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사진에 대하여
카메라 때문에 곤란했던 적이 딱 한번 있었다. 프라하를 여행할 때였다. 좋은 사람들을 만나고 멋진 풍경에 취해 마음이 느슨해졌던 것 같다. 손에서 한시도 놓지 않았던 카메라를 잠깐 놨다. 계산을 해야 했나, 아무튼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였다. 묵직한 것이 굴러가는 소리와 함께 카메라가 바닥에 뒹굴고 있었다. 다행히 부서지진 않았지만 렌즈 초점이 제대로 맞지 않았다. 수동으로 초점을 맞춰서 그럭저럭 사진을 찍을 순 있었지만, 며칠간 불안감은 가시질 않았다. 결국 중고 카메라 매장에 들렀다. 체코는 공산품이 비싼 편이다. 번들 렌즈는 한국보다 두배 가량 비쌌다. 그걸 사고 나서야 비로소 나는 안심했고, 여행을 즐길 수 있었다. 여행 중 그 렌즈를 거의 사용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카메라와 사진에 집착하는 편이다. '사진보다는 눈으로 하나라도 더 담아가는 게 좋아. 그게 여행의 기억을 더 좋게 만드는 것 같아.' 루마니아에서 만난 일본 여행객이 사진을 수십 장씩 찍어대는 나를 보며 이런 이야기를 했었다. 뜨끔했다. 나는 진정한 여행을 하고 있는가? 자문해보기도 했다. 그럼에도 어쩔 수 없다. 사진으로 내 기억을 박제해 놓아야만 나는 안심했고, 내 여행은 완성됐다. 가끔 스트레스를 받으면 꾸는 악몽이 있다. 여행 중 카메라를 깜박하고 놓고 오는 것이다. 꿈속에서 비현실적인 아름다운 풍경을 보면서 내내 불안에 떨다가 잠에서 깨곤 했다.
처음 사진에 재미를 느낀 것은 '사진의 이론'이라는 대학 수업을 들은 후였다. 디지털카메라가 막 나오기 시작할 때여서 필름 카메라를 두고 수업을 했다. 이론은 지루했지만 사진을 직접 찍어보는 시간이 주어졌다. 원하는 장소에서 사진을 찍어온 후 직접 필름을 풀어 현상하고, 용액에 담가 인화를 했다. 내가 찰나에 담은 순간에 네모난 프레임에 선명하게 찍혀 나오는 것이 신기하고 근사했다.
원하든 원치 않든 사진을 계속 찍었다. 필름 카메라를 들고 공원이나 거리를 돌아다니며 사진 찍던 것을 몇 달하고 그만뒀다. 입사하고 나서는 회사에서 주최하는 행사에서 단체 사진을 찍었고, 사보에 실릴 인터뷰를 하며 웃거나 말하는 사람들의 사진을 찍었다. 사진을 더 잘 찍고 싶어 DSLR을 제대로 다루는 법 같은 교육도 여러 번 들었다. 꽤 오래 사진을 찍어왔지만, 내가 찍은 사진이 좋은지는 잘 모르겠다. 그럭저럭 번지르르하게는 찍지만, 알맹이가 없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반면, 요즘 블로그에 올라오는 여행기를 보면 다소 거칠지만 구도나 색감, 사물을 바라보는 시선 등이 독특하고 개성 있는 사진이 정말 많다. 그걸 볼 때면 사진은 타고난 감각이 필요한 예술 영역임을 새삼 깨닫는다.
그나마 경험이 쌓이다 보니 나름의 사진 찍는 비법도 있긴 있다. 그중 가장 쉬우면서도 번거로운 방법은 '일단 많이 찍는 것'이다. 나만의 비법은 아닌 것 같다. 인터넷에선가 잡지에선가 작품 사진을 주로 찍는 사진작가가 '같은 장소를 수없이 찍고 그중 괜찮은 것을 골라낸다'는 말을 했다. 아마추어인 나는 그러므로 잔뜩 찍고 본다. 처음에는 그냥 무작정 많이 찍기만 했다. 하다 보니 요령이 생겼다. 같은 장소라도 각각 다른 형태로 찍는 것이다. 가로, 세로, 위에서, 아래에서, 측면, 줌인, 줌아웃 등등. 그렇게 여러 구도를 확보하면 나중에 그 풍경, 사물에 가장 잘 어울리는 최상의 사진을 얻을 수 있다.
내가 갖고 있는 카메라에 대해 아는 것도 중요하다. DSLR이냐 스마트폰이냐는 중요하지 않다. 그 성능을 자유자재로 또는 최대치로 활용할 줄 아는 게 더 좋다. 한 DSLR 강좌에서 들었던 말이 아직도 기억난다. 매뉴얼만 세 번 정독해도 사진의 기본은 할 줄 안다는 얘기였다. 내가 의도하는 사진을 만들기 위해서는 기계를 제대로 조작할 줄 알아야 하는 건 당연하다. 관광객이 북적이는 바티칸 박물관에서 아폴로 조각상만을 강조해서 찍고 싶다면 조리개의 수치를 적당히 설정해 원하는 심도를 찾아낼 줄 알아야 한다. 스페인 투우 경기의 역동적인 모습을 담고 싶다면 셔터스피드에 대해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야경에 적절한 감도와 조리개 수치를 알고 있으면, 불타오르는 듯한 부다페스트의 야경을 쨍하게 담아낼 수 있다.
