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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생한 여행기를 쓰기 위한 세 가지 팁

누구나 읽고 싶은 여행기를 쓰는 방법

by 여행작가 윤정인 May 11.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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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에 한 번은 대형 서점에 간다. 예전에야 심심할 때 들르는 게 서점이었지만, 요즘은 나름 목적을 갖고 방문한다. 최근 유행하는 출판 트렌드를 살피고, 그중 여행 서적은 어떤 유형이 주로 출간되는지 시장 조사를 위해서다. 여행 지역이 늘어나고 저자의 스펙트럼도 확장되면서 그만큼 여행 서적도 유형이 다양해졌다. 그럼에도 변하지 않는 것은 여행 에세이는 문장의 맛이나 글 자체의 매력보다는 '경험'을 파는 수단이라는 것이다. 물론 글맛이 있는 훌륭한 작품도 많다. 반면 절반 정도는 글이 썩 좋지는 않더라도 '여행 경험' 자체가 매력적인 경우다. 그래서 더 확신이 들었다. 여행책을 쓰는 것은 글쓰기에 재능이 없다 하더라도 본인만의 여행 경험과 관점을 갖고 있다면 누구든 도전할 수 있다. 필력이나 고고한 지식만으로 책의 가치를 평가하는 것은 예전 일이다. 개인이 책에서 얻고자 하는 가치가 그만큼 다양해졌기 때문이다.


이런 이야기를 계속 강조하는 이유는 풍부한 여행 경험이 있고, 글쓰기에 대한 의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쓰는 것 자체에 두려움을 갖고 있는 분을 많이 만나왔기 때문이다. 지금 진행하는 글쓰기 수업에서는 주어진 시간 안에 본인의 여행기를 빠르게 써보는 훈련을 하고 있다. 놀라운 사실은 본인 스스로 글쓰기가 미숙하다고 여기는 분 중 대부분이 아주 짧은 시간 안에 괜찮은 여행기를 써낸다는 것이다. 여행에서 얻는 새로운 경험과 다이내믹한 감정은 한편의 완성된 글을 만들기에 적절한 소재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써내기만 하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쓰기가 힘겹게 느껴지거나 여행기가 어딘지 모르게 부족하다고 느껴지는 분들을 위해 여행기를 쓰는데 유용한 몇 가지 팁을 적어보고자 한다.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글쓰기의 평범한 기법일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는 시시한 팁일 수도 있다. 단, 몇 년간 여행기를 끊임없이 쓰면서 분석하고 수강생의 글을 보면서 이 정도만 적용해도 여행기의 기본은 되겠다 싶은 방법이 있었다. 이를 참고하여 글쓰기 훈련을 해보길 바란다.


오감을 활용해 묘사하기

내 여행기가 어딘지 모르게 밋밋해 보이거나 유독 재미없이 느껴지는가? 그렇다면 단지 내가 겪은 일을 순서대로 나열했을 뿐, 상황에 대한 묘사가 부족하기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여행기의 핵심은 무엇인가? 독자에게 '마치 내가 그곳을 겪은 듯한 생생함'을 느끼도록 하는 것이다. 그걸 표현하는데 '오감'을 활용하는 것만큼 쉬운 게 없다. 내가 여행기 성격에 따라 오감 중 적절한 것을 하나 선택해 대입해보자. 가장 흔하게 적용할 수 있는 것은 시각이다. 예를 들어 바르셀로나 해변에서 겪은 사건에 대해 글을 쓴다면, 보통 사건 나열식으로 글을 쓴다. <바르셀로나 해변에서 아름다운 바다 풍경을 봤다. 바다에서 수영을 했고, 현지인 친구를 만나 재미있는 사건을 겪었다> 물론 이렇게 써도 한편의 글을 완성할 수 있지만 여기에 내가 '관찰'한 것을 세밀하게 덧붙인다면 글이 한결 풍성해진다. 바닷가에서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풍경은 무엇인가? 바다의 색깔은 구체적으로 어떤가? 해변에 있는 사람 중 인상 깊은 차림새를 한 사람이 있는가 그 사람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 그 날 날씨는 어땠나, 땀이 흐를 정도로 뜨거웠는가? 바닷가 주변에 상점 있었나, 카운터를 지키는 주인의 표정은 어떤가? 내가 본 것을 최대한 그리듯이 자세히 묘사해보는 것이다. 보는 이들의 머릿속에 저절로 그날의 풍경이 떠올라야 한다. 이런 식으로 디테일하게 내가 본 것만 묘사해도 그 글은 생명력이 생긴다.


