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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작가의 SNS 활용기

여행기와 블로그 그리고 SNS

by 여행작가 윤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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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있는 일은 아니지만, 여행을 하다가 간혹 마음이 맞는 사람을 만난다. 공통점이라곤 같은 여행지에 비슷한 시간에 도착한 것뿐인데도 특별한 인연이 될 때가 있다. 루마니아를 여행할 때 한 일본인과 각기 다른 도시에서 여러 번 마주쳤다. 시기쇼아라행 기차 안에서 세 번째로 우연히 마주쳤을 때 결국 말을 텄고, 루마니아를 여행하는 내내 함께 했다. 그녀는 헤어질 무렵 '어디에선가 또 우연히 보길 바래' 가벼운 인사 대신, 페이스북 주소를 물었다. '세상을 더 가깝게' 하겠다는 페이스북이 있으니 더 이상 비포 선라이즈의 어긋난 인연 같은 불상사가 생기지 않겠지만, 왠지 모르게 불편했다. 형식적으로 만들어 놓은 페이스북 주소를 건넸고, 서로 한 두 번 안부를 묻고 난 후 인연은 허무하게 끝나고 말았다.


SNS는 여행과 떼놓고 이야기할 수 없다. 경험을 누군가와 공유하고, 공감받길 원하고 나아가서는 내 일상을 그럴듯하게 보여주는 것이 SNS를 하는 이유다. 그 콘텐츠로 여행만큼 적절한 것이 없다. 음식에 이어 가장 핫한 소재가 여행일 것이다. 이런 흐름은 여행 작가에게도 유리하다. 기본적으로 확보하고 있는 여행 콘텐츠가 많기 때문에 있는 그래도 SNS에 올리기만 하면 된다. 잘 포장된 여행 사진과 글을 보고 많은 사람이 호응하고, 그걸로 1인 홍보 매체를 잘 키울 수도 있다. 이론은 그럴듯하게 말하고 있지만, 나는 SNS를 어려워하는 편이다. 트렌드에 뒤쳐지거나 잘 몰라서는 아니다. 트위터나 페이스북이 막 들어왔을 때 비교적 먼저 나서서 시작했다. 싸이월드에서 한참 발전한 새로운 세계가 신기해서 되는대로 짧고 소모적인 글을 곳곳에 널어놓았다. 논문 주제도 SNS로 선정했을 만큼 관심도 깊었다. 단지 내 개인의 모든 것을 공개해야만 그것을 먹이 삼아 페이스북도 덩치가 커진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는 모든 것이 부담스러워졌다. 남들이 한창 페이스북에 열을 올릴 무렵 계정을 삭제했다.


요즘 1인 기업 비슷하게 개인 활동을 하다 보니 홍보가 절실해지면서 다시 페이스북, 인스타그램을 열였다. 여전히 적극적으로 하진 못한다. 여행 중 풍경 사진을 간혹 올리는데, 그것도 철저하게 검열한 후에야 게시 버튼을 누른다. 페이스북에서 여행 이야기를 재미있게 잘 풀고, 흔히 말하는 페북 스타가 되고, 책까지 출간하는 사람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내겐 그들이 좋은 의미로 대단해 보인다. 내가 절대 일구지 못할 영역을 매끄럽게 다지는 것 같아서 부럽기도 하다. 얼마 전에는 페이스북 페이지를 열어보려고 끄적거리다가 결국 포기하고 말았다.


