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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의 두려움과 자기 검열의 늪

책쓰기는 결국 자기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기는 것이다

by 여행작가 윤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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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책을 출간하는 것이 오랜 꿈이었다는 분이 상담을 청해왔다. 자주 여행을 다니고, 글을 쓰는 것도 좋아하니 여태껏 경험한 것을 책으로 꼭 만들어보고 싶다는 것이었다. 생소한 도시로 오랜 기간 여행을 다녀서 콘텐츠에 경쟁력이 있었고, 글도 나쁘지 않았다. 책을 내기로 결심을 했다면, 여행 경험을 여러 형태의 글로 써보라고 권했다. 하지만 그분이 갖고 있는 고민거리는 따로 있었다. '운 좋게 출간을 하더라도 내 책을 봐줄 사람이 과연 있을 것인가?', '나 같은 평범한 사람의 여행기를 독자들이 좋아할까?'와 같은 결이 다른 방향의 고민이었다. 일단 글 몇 편을 쓰고 나서 다시 생각해보자고 말했지만, 두어 번의 상담 후에도 그 고민은 크게 덜어지지 않는 모양이었다.


소모적인 고민으로 보이지만, 의외로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꽤 있다. 책을 쓰려는 사람이라면 당연한 고민이다. 기본적으로 책은 독자를 위해, 독자를 향해 쓰여야 하기 때문이다. 다만 고민의 순서가 잘못됐을 뿐이다.


상상력이 풍부한 사람이라면, 책을 쓰기로 마음먹은 순간 그 후에 벌어질 일에 대한 시나리오가 머릿속에 영화처럼 펼쳐질 것이다. 책 한 권의 분량의 글을 짧은 시간 내 완성해서 출판사와 계약을 한 뒤에, 내 이름이 새겨진 책이 서점 가판대에 올라와 있는 순간까지. 나아가서 작가가 된 후 주변인들의 반응과 이름 모를 사람들이 내 책을 구매하는 장면까지도. 반편 그 황홀한 상상 끝에는 두려움도 있다. 고마운 독자들이 날카로운 비판자가 되어 내 글을 낱낱이 뜯어서 평가하고 손가락질하고야 마는, 혹은 관심조차 받지 못한 채 소리 소문 없이 책이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몰려오기 시작한다. 이런 상상 속 프로세스를 한 바퀴 돌리고 나면 처음의 의욕조차 물거품처럼 사라지고 만다. 이런 간사한 생각의 중심에는 항상 자기 검열자가 자리하고 있다.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나 소재가 떠올라도 검열자가 불쑥 나타나 온갖 비난의 이야기를 하면, 생각과 의욕은 사라지고 만다.


슬로베니아를 여행할 때였다. 류블랴나는 작은 도시로 마땅히 할 것이 없어 며칠 내내 류블랴나 성에 올랐고, 같은 거리를 매일 걷곤 했다. 그때 한 현지인과 친해질 기회가 생겼는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저녁 초대까지 받게 되었다. 그때 나는 지레 겁을 먹었다. 낯선 장소에서 모르는 사람들과 밥을 먹는 어색한 상황이 머릿속에 그려지면서 간신히 핑계를 대며 거절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낯선 현지 문화를 경험할 좋은 기회와 괜찮은 글감을 놓쳐버린 것 밖에 되지 않은 것 같아 아쉽기만 하다. 여행 중에도 종종 자기 검열로 인해 재미있는 경험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곤 했다.


검열자가 가장 크게 움직일 때는 글을 쓸 때다. 특히 '누군가에게 보이는 글'일 경우에는 더욱 날뛴다. 문장은 어떤 모양새인지, 단어의 쓰임이 적절한지, 띄어쓰기는 정확한지까지. 문단이 끝날 때마다 검열병이 도진다. 검열에서 빠져나오는 법은 단 하나다. 검열할 틈도 없이 의식이 흘러나오는 대로 막 쓰는 것이다. 그래서 초안을 쓸 때는 이미 쓴 것은 보지 않고, 생각의 흐름을 그대로 나열하려고 노력한다. 요즘 인터넷 글을 보면, '의식의 흐름대로 아무 말이나'를 전제에 두고 글을 쓰는 것이 반 농담처럼 유행하고 있는데, 자유로운 글쓰기에 이보다 맞아떨어지는 주문은 없다. 마구잡이로 쓰기의 효과는 양적으로 글을 채우는데 힘겨워하는 사람에게 적합한 방법이기도 하다. 사사키 아타루는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이란 책에서 루트비히 뵈르네의 수필 <사흘 만에 독창적인 작가가 되는 법>에 대해 언급한다. 제목 그대로 독창적인 글을 쓰기 위해서는 사흘간 방에 틀혀박혀 생각한 것을 모두 종이에 적으라는 것이다. 부끄럽고 불쾌한 일, 괴로운 일 등 내 안의 모든 생각을 사흘 내내 적다 보면 뭐든 쓸 수밖에 없고 거기에는 검열이 존재할 수 없다. 검열과 억압을 떨쳐내고 글을 쓰다 보면 특별한 뭔가가 보이게 된다는 것이다.


