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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의 목소리를 찾아라!

책에서 어떤 톤으로 이야기할 것인지 결정해라.

by 여행작가 윤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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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든 상황에 따라 목소리 톤이 달라진다. 나는 그 간극이 큰 편이다. 이전 직장에서 업무적인 이야기를 할 때면 지극히 사무적인, 딱딱한 말투가 저절로 나왔다. 몇 년의 사회생활로 터득한 훈련된 목소리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무시당하는 경우가 생겼다. 친한 사람과 함께일 때면 소리가 작고 얇은, 가장 편안한 상태의 목소리가 나온다. 강의처럼 많은 사람들 앞에서 내 이야기를 전달해야 할 때는 의식적으로 목소리를 크게 낸다. 비교적 굵고 안정적인 톤으로 바뀌고, 어조에 강약이 생긴다. 그 모습이 전혀 다른 사람 같다는 이야기를 듣곤 했다. 어떤 것이 진짜 내 목소리인지는 모르겠다. 다만 상황에 따라 내 이야기, 콘텐츠를 효율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가장 적절한 목소리 톤을 찾아 두는 것은 필요한 일이라 생각한다.


모든 작품에는 창작자의 목소리가 있다. 영화, 그림, 음악, 소설 등 그 안을 채우는 것이 창작자의 주장이 담긴 콘텐츠라면, 어떤 분위기 또는 기조로 말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이 목소리, 즉 톤이다.


얼마 전, 영화 <다키스트 아워>를 봤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위스턴 처칠의 활약을 그려낸 영화로, 게리 올드만의 대단한 연기를 보며 감동했다. 더불어 기억나는 것은 영화 내내 유지됐던 흑백의 우울한 톤이다. 전쟁의 시대를 강조하기 위해 설정한 장치다. <셰이프 오브 워터>는 애초에 흑백으로 기획된 영화였다. 제작 방향이 바뀌면서 미술에 공을 들이게 됐고, 흥행은 물론 아카데미에서 미술상까지 수상했다. 영화는 등장하는 여러 요소의 색에도 많은 의미를 담고 있다. 흑백의 괴생명체는 아무리 상상해도 짐작이 가지 않는다. 톤은 영화에 몰입하게 만드는 중요한 요소다. 영화로 예를 들었지만,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다. 어떤 어조를 택하느냐는 생각보다 중요하다.


여러분이 책을 출간하기 위해 글의 분량을 어느 정도 채우게 됐다면 통으로 글의 흐름을 살펴봐야 하는 순간이 온다(단편 글쓰기와 책 쓰기의 가장 큰 차이는 여기에 있다). 그럴 때 만족스럽지 못한 부분을 여럿 발견하게 될 것이다. 원고를 하나로 꿰는 주제가 없어 중구난방으로 흩어져 있다거나, 글의 구조가 체계적이지 않을 수 있다. 또는 특정 글의 문장이 유독 마음에 들지 않기도 한다. 그런 와중에 미묘하게 뭔가 이상한 것 같은데 그 원인을 발견할 수 없다면 톤에 대해 점검해보길 권한다.


글의 톤이란 무엇인가? 내 이야기를 전달할 수 있는 문장의 어조나 분위기라고 생각하면 된다. 책을 쓸 때 글의 톤은 두 가지 정도만 생각하고 유의하길 바란다.


첫 번째, 내 콘텐츠에 맞는 톤을 찾아야 한다. 목소리와 마찬가지다. 콘텐츠의 유형에 맞는 톤이 있다. 예를 들어 '스페인의 문화를 인문학으로 접근해보는 책'을 쓴다고 해보자. 여기에 가벼운 톤이 어울릴까? 다소 딱딱하지만 확신에 찬 어조를 유지하거나 서정적인 문장보다는 객관적인 사실을 전달하는 기사문 형태의 글을 쓰는 것이 더 적합할 것이다.


두 번째, 그 톤을 책의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유지해야 한다. 톤은 저절로 찾게 되는 경우가 많다. 우리 모두 알게 모르게 글의 유형에 알맞은 형태의 글을 쓰는 훈련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다만 이것을 하나의 톤으로 끝까지 가져가는데 어려움을 느낀다. '유럽 여행 에피소드'를 책의 주제로 삼았다고 하자. 이런 문제가 간혹 생긴다. 파리에서 일어났던 즐거운 일에 대해 서술할 때는 글의 톤도 마냥 즐거워진다. 유머를 구사하고, 가벼운 어투로 글을 전개한다. 로마에서 우울한 일을 겪은 일을 묘사할 때, 글은 서정적으로 변한다. 어투는 시적으로 감성적으로 흘러간다. 아무리 단편이 훌륭한 글이더라도, 어딘지 모르게 모자란 책이 된다. 쓰는 나도, 읽는 독자도 뭔지 모르게 찜찜한 기분이 든다. 물론, 같은 톤을 유지하라고 해서 내내 즐거운 이야기만 쓰라는 것은 아니다. 여행지에서 겪었던 재미있는 에피소드, 당황스러웠던 일, 감동적인 이야기 등 여러 종류의 경험이 들어갈 수 있지만, 이야기하는 내 목소리는 내내 같은 어투여야 한다.



