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는 구속 요인들로부터 놓여남을 의미한다. 구속 요인들은 우리들의 생각과 행동을 제약하는 것이다. 육신은 놓여났지만 여전히 생각이 제약받고 있다면 온전히 자유하다고 이야기할 수 없다. 억압되고 억눌린 사고에는 구속의 뿌리가 굳건하게 남아있다. 경계를 벗어나지 못하도록 훈련받은 동물들이 고삐를 풀어줘도 쉽사리 그 경계를 이탈하지 못하는 것처럼 사람들도 훈련받은 사고의 틀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 일제의 식민교육을 받고 자라난 세대가 해방 후 60년을 지난 지금에도 그러한 교육의 영향력에서 자유롭지 못한 모습들을 드러내는 경우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고, 어떤 사람들은 그러한 사고체계를 오히려 강화하여 지금의 세상을 해석하고 자신들의 입장을 강력하게 주장하기도 한다. 역사학계의 뿌리 깊은 식민사관은 오늘날 뉴라이트의 옷을 입고 당당하게 목소리를 높이고 있고 지난 정권에서는 역사교과서를 바꾸기까지 했다.
식민교육에 뿌리를 둔 해방 후의 공교육은 박정희 정권하에서 국민교육헌장으로 대변되는 국가주의로 옷을 갈아입고 나타난다. 전문을 다 기억하지는 못하더라도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로 시작하는 부분은 그 시절을 살았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기억할 것이다. 국민학교 시절에 매 맞아가며 외운 내용들이 사람들의 뇌리에 뿌리를 내리고 생각을 붙잡아 '내가 무슨 역사적 사명을 띠고 태어났겠는가'하는 생각조차 하기 어려웠던 시절이 있었다. 국가를 위해서 개인의 희생을 요구하는 사고체계가 은연중에 사람들의 사람들의 생각 가운데에 뿌리내리도록 하는 것이 목적이었을 것이다. 오늘날 '태극기부대'를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의 뿌리도 여기에 있지 않나 싶다.
그들의 태극기는 불통과 독선의 상징이 되면서 태극기의 존엄을 훼손한다. 태극기를 들었다가 자칫하면 그들과 동일시될 위험에 빠지게 된다. 그들은 태극기와 함께 성조기를 펄럭인다. 한미동맹을 상징한다는 것인데 미국인들도 왜 그들이 성조기를 들고 설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언젠가부터는 이스라엘기까지 등장했다. 이쯤 되면 상식파괴다. 미국 조야를 움직이는 힘이 있는 유대인들에게 자신들의 편을 들어달라는 것이다. 이들의 모습에서는 강점기 일장기를 흔들면서 천황폐하 만세를 외치며 일제와 한편이 되고자 했던 친일파들의 모습이 오버랩된다. 사대주의는 시대를 바꿔가면서 그 숭배의 대상을 바꾼다. 급기야는 일부 정치권은 그들의 지지를 받기 위해 구애의 손을 내밀고 있고 일부 젊은 세대들마저 우경화되면서 뉴라이트의 사고체계에 동화되는 것을 보면 역사는 결국 되풀이되는 것이라는 의견이 맞는 거 아니냐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세계는 평평하다’는 오늘날의 세계화, 정보화 사회에서 오히려 정보의 편식성은 강화되면서 사람들의 생각의 골은 더 깊어만 가는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그네들은 특정의 집단적 사고와 자신을 동일시함으로써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것이다.
집단적 사고는 진영논리로 연결된다. 자신이 동일시화하고 싶어 하는 진영에 대하여는 무조건적 지지를 보내고 그 대척점에 있는 진영에 대해서는 사사건건 반대하며 공격성을 드러낸다. 이러한 진영논리는 지성을 초월한다. 학력과 지위 고하를 묻지 않는다. 이처럼 야성이 지성을 지배하는 사회는 정글이다. 그러한 정글의 모습은 깔때기처럼 사회의 지도층으로 올라갈수록 더욱 노골화되어 나타난다. 대화를 통한 조정과 타협은 그 어디에서도 자리를 찾기 어렵다. 날 선 이야기가 그 자리를 대신하며 망언 릴레이가 이어진다. 언론은 그 릴레이를 중계하기에 바쁘다. 언론의 스포트 라이트를 받고자 한다면 그들의 편에 서서 세게 한마디 하면 된다. 언론에서 시대를 꿰뚫어 보는 정론은 이제 찾아보기 어렵다. 태극기 부대가 태극기의 존엄을 훼손하고 있는 것같이 언론이 생각의 자유를 유린하고 있는 것이 21세기 대한민국의 현주소이다.
성경은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한복음 8:32)고 말씀하고 있다. 자유하지 못함은 그 안에 진리가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예수님 시대의 대제사장들과 율법주의자들처럼 진리를 애써 외면하며 진리를 핍박하고 그와 같은 일을 ‘자기들만 행할 뿐 아니라 또한 그런 일을 행하는 자들을 옳다(로마서 1:32)’고 외쳐댄다. 그러한 마음의 근저에는 이기심과 탐욕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그 이기심과 탐욕은 권력을 지향한다. 자유함은 그러한 이기심과 탐욕을 내려놓는데서 시작하는 것이고 진리는 자기부정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돌이켜 돌아보지 아니하고 뿌리 박힌 생각의 끈을 놓치 않으니 자유함이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