무조건 써 내려가기를 시작할 때, 글의 주제를 '내 마음을 움직였던 경험'부터 잡으면 한결 도움이 된다. 처음 나에 대한 글쓰기를 시작할 때, 나는 최악일 정도로 검열이 심했다. 글의 질이 문제가 아니라 한 문장을 쓸 때마다 고쳐쓰기를 반복하는 탓에 도무지 진도가 나가지 않아 고민이었다. 그때 이 생각의 흐름대로 쓰는 글쓰기를 시작했다. 짧은 시간 내에 글을 쓰되, 수정하거나 끊어 쓰지 않는다는 규칙을 정하고 하루에 일정 분량은 반드시 썼다. 초반에는 의무감으로 쓰는 글이라 쉽지 않았다. 그러다가 한 번은 '나는 왜 회사를 그만둘 수밖에 없었는가?'에 대한 주제로 글을 써본 적이 있었는데, 10분도 안돼서 에이포 두세장 가량의 글을 썼다. 당시 내 인생의 최대 화두였던 주제로 그 어느 때보다 글 쓰는 게 쉬웠다. 속은 후련했고 글은 에너지가 있었다. 지금도 글이 잘 써지지 않을 때면, 워밍업으로 내가 가장 쓰고 싶은 일에 대해서 먼저 쓰고는 한다. 어릴 적 강렬했던 기억, 어제 봤던 영화에 대한 이야기, 이번 주 가장 힘들었던 순간 등등. 이 공식은 여행기에서도 적용된다. 당장 여행기를 써야 하는데 어떤 주제를 잡아야 할지 모르겠다면,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에 대해서 쓰면 된다. 루앙프라방 야시장의 기가 막힌 국수에 대하여, 사운드 오브 뮤직에 등장한 샤프베르크 산에 올랐을 때의 감격을, 그리스 섬의 화가와 나누었던 이야기에 대해서. 글감이 늘어나고, 쓰는데도 한결 편해진다.


여행기의 경우, 글쓰기 자체보다는 글의 소재를 찾는데 어려움을 느끼는 분이 있다면 여행법에 대해 고민을 한번 해보면 좋겠다. 일정이 빽빽한 패키지여행을 쫓기듯 하고 나서 감동 있는 글을 쓰기는 어렵다. 내 생각 없이 누군가의 루트를 그대로 따라한 여행도 마찬가지다. 혹시 여행 중 기록을 하지 않는다면? 그때의 감흥을 나중에서야 글로 표현하기란 글에 익숙한 작가도 쉽지 않을 것이다. 현지 사람과의 교감은 어떤가? 어떨 때는 유명한 관광 명소를 보는 것보다 사람과의 관계를 통해 얻는 경험이 더 감동적일 때가 있다. 사람과 만났을 때의 파장은 에너지가 커서 저자, 독자 모두에게 울림이 크다. 꼭 사람이 아니어도 본인에게 감흥을 주는 요소를 찾는 것도 좋다. 각 나라의 건축물, 미술관, 전통 음식 등, 동물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고양이를 만나는 것도 하나의 소재가 될 수 있다.


책을 출간한 후에도 잡다한 생각은 끊임없이 이어진다. 책에 그 내용은 안 넣는 게 좋지 않았을까? 개인의 경험을 가장한 쓸데없는 비판을 늘어놓은 것은 아닐까? 혹은 너무 편향적으로 좋은 말만 늘어놓은 것은 아닐까? 이런저런 검열과 걱정이 차오르는 것은 어떨 수 없지만, 결국 판단은 독자의 몫이다. 책을 쓰는 입장에서는 본인의 주관대로 최선을 다해 쓰고 책을 내놓으면 그걸로 역할은 다 한 것이다. (물론, 쓴 것에 대한 책임은 져야 한다) 독자의 반응이 신경 쓰인다면 그건 출간 후에도 충분히 하게 되는 고민이니, 우선은 내 안의 글쓰기 검열관과 싸워 이기는 것이 우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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