가끔 잡지에서 글을 요청받을 때가 있다. 글보다 고민인 건 사진이다. 매체에 따라 필요한 사진은 다르다. 보통 블로그는 여행의 흔적을 모두 올려도 무방하다. 전체를 보여줄 필요가 없다. 퍼즐의 조각처럼 부분 부분 원하는 곳을 보여주고, 굳이 다 끼워 맞추지 않아도 된다. 여행책은 지면에 제약이 있긴 하지만 텍스트에 맞는 사진을 고르거나 저자가 보여주길 원하는 사진을 수록하기 때문에 비교적 선택이 자유로운 편이다. 반면 잡지나 사보는 까다롭다. 지면이 제한되어 있는 데다가 이미지가 중요한 매체이기 때문에 사진의 퀄리티도 좋아야 한다. 글의 주제와 맞으면서도, 대표격인 사진 이어야 한다. 런던 뮤지컬 문화에 대한 글을 썼다면 적어도 극장이 모여있는 레스터 스퀘어 거리의 전경 사진이나 대표할만한 뮤지컬 공연 사진은 확보하고 있어야 한다. 오스트리아의 잘츠부르크에 대해 쓴다면, 도시의 전경 사진 혹은 모차르트와 관련된 사진은 갖고 있어야 한다. 그래서 여행 중 사진을 찍을 때 도시의 대표 격인 사진은 반드시 확보하려고 노력한다. 이를테면, 도시의 전경 사진을 찍기 위해 도시의 가장 높은 곳에 반드시 먼저 오른다. 터키 여행 중에는 세마 춤 공연을 보고 사진을 찍거나 라오스에서 온갖 종류의 쌀국수를 먹고 사진을 잊지 않고 찍는다. 여담이지만, 음식은 내가 가장 사진 찍는 걸 힘들어하는 분야였다. 혼자 식당에서 밥을 먹는 것도 가끔은 뻘쭘할 때가 있는데, 커다란 카메라로 식당 내부부터 음식까지 일일이 찍는 것이 왠지 모르게 부끄러웠기 때문이다. 다만, 한 가이드북에 실을 음식 사진이 마땅치 않은 것을 두고 한참을 고민한 후로는 양해를 구해서라도 사진 촬영은 꼭 해두려 하고 있다.
지금에 와서는 여행지에서 무엇을 찍어야겠다는 감이 어느 정도 오지만, 여전히 잘 못하는 것은 현지인을 사진의 주인공으로 담는 것이다. 사실은 필요성을 느끼지도 못했고, 사진을 찍기 위해 누군가와 억지로 소통하는 것도 거부감이 들었다. 큰 카메라를 들고 다니는 것이 신기한지 먼저 호기심을 보이며 사진을 찍어달라고 요청하는 사람이 종종 있긴 하다. 로마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한 이태리 청년은 카메라의 가격에서부터 성능까지 세세하게 물었다. 비행기에서 내리고 난 후에 공항에서 기념사진을 찍어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쾌활한 청년이어서 사진을 찍어주고 기분 좋게 헤어졌다. 이런 경우가 아니고서야 굳이 사진을 찍진 않는다.
몇 안 되는 경우 중 하나지만 사진과 관련해 기억에 남는 현지인이 있다. 벨리코 투르노보의 골목길을 걷고 있을 때였다. 여자 아이 둘이 깡총거리며 뛰어오더니 사진을 찍어달라고 했다. 얼룩말 그림이 그려진 벽으로 나를 끌고 가 알아서 이런저런 포즈를 취했다. 사진을 찍어주면서도 사랑스러운 아이들이라 생각했다. 몇 컷을 찍은 후 한 아이는 친구를 불렀고, 그 후 다른 아이는 오빠와 엄마를 차례로 불렀다. 졸지에 대여섯 명의 사람이 모였고, 가족사진을 찍는 자리가 됐다. 아이의 엄마는 종이에 주소를 적어주며, 나중에라도 사진을 꼭 보내달라고 했다. 손에는 흑백 프린트로 출력한 구겨진 가족사진을 들고 있었다. 가끔은 현지인의 사진을 찍어주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여전히 먼저 다가가서 사진 찍자는 말은 하진 못 한다.
그때 찍은 사진을 지금 보면, 아이들의 사랑스러움이 묻어나 있다. 내가 피사체를 그런 눈으로 봤기 때문일 것이다. 결국 사진을 잘 찍는 것은 기술적인 것도, 예술적인 부분도 필요하지만 내가 세상을 보는 관점이 있어야 함을 알게 됐다. 어떤 사람은 매일 보는 창밖의 모습을 카메라로 찍은 후 그걸 모은 사진집을 내기도 했다.
다시 FM2 카메라를 꺼냈다. DSLR은 편리함에 맡기는 대신 내가 찍고 싶어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어졌다. 필름 카메라는 여러 번 찍을 수 없고, 바로 결과물을 확인할 수도 없다. 몇 번을 구도를 바꾼 뒤에 찍는 한 장이 무엇보다 소중하다. 그렇게 나온 결과물은 거칠어도 내 시선이 들어가 있다. 아예 쓰지 않을 순 없지만 조금씩 DSLR 사용 빈도를 줄여볼까 생각한다. 사진에 대한 집착이 조금은 줄어들기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