반면 블로그는 SNS 중 유일하게 안식처 같은 공간이다. 약 7년간 여행 블로그를 무사히 운영해온 것으로 봐서 그럭저럭 나와 궁합이 잘 맞는 것 같다. 빠르게 게시글을 올려야 하고 짧은 시간 내에 휘발하고 마는 다른 매체와 달리, 블로그는 무게가 있다. 여기서 생산한 정보는 죽지 않고 묵직하게 아래에서 유유히 헤엄쳐 돌아다닌다. 세밀한 검색어로 낚기만 하면, 좋은 정보는 언제든지 수면 위로 떠오른다. '나'를 중심으로 모든 정보를 파생해야 하는 다른 SNS와 달리 나를 드러내지 않고서도 얼마든지 알차게 꾸려나갈 수 있다. 보이지 않는 독자들을 설정하고, 그들을 위한 콘텐츠를 내놓으면 그만이다. 형식이 정형화되어 있지 않아 쓰는 재미가 있다. 단편의 글을 페이스북처럼 올릴 수도 있고, 편집 스타일을 잘 활용하면 잡지 기사 혹은 단행본 비슷하게 편집이 가능하다. 무엇보다 '여행지의 모든 것'을 보여줘야 하는 여행기에 더할 나위 없이 적합한 매체다. 스크롤 압박이 올 정도의 긴 글을 제한 없이 많은 사진과 함께 게시할 수 있다. 온라인 매체이긴 하지만, 가장 아날로그 매체와 가까운 형태라고 본다. 그런 차원에서 인스타그램은 낯설다. 태그를 이용해 짧은 단어를 구성하는 것이 하나의 재치와 센스로 여겨지는 걸 알지만, 문장 사이에 태그가 들어있는 그 모양이 다른 세계 말처럼 기묘하게 보인다.


블로그의 덕도 많이 본 편이다. 처음 여행책을 쓰려고 마음먹었을 때, 무엇부터 해야 할지 막막했다. 고민한 끝에 딱 두 가지만 하자고 결심했다. 하루에 한편씩 일정 분량의 여행기를 써서 책 분량의 콘텐츠를 확보할 것, 여행 블로그를 개설해 하루에 한 번씩 포스팅할 것. 내 글을 확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외부와 연결하는 것도 못지않게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몇 달간 하루도 빠지지 않고 글을 썼다. 그때는 나름 절실했고 열정도 있었다. 블로그를 그렇게 꾸준히 운영하면서 변할 것 같지 않은 것이 변했다. 글을 쓰는 것이 한결 편해졌다. 짧은 글이든 긴 호흡의 글이든 한 자리에 앉아서 내리쓰는 습관은 이때 기른 것이다. 수업을 하다 보면 글쓰기에 어려움을 겪는 다양한 사례를 볼 수 있다. 글쓰기의 시작을 어려워하는 경우, 글의 질에 대한 고민, 길게 쓰는 것을 어려워하는 것 등등. 무엇보다 아쉬운 것은 초반의 의지와 다르게 시간이 지날수록 글쓰기와 멀어지는 분들이다. 한결같이 쓰고 싶지만 생각처럼 잘 안된다는 분들에게 나는 블로그를 권한다. 나만 보는 양질의 글을 오랜 기간 꾸준히 쓰는 것은 강한 의지가 있거나, 글쓰기를 원래 즐겨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어렵다. 누군가 지켜보는 매체에 글을 올리면 어느 정도 극복이 된다. 한 명이라도 공감해주는 독자가 생기면 다음 편을 쓸 힘이 된다. 남이 보는 글이기 때문에 글의 질에도 신경 쓰게 된다. 볼로그를 하다 보면 결국 '내 이야기'를 제대로 할 수 있게 된다. 내 이야기를 제대로 할 수 있으면 책을 쓰는 것도 어렵지 않게 된다.


