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책을 출간하는 여러 경로에 대해
'여행 작가가 되는 방법은 뭔가요?' 이 시리즈를 읽고 있는 분들이 가장 궁금해할 법한 질문이다. 가장 쉬운 방법은 일단 여행책 한 권을 쓰는 것이다. 처음 여행책을 준비할 때만 해도 나는 여행작가가 될 생각은 없었다. 단지 다이내믹했던 여행 경험을 농축시켜 쓸만한 책 한 권을 내고 싶었을 뿐이다. 첫 책이 나오고 나니, 여기저기서 여행에 대한 강의가 제법 들어왔고, 여행 기사 의뢰부터 인터뷰 요청도 간혹 있어왔다. 내 여행 경험이 제법 쓸모 있다고 생각했고, 그걸 원동력으로 용기를 내 두 번째 책을 출간할 수 있었다.
최근에 서점 여행책 코너에서 최근 나온 책을 들춰봤다. 새삼 느낀 것 중 하나는 역시 여행책만큼 저자의 폭이 넓은 분야도 없다는 것이다. 세계 여행을 한 대학생, 문예창작과 출신의 중년 저자, 수의사의 여행기, 사춘기 아이들과 여행했다던 주부 등. 에세이는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소재를 '개인의 경험'에 비추어 이야기해 독자의 호응을 얻는다. 그렇기에 저자는 세상을 보는 통찰력이나 콘텐츠 기획에 있어 탁월한 능력이 있어야 한다. 여행기는 조금 다르다. 특별한 재능 없이 본인의 경험만 잘 버무려서 글로 엮으면 된다. 여행 경험 자체가 강렬하고, 열정적이고, 감동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누구든 여행책 쓰기가 가능하다고 내내 강조하는 것이다. 본격적으로 책 쓸 각오를 하고 콘텐츠를 만들었다면, 다음으로 내 책을 출간할 방법을 찾는 것으로 나아가야 한다. 책을 출간하는 데는 여러 경로가 있다. 내가 직접 체험했던 방법, 또는 주변 사람의 경험이나 보고 들었던 이야기를 엮어서 정리해봤다.
출판사에 '출간 기획서'를 보낸다. 내 책을 내고자 하는 사람들이 할 수 있는 가장 적극적이면서 현실적인 방법이다. 처음 출간 기획서를 보내려는 사람에게 닥친 고민은 딱 두 가지다. 첫째, 원고를 어떻게 정리해서 어느 선까지 보낼 것인가? 내가 써뒀던 원고를 모두 보낼 것인가? 일부만 보낼 것인가? 내 책을 어떻게 소개하는 게 좋을까? 등등. 내 원고를 모두 읽을 만큼 한가한 출판사는 없다. '내 책을 이 출판사에서 출간해야만 하는 이유'를 설득력 있게 작성해보자. 책의 제목, 책 컨셉, 저자 이력, 차별화 및 경쟁력 등을 요소로 넣으면 좋다. 여기에 여기에 목차, 샘플 원고 몇 개만 덧붙여서 보내면 완벽하다. 둘째, 어떤 출판사에 원고를 보낼 것인가? 대형 출판사에서 출간하는 걸 마다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대형 출판사에서 아무 경력 없는 신인 에세이 작가에게 기회가 돌아오는 행운은 흔치 않다. 게다가 큰 출판사와 작업하는 것이 무조건적으로 좋은 것도 아니다. 규모는 작지만 좋은 책을 꾸준히 출간하는 출판사가 요즘은 너무나도 많다. 내 책의 컨셉과 유사한 책을 주로 출간하는 출판사를 찾으면 가능성은 한결 높아진다. 그러므로 '여행책을 주로 출간하는 출판사'를 찾아보는 등 시장조사를 충분히 해둬야 한다. 몇 곳에 제안을 해봤는데 거절당했다고 좌절할 필요도 없다. 원고에 자신이 있다면 100개의 출판사 중 내 책을 원하는 곳이 한두 곳쯤 나타날 것이다.
까다로운 출판사의 심사를 피하고 싶거나, 내가 만든 기획안과 글을 그대로 책으로 찍어내고 싶다면 간단하다. 직접 책을 만들면 된다. 이 안에서도 방법은 여러 갈래로 나뉜다. 전문적으로 편집디자인, 인쇄, 유통까지 해주는 출판 업체에 의뢰할 수 있다. 물론, 그 비용은 전적으로 본인이 부담한다. 또는 소량의 책을 원하는 형태로 주문 제작할 수 있는 POD(Publish On Demand)를 의뢰할 수도 있다. 이 같은 방식은 내 멋대로 책을 구성, 편집할 수 있는 게 장점이다. 다만 책 전문가인 출판사, 편집자의 손을 거치지 않은 책은 완성도 면에서 떨어질 수밖에 없다. 반면 '독립출판물'은 다른 시선에서 보고 있다. 위의 방법이 온전히 '책의 출간'을 목적으로 한다면 독립출판물은 '형식 없이 내 이야기를 공유하기 위해 여러 매체 중 인쇄물을 택한 형태'이기 때문이다. 목적이 다르기에 출력물도 확연히 다르다. 내용, 크기, 볼륨 등 모든 형태가 제각각이다. 수첩만 한 크기, 기형적으로 커서 책꽂이에 들어가지 않는 책, 이름 모를 사람의 일기, 책 수리법과 같은 사소한 일에 대한 이야기 등 각자의 소소한 이야기가 다른 모양의 책 안에 들어있다. 독립 출판에 대한 찬양으로 잠깐 이야기가 샌 것은 그만큼 매력 있는 책 유형이기 때문이다. 넘치는 아이디어가 있는 분들은 본인 입맛대로 책을 꾸밀 수 있는 독립출판물로 책을 내는 것이 좋을 수도 있다. 나도 간단한 필름 사진 에세이를 독립출판물로 만들어볼까 고려하고 있다.
