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사에는 지켜야 할 도리가 있다. 또 넘어서지 말아야 할 금도가 있다. 우리는 누군가가 지켜야 할 도리를 지키지 않거나 넘어서지 말아야 할 금도를 넘어설 때 무례하다고 생각한다. 무례함은 예의가 없는 것이다. 그 본질은 상대방을 존중하지 않는 마음을 드러내는 것이다. 무례함은 말과 행동거지를 통해 나타난다. 표정 하나만으로도 무례함을 드러내기에 충분하다. 그만큼 무례함을 당하는 상대방의 입장에서는 민감하게 반응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은근슬쩍 무시하는 것도 충분히 감지할 수 있는 것이 사람의 감수성이다.
정치인의 언행에는 숨긴 의도가 있다고들 생각한다. 정치인들은 통상 직설적 표현보다는 은유와 상징을 통해 이야기한다. ‘정치적 수사’를 통해 메시지를 중의적으로 전달하기에 사람들은 그 의미를 이렇게 저렇게 해석하곤 한다. 정치인의 품격 있는 말은 두고두고 회자될 정도로 메시지의 영향력이 크다. 또 어떤 정치인은 통렬한 풍자와 촌철살인의 짧은 멘트로 감동을 주기도 한다. 그 반면에 어떤 정치인들은 범인들도 입에 담기 쉽지 않은 거친 말들을 뿜어내기도 한다. 이른바 '막말'이고 조금 고상하게(?) 표현하면 '망언'이다. 전국대회를 열어도 금상, 은상, 동상을 휩쓸어 담을 만한 꾼들이 넘쳐난다. 어제는 세월호 사건 5주기를 맞이하여 망언들이 경연하듯이 쏟아졌다. 일본에서는 극우 정치인들이 망언을 해대고 나면 지지율이 올라간다고 한다. 작금에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사건들을 바라보면서 우리나라에서도 망언에 대한 반대급부가 지지율이라는 생각이 오버랩되는 것은 나만이 아닐 것이다. 얼마 전 5.18과 관련해 막말을 쏟아부었던 인사는 당최고위원으로 선출되기도 했다. 금번 막말의 주인공들이 자신들의 이름이 잊힐까 봐 한 수 던진 것인지 내년의 정치일정을 앞두고 정략적으로 저지른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최소한 자신둘이 뉴스의 토픽감이 되는 것에는 성공했다. 그 중 한 정치인은 망언 당일에 국회의원에게 주는 '품격언어상'을 받았다고 하니 아이러니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런 상이 있다는 것도 처음 알게 되었지만 국회의원들의 언행에서 품격상을 찾는 것을 보면 그동안 뿜어냈던 국회의원들의 말의 품격이 어떠했는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말은 인류 최고의 발명품이라고도 한다. 온 땅에 말이 하나여서 인간이 서로 소통하여 바벨탑을 쌓을 수 있었기에 하나님은 인간의 언어를 혼잡하게 했다고 성경 창세기에 기록되어 있다. 그만큼 인간의 말은 영향력이 큰 것이라 하겠다. 이제는 인공지능을 활용한 자동반역기를 통해서 언어 간의 장벽이 허물어져 가고 있어 인간이 또 언제 바벨탑을 쌓아갈지 지켜볼 일이다. 인간은 말과 글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드러낸다. 글을 쓸 때면 자신의 생각이 지면에 표시되는 것을 보면서 한 발짝 떨어져서 생각하게 되고 그러면서 스스로 객관화 기재를 작동시키게 된다. 그래서 수정도 하고 가필도 하면서 글을 다듬는 것이다. 이에 반해 말은 생각이 반추되지 않은 채로 나오기가 쉽다. 그래서 옛 성현들은 언행을 삼가라고 했던 것이다. 일단 입을 떠난 말을 주워 담을 수가 없다. 앞서의 그 정치인은 자신의 "생각이 짧았다"며 사과했다고 한다. 그나마 재빨리 사과했지만 입에서 한 번 나온 말은 이미 주워 담을 수 없고 일파만파 퍼져간다.
“입으로 나오는 것들은 마음에서 나오나니 이것이야말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둑질과 거짓 증언과 비방이니 이런 것들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요 손으로 먹는 것은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하느니라"(마태복음 15:18~20)
'말의 품격'이라는 책이 베스트셀러 반열에 올랐었는데 저자는 "말은 마음의 소리이다. 수준이나 등급을 나타내는 한자 품(品)의 구조가 흥미롭다. 입 구(口)가 세 개 모여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말이 쌓이고 쌓여 한 사람의 품성이 된다는 것"이라고 했다. 품격까지는 안 가더라도 최소한의 예의는 갖춰서 말을 해야 하는 것이 도리다. 수신(修身)이 안된 사람들이 치국(治國)을 하겠다고 나서는 것도 문제지만 그런 사람들이 선출되는 시스템이 더 문제이다. 생각이 짧은 것은 이해할 수 있지만 도리를 모르는 것은 용납하기 어렵다. 무례함에 대해 관대하지 않은 사회가 품격 있는 사회가 아닐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