일드 <고독한 미식가>가 재미있는 이유 중 하나는 고로가 음식을 먹으면서 읊조리는 맛에 대한 풍부한 표현 때문이기도 하다. 음식이 입에 들어온 순간의 식감, 음식 고유의 향, 풍미를 세세하고 맛깔나게 묘사한다. 음식 관련 여행기를 준비하고 있는 분이라면 고로처럼 식당의 풍경부터 음식 자체 고유의 맛을 강조해보자. 보다 주제에 집중된 책을 만들 수 있다.


묘사 표현의 좋은 점 중 하나는 '내 경험의 주관적인 평가를 단정하는 것'을 방지해주는 것이다. 단순하고 재미없는 여행기의 두드러진 특징 중 하나는 글쓴이가 어떤 경험에 대한 감정을 못 박아버리는 것이다. '오스트리아의 샤프베르크 산에 갔는데, 풍경이 무척 아름다웠다.' 또는 '멕시코의 유명한 맛집에 갔는데 역시 그 식당의 음식은 맛있었다.' 이렇게 별다른 배경 설명 없이 내 감정을 단정해버리는 것은 독자가 상상력을 발휘할 기회를 뻈는 것이다. 공감할 틈을 주지 않으니, 맥이 빠지고 이야기는 재미가 없다. 샤프베르크 산을 아름답다고 여겼다면, 그렇게 느낀 요소를 묘사하듯 보여주기만 하면 된다. 멕시코 식당에서 먹었던 음식에 대해 직접 그리듯이 글을 보여줘라. 감정에 대한 판단은 독자에게 맡겨두는 편이 좋다.


낯설게 보기

김연수 작가가 한 말 중에 인상적인 것이 있었다. 소설을 쓸 때 사물이나 인물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는 전제하에 글을 쓴다는 것이다. 나무 한그루를 묘사할 때도 그 나무에 대해 모른다는 가정을 하고 철저하게 관찰해 글로 적는다. 낯설게 보는 것은 내가 평소에 너무 익숙해서 인지하지 못했던 사물이나 환경을 깊이 있게 들여다보는데 도움이 되는 기법이다. 한 번은 이런 적이 있다. 매일 지나치던 골목길이 있었다. 십 년 이상 지나다니던 길이었다. 어떤 계기가 있던 것도 아닌데, 순간 그 골목길이 처음 온 것처럼 낯설게 여겨지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평소에 보지 못했던 주변 환경이 보이기 시작했다. 인지조차 하지 못했던 간판의 크기와 글자, 가로수의 크기, 골목 끝에 있는 가게 유리벽에 붙어 있는 낯선 포스터. 누구든 이런 경험을 했을 것이다. 일주일간 여행을 다녀오면, 내 방조차 낯설어 보이는 순간이 있다. 그 순간 내 방을 새로운 눈으로 볼 수 있게 된다.


사실 여행기는 억지로 낯설게 보지 않아도 절로 그렇게 된다. 여행지에서 보는 모든 것은 하나같이 낯선 것이다. 수백 년 된 바로크 양식의 성당, 거리에서 들리는 낯선 언어, 생전 처음 먹어보는 음식...

낯설게 보기는 어린아이의 눈으로 보는 것과 같다. 모든 것을 처음 보는 것처럼 받아들이기 때문에 표현이 신선하고 감정은 생생하다. 그것을 기록하면 된다. 다만, 여기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 풍부한 여행 경험이 없는 사람일지라도 이 낯설게 보기를 통해서 얼마든지 본인만의 관점으로 독특한 책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 과거 여행을 전혀 하지 않고 자신의 방안에서 상상력만으로 여행을 한 <나의 침실 여행>이라는 책도 출간된 적이 있다.