지난 편에서 언급했듯이 블로그 등 SNS를 통해 기회를 얻어 여행책을 내는 경우도 종종 있다. 파워블로거나 방문자가 많은 인기 있는 블로그가 출간의 기회를 많이 얻었던 걸 보면 홍보 역량 같은 상업적인 부분도 무시할 수 없는 것 같다. 다만 반드시 덩치 큰 블로거만이 기회를 얻는 건 아니다. 책을 내고 싶어 하던 어떤 분은 개인적인 소소한 일상만을 올리는 블로그를 운영했다. 거기에 딱 한 가지를 보탰다. 하나의 주제를 정해 카테고리를 만들고, 사진 한 장 없는 건조한 글을 매일 올렸다. 주제는 신선했고, 글은 탄탄했다. 온라인으로는 시시한 블로거였지만 결국 출간의 기회를 얻어 책을 냈다. 비록 직접적인 출간 기회까지는 아니더라도 블로그 등 매체를 적극적으로 운영하는 것은 단단한 무기 하나를 갖고 전쟁터에 뛰어드는 것과 비슷하다. 내 팬을 만들고, 내 콘텐츠를 쌓고, 내 이야기를 홍보하기에 이만한 매체가 없다.
그 외에도 여행작가가 된 분들의 경우는 이렇다. 이전에 여행 관련 매체에서 종사한 경우. 당연한 일이다. 그동안 취재를 하며 쌓아둔 여행 콘텐츠를 어마어마하다. 여행작가로 활동하는데 이만큼 든드한 자산은 없다. 여행기자에서 여행작가로의 전환은 당연한 수순 같기도 하다. 출판사와 인연이 있어 우연히 책을 출간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한 저자는 우연히 식사자리에서 출판사 관계자와 만나 본인의 취미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는데, 편집자의 눈으로 볼 때 책으로 내기에 더할 나위 없는 소재라 판단해 출간까지 가게 된 경우도 있었다.
이렇듯 여행책을 출간할 수 있는 기회는 생각보다 많고, 열려있다. 한 가지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글의 기본'에 대한 것이다. 기획력이 아무리 좋아도 책으로 될만한 글을 써내지 못한다면 어려움이 있을 수밖에 없다. 아무리 콘텐츠가 좋아도 필력이 좋지 않으면 고려하지 않는다는 출판사도 있었고, 외부 제안으로 들어온 글은 대부분 퀄리티가 좋지 않아 별로 기대를 하지 않는다는 안타까운 이야기도 들었다. 심지어 한 출판사 대표분은 맞춤법을 잘 지켜서 기획 제안을 하는 저자가 흔치 않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한 유명 블로거가 출판사로부터 출간 제안을 받게 됐다. 컨셉이 괜찮았고, 인기가 있으니 홍보효과도 좋으리라 예상했을 것이다. 문제는 원고를 받고 나서였다. 책으로 낼 수 없을 만큼 글이 좋지 않았던 것이다. 그 후에는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아마 편집자와 저자가 치열하게 노력해 글의 퀄리티를 높였거나 글 대신 이미지를 강조하는 쪽으로 방향을 선회하였거나, 책의 출간이 미뤄졌을 수도 있겠다. 내가 들은 것이 전체를 말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적어도 내 책을 쓸 마음이 있다면, 기본인 글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우선이다.
이 외에도 여행 작가로 데뷔하는 방법은 여러 경로가 있을 것이다. 이 글을 읽고 출간 방법의 습득은 물론 내 글도 책이 될 수 있다는 작은 희망을 가졌으면 좋겠다. 그런 마음이 들었다면 당장 여행기를 써보는 것부터 시작해보라. 기본적으로 여행기를 정리하고 거칠게 쓴 초안을 완성하는데 2~3개월이면 충분하다. 여태껏 겪은 바로는 글을 잘 쓰는 사람은 너무도 많았지만 책을 낸 사람은 한 권의 책 분량을 써낸 사람이었다. 그러니 당장 앉은자리에서 여행기 한편을 쓰는 것으로 시작해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