사전에 내 여행책의 성격을 정확하게 파악한다면 톤을 결정하는 것이 한결 더 쉽다. 여행지의 에피소드를 위주로 독자에게 여행의 재미를 알려줄 것인가, 여행지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를 제공할 것인가, 서정적인 여행기를 위주로 엮어 감성을 건드릴 것인가. 시중에 나와 있는 여행 서적을 훑어보면 크게 아래 세 가지 유형 정도로 구분할 수 있다.


1) 역사나 문화를 중심으로 한 여행책: 객관적인 사실 위주로 쓰는 글인 만큼 수식어를 줄이고, 담백하고 정확한 어투를 쓰는 것이 좋다.

"헝가리는 백 년 넘는 전통을 가진 국립발레단이 있을 만큼 발레 역사가 깊은 나라 중 한 곳이다. 발레 공연이 있는 날은 거의 만석일 정도로 대중적 인기가 높다. 프란츠 리스트(Franz Liszt), 졸탄 코다이(Zoltan Kodaly) 등 뛰어난 음악가들을 배출시킨 나라답게 헝가리인의 문화 예술에 대한 욕구는 높은 편이다. 부다페스트에는 오페라 하우스, 국립 극장을 비롯해 30개에 달하는 극장이 있으며, 공연비도 저렴한 편이라 우리나라의 영화처럼 쉽게 접할 수 있는 것이 대중화에 한몫했다."


2) 에피소드 중심의 여행책: 상황이 눈앞에서 그려지듯 생동감 있게 묘사하는 것이 좋다. 진지한 것보다는 결이 가볍고 통통 튀는 어투를 사용하는 것이 더 어울린다.

"이들은 마치 신선한 고깃덩어리를 향해 달려드는 하이에나 떼처럼 나를 물고 늘어졌다. 주특기인 모르쇠로 일관하며 꿋꿋하게 방어에 성공한 후, '정상적'이라 하는 공식 택시가 모여 있는 곳에 오니, 이쪽은 외려 시큰둥하다. 내가 가려는 곳은 돈도 안 될뿐더러 찾아가기도 까다로운 모양이었다. 아까 입장과는 반대로 이번에는 내 쪽에서 플리즈~를 연발하며 부탁과 부탁을 거듭한 끝에야 택시를 잡아 탈 수 있었다. "


3) 감정에 충실한 서정적인 느낌의 여행책: 저자의 문장력이 어느 정도 보장되어 있는 경우 볼 수 있는 유형이다. 내면의 생각을 문학적인 문체로 나열한다. 다소 정적이고, 차분하게 이야기를 전개한다.

"서가를 돌아보고 있자니 문득 '책의 생명력'에 대한 이야기가 떠올랐다. 책은 종이와 잉크로 이루어진 사물임에도 불구하고, 한 인간의 정신 또는 영혼이 담긴 물체라고 여긴 것은 오래전부터였다. 2천 년 전, 로마시대의 한 시인은 "책은 그 자체의 생명을 가지고 있다"라고 했다. 책을 읽는 행위는 한 사람의 머릿속을 엿보는 것과도 같아 마음이 맞는 책을 읽고 나서는 그 사람의 눈으로 세상을 보게 된다. 이렇게 시작한 책과의 교감은 마약 중독과도 비슷한 면이 있어서, 책에 매료된 다독가나 애서가, 탐서주의자들은 닥치는 대로 책에 파고들기 일쑤다."


어디에선가 악동뮤지션의 인터뷰를 본 적이 있다. 각 노래의 특성이 워낙 다채로우니, 그런 곡들을 어떻게 만들 수 있는지가 질문이었던 것 같다. 답변이 재밌었다. 다른 가수의 창법이나 노래 특성을 떠올리며 본인의 곡에 반영한다는 것이었다. 자신의 스타일에 여러 가수의 스타일을 덧붙이면 끊임없이 새로운 스타일의 곡이 나올 수 있다. 책의 톤도 그와 비슷한 부분이 있다. 이걸 응용해 글 연습을 해봐도 좋다. 좋아하는 저자의 책을 읽은 후 그 톤을 그대로 가져와 내 글을 써보는 것이다. 이 연습은 내 목소리를 상황에 맞게 자유자재로 내는 것과 비슷하게 글에 적합한 톤을 자유자재로 내보이는데 더없이 좋은 훈련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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