수강생 중 한 분이 해외 여행기를 담은 책을 내고 싶어 했는데, 한 권의 책을 내기에는 콘텐츠가 부족했다. 그분은 직업상 지방으로 출장을 자주 다녀서 외려 지방 여행에 대해 빠삭했다. 그래서 국내 여행기를 주제로 삼되, 익숙했던 요소들을 낯설게 보기로 하나씩 글로 풀어보라고 권했다. 현재 그분은 남부 지방 여행기를 준비 중이다.


여행책을 쓰기로 마음먹었다면 당장 주변의 소재를 낯설게 바라보는 것부터 시작해보자. 동네를 산책하면서 평소에 봤던 모든 것을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고 그것을 글로 옮겨봐라. 이색 카페 탐방을 하면서 비교하는 에세이를 써보거나 공원을 찾아 사람들이나 풍경을 세세하게 관찰하고 기록해보자. 이렇게 평범한 것을 다른 시선으로 보는 연습을 시작한다면, 굳이 화려한 배경이 없더라도 본인만의 독특한 여행기를 만들어낼 수 있다.


솔직하게 쓰기

한 때 베스트셀러에 올랐던 여행 에세이가 있었다. 여행지에서의 경험을 가볍게 풀어놓은 책이었는데, 솔직히 말하면 글이 많이 서툴렀다. 편집도 조잡했고, 심지어 맞춤법이 틀린 것도 눈에 띄었다. 그럼에도 이 책은 독자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다. 이유가 있었다. 살아있는 날 것의 여행기였다. 글쓴이가 모험을 즐기는 스타일이라 재미있는 사건이 많기도 했고, 무엇보다 본인이 경험한 것을 가감 없이 기록했다. 그래서인지 글에 활력이 넘쳤다.

앞서 글의 자기검열에 대해서 이야기한 적이 있다. 누구든 자기의 좋은 모습만 보여주고 싶어 하지, 실수하고 잘못한 모습을 내놓기 두려워한다. 이 책의 작가는 실수했던 일, 누군가를 불편했던 일, 나약하게 생각하고 행동했던 일 등 자신의 모든 것을 그대로 드러냈다. 독자들은 그 경험에 완전히 몰입한 것 같았다. 마치 본인이 여행하는 것 같은 즐거운 글이라는 평이 대부분이었다. 이때 여행기의 기본에 대해 새삼 깨닫게 됐다. 독자들이 여행기에 기대하는 것은 지식이 아닌 정서적인 체감이라는 것이다. 결국 여행기에 필요한 것은 어쩌면 글쓰기의 기술적인 면보다는 자신을 드러낼 수 있는 과감함과 용기다.


삶을 솔직히 드러내는 글에서 사람들은 저자와 동질감을 느끼고 그 지점에서 감동한다. 셰일 스트레이드의 <와일드>를 읽었다. 저자는 4000킬로미터의 PCT를 트래킹 하면서 과거의 삶을 회고한다. 아버지의 학대, 이혼, 마약 등 본인의 아팠던 삶을 전부 드러내고 힘든 여정을 통해서 이겨내고자 한다. 상처를 치유하는 여행에서 독자들은 저자와 함께 몰입해서 여행한다. 본인의 상처를 함께 돌아보면서 저자의 말에 위로받는다. 결국 나를 그대로 드러낸다는 것은 내 영혼을 울리는 글을 쓰는 것이며, 그래야만 누군가의 마음을 울릴 수 있다.


당장 여행기를 또는 글을 쓰고 싶지만 어렵게 느껴지는 사람이 분명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가장 먼저 내 마음속에 있던 글을 검열자 없이 그냥 쑥 내려써봐라. 마음이 시키는 대로 글을 한번 써봐라. 용기가 생기면 그 글을 공개된 매체에 게시해봐라. 한 명이라도 공감하는 사람이 나타날 것이다. 물론, 여행기에도 이 룰은 어김없이 적용된다. 생생한 여행기는 솔직함에서 나온다.



글쓰기 기법이나 글쓰기 훈련법은 넘쳐난다. 이 글은 글쓰기 비법이라기 보다 내 경험을 글로 옮기는 것 자체에 두려움을 느끼는 분에게 전달하고 싶은 팁이기도 하다다. 용기가 없어서 계속 미루고 있다면 한 번쯤은 여행했던 기억을 더듬어 글 한편을 완성해보길 바란다. 거기서부터가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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