거나, 아니면 글쓰기부터 시작했을 수도 있다. 그러다 보면 내가 쓰려는 책과 비슷한 유형이 과연 시중에 얼마나 출간되었는지 알아봐야 할 상황이 온다. 대형 서점의 여행 코너에 가서 가판 위 책을 뒤져본다거나, 인터넷 서점에서 비슷한 유형의 책을 찾아 정리하거나. 이렇게 조사를 하다 보면 고민에 맞닥뜨릴 수밖에 없게 된다. 두 가지다. 내가 쓰려는 지역이 이미 포화상태이거나, 아니면 아예 전무하거나.
여행 책은 기본적으로 지역이 중심이다. 그래서 다른 분야에 비해 쓸 수 있는 주제가 한정되어 있고, 결국 파이 싸움이 될 수밖에 없다. 프랑스나 영국 같은 유명 여행지는 에세이, 가이드북 가릴 것 없이 이미 포화 상태인. 반면 인도네시아, 네덜란드 같은 나라는 상대적으로 출간된 책이 적다. 프랑스의 책은 시중에 넘쳐나는데, 내가 프랑스 관련 책을 쓰는 것이 과연 경쟁력이 있을 것인가? 인도네시아를 다룬 책이 적다는 것은 독자 수요가 없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 전자는 수요는 많지만 대신 경쟁이 치열할 것이고 후자는 희소성은 있지만 찾는 사람이 없는 분야일 수 있다. 한 출판 관계자는 책을 내려는 사람에게 이런 조언을 했다. '일단 시중에 많은 책을 내고, 없는 책은 내지 말아라.' 반은 맞고, 반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특히 여행서의 경우에는 더더욱 그렇다.
이미 많은 서적이 나와있는 지역의 경우 '콘셉트를 어떻게 잡느냐'에 따라 신선한 책이 될 수 있다. <런던 클래식하게 여행하기>는 런던의 특별함을 저자의 시점으로 선정해서 담았다. 이 책에서는 런던의 클래식한 문화를 느낄 수 있는 왕실, 정원, 앤티크, 에프터눈 티, 펍, 스포츠 등 6가지 요소를 소개한다.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 힌트를 얻을 수 있다. 유명하고 역사가 있는 큰 도시일수록 특정한 소재를 선정해서 소개하면 확실히 책의 색이 잡힌다는 것이다. 꼭 런던 전체를 소개할 필요는 없다. 런던의 카페, 서점, 미술관, 공원 등 하나만 선정해도 글감이 된다. 이 글감은 구체적이면 구체적일수록 좋다.
후자의 경우는 여행 수요가 많지 않아 책이 없는 경우가 많다. 결국 어떻게 책을 낸다 하더라도 그대로 묻힐 수도 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보자. 여행이 일상화되고 있는 현재 앞으로 그 영역은 더 확장될 것이다. 그래서 미지의 여행지일수록 당장은 아니더라도 나중에 내가 그 분야를 선점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 크로아티아는 <꽃보다 누나>라는 방송에 나오기 전에는 생소한 여행지였다. 책은 물론 인터넷에도 정보가 거의 없었다. 하지만 방송이 되고 난 후 당시 시중에 출간되었던 거의 유일했던 크로아티아 여행책이 꽤 인기를 끌었던 기억이 난다. 새로운 여행지를 개척하는 것도 이런 측면에서 오히려 좋을 수 있다.
지역에만 한정을 둬서 이야기했지만 사실은 더 다양한 선택지가 있다. 문학적인 글로 승부를 보는 경우, 독특한 여행 경험으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경우 등등. 지금도 스테디셀러에 올라와 있는 <엄마, 일단 가고 봅시다>처럼 여행 경험을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내놓은 책들이 독자의 폭발적인 반응을 불러오기도 한다. 또 큰 출판사를 통해 내는 것만이 꼭 좋은 것도 아니다. 현재 나는 독립 출판물에 관심을 갖고 있다. 지금 한창 출판계에서 인기 있는 주제인 회사 그만두기나 자존감을 다룬 책도 독립출판물에서 한참 전 유행하던 것이다.
나는 내가 다녀온 곳은 사람에게 알리고 싶어서 여행책을 쓰기 시작했다. 지금 와서 다시 한번 나에게 물어봐도 같다. 다만 그 짧은 기간에도 많은 것이 빠르게 변했다. 내가 다녀온 곳을 알리기에는 많은 사람들이 나와 같은 곳으로 여행을 떠나고 있다. 어떤 여행책을 쓸 것인지를 주제로 놓고 글을 적다 보니, 내게도 스스로 그런 질문을 던지게 된다. 누군가 그런 질문을 한다면 현실에 발을 붙이고 서서 바라보는 여행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고 말할 것이다. 더 이상 여행은 베일 속에 가려진 환상 같은 것도 80일간의 세계일주 같은 미지 세계 탐험도 아니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