정성스럽게 블로그에 글을 쓰고, 콘텐츠가 늘어나면 출간의 기회가 애쓰지 않아도 온다. 아시다시피 파워블로거만이 책을 내는 것은 아니다. 일정한 주제로 양질의 글을 올리다 보면 하나의 책으로 엮어도 될 만큼 가치 있는 콘텐츠가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쌓여 있을 것이다. 나 역시 꾸준히 블로그를 운영하던 중 출간 제안을 여러 곳에서 받았고, 두 권의 책을 공저로 출간했다. 당시 내 블로그 규모가 크지는 않았지만, 포스트 하나하나에 여행기를 충실하고 알차게 구성하려고 노력했다. 협찬이나 유입률을 높이기 위한 꼼수 등이 판을 치고 있는 블로그라도 꾸준히 자기의 콘텐츠를 확보한다면 사람들은 알아보고 신뢰하게 되어 있다. 만약, 앞으로 블로그를 1인 홍보 매체로 제대로 운영해보고 싶은 분이 있다면 꾸준히 운영하는 것은 물론, 본인이 자신 있는 딱 하나의 주제만 다뤄보길 권한다.


여기까지 글을 쓰고 보니 나를 철저하게 숨기고 싶어 하는 은둔형 사람으로 보일 수 있겠다 싶다. 어느 정도 맞지만 기본적으로 블로그를 운영하는 이유는 내 이야기를 공유하고, 사람들이 내게 공감해줬으면 하는 욕구가 있기 때문이다. 여행작가이자 여행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내 이야기를 사람들이 좋아하고 반응을 보이면 정말 기쁘다. 책으로도 피드백을 받을 순 있지만, 즉각적인 반응이 올라오는 것은 블로그다. 가끔 내 글이 재미없다 싶을 때, 또는 마냥 편하게만 글을 올릴 수 없어서 글쓰기를 망설이고 있을 때, 기다리고 있다는 말 한마디를 해주는 사람들이 있어서 힘을 내서 다시 쓸 수 있다. 여행 중 외로움을 느낄 때 가끔 블로그에서 위로받기도 한다.


오래 운영했던 매체가 블로그라서 내내 블로그에 대해서만 이야기했지만, 브런치도 마찬가지다. 브런치 같은 매체가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티스토리나 블로그가 점점 하향세를 타고 있는 추세에 이처럼 글쓰기에 최적화 한 큰 규모의 플랫폼이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다는 것에 안심하고 있다.


소셜미디어 전문가가 아니라 앞으로의 방향을 가늠할 수는 없다. 다만 여행이 '이미지나 글로 보여주는 콘텐츠'인 만큼 매체에 민감해야 할 필요성은 있다고 본다. 팟캐스트, 유튜브에도 여행 콘텐츠가 늘어나고 있다. 새로운 형태의 플랫폼도 쉴 새 없이 나온다. 글을 쓰고 좋아요로 돈을 벌 수 있다는 스팀 잇 또는 동영상 전용 SNS 등 다양한 소셜미디어가 이미 선보이고 있다. 여행작가로서 생각해보면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유리하다. 예전에 책만으로 소통했을 때 가졌던 한계들, 이를테면 사진을 전부 실을 수 없다거나, 소소한 여행의 뒷 이야기들, 여행지를 실감 나게 보여주는 영상 등 여러모로 한계가 있었지만 매체가 늘어나면 하나의 콘텐츠를 활용해 다양한 매체로 여행지를 보여줄 수 있게 되니 나쁠 게 없다.


반면 가끔 아찔하기도 하다. 너무 빠르게 변해가는 플랫폼과 콘텐츠에 살아남을 수 있을까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페이스북에 혹했지만, 결국은 적용할 수 없었던 것처럼. <책의 우주>에서 움베르토 에코는 책의 발견이 바퀴의 발명한 것과 같다고 했다. 영화, 라디오 같은 기계적인 발명품과 달리 대체할 수 없는 물건이기 때문이다. 수많은 플랫폼 중 그나마 블로그에서 숨 쉬고 있지만, 그마저도 버거운 날이 올까 두렵다. 그럴 때는 기본으로 돌아가면 된다. SNS를 고민하는 대신 공감할 수 있는 여행기를 계속 써 내려가기만 한다면 책이든 블로그든 환영하는 독자들이 있을 것이라 본다. 튜닝 끝에 결국은 순정으로 돌아오듯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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