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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리생각 May 10. 2019

모독에 대하여

관객모독이란 연극이 있다. 출연자들은 대본 없이 즉흥적으로 지껄이고 객석을 향해 욕지거리를 해댄다. 그리고는 관객들에게 물 한 동이 끼 얻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비싼 입장료를 내고 들어온 관객을 모독(?)한다는 각본이다. 여기에 관객들이 모이는 것은 기왕의 연극의 형식이 갖고 있던 짜여진 틀을 깨는 파격이 주는 카타르시스 때문이다. 기성사회의 짜여진 틀에서 벗어나기 힘든 소시민적 삶에 스스로는 실행하기 어려운 비현실적인 일탈이 출연자를 통해 대행되는 경험을 구매하는 것이다.


요즈음 정치권에서 연출되는 장면들을 보면 파격의 연속이다. 민의의 전당이라고 불리는 국회에서 볼썽 사나운 몸싸움을 끝내버리겠다고 만든 국회선진화법에 따른 패스트트랙을 놓고 또 한바탕 몸싸움을 벌이고 있으니 법을 만든 사람들이 스스로 법을 모독하는 형국이다.  국회의장실을 점거하는 와중에서 발생한 해프닝을 갖고 국회의장을 성희롱 가해자로 몰아가고 있고 여성단체들은 이를 두고 성희롱을 희화화하며 미투를 모독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엘리트 법관 출신의 여성 원내대표가 정장을 입고 빠루를 들고 있는 모습은 격식 파괴(?)의 새로운 형식이라고나 할까? 여기에 법무장관과 총리를 역임한 엘리트 관료 출신 당대표가 '독재타도'를 외쳐대는 모습도 양복 입고 갓 쓴  모양처럼 어색하기 짝이 없다.  이 모든 일탈이 세금으로 비싼 입장료(?)를 내고 있는 국민들에게는 역설적으로 관객모독 깜이다.  한마디로 국민들을 얕잡아보는 것이다. "나 국회의원이야!"라고 외쳐대는 모 국회의원의 앙칼진 외침도 마음을 불편하게 하기는 매한가지다. 선출직 공무원인 국회의원이 뽑아준 사람들과는 무관하게 자신의 정략적 잇속을 따라서 이 당에서 저 당으로 , 또 다른 당으로 옮겨 다니는 것은 자신을 뽑아 준 사람들에 대한 생각은 전혀 없음을 대놓고 드러내는 행태다.


모름지기 '정치(政治)'란 그 소비자인 국민들에게 희망을 주는 것이어야 한다. 바를 정(正) 자에 글월 문(文) 자가 합쳐진 것은 '올바른 메시지'를 가져야 한다는 뜻이겠다. 다시 말해 바른 뜻을 담고 있어야 그 소비자들에게 영향력을 갖는 것이라 하겠다. 당리당략에 따라 조변석개하는 것은 '정치'가 아니라 소인배들의 모리배 짓거리일뿐이다. 그들은 권력만을 탐하지 국민들은 안중에도 없다.  공자는 수기치인(修己治人)이라고 했다. 스스로를 수양하고 나서 백성들을 다스려야 한다는 것이다.  또 그 다스림은 백성을 편안하게 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했다. 대화와 협의를 통해 다름을 조정해 나가 국민을 편안하게 만드는 것이 정치인들의 국민에 대한 의무이다. 국민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제공하고 새로운 꿈과 희망을 이야기하는 것이 '정치'이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입장료를 낸 관객의 기대이다.


혹자는 한 나라의 정치의 수준은 정확히 그 나라의 민심의 수준과 일치한다고 주장한다. 그 밥에 그 나물이라는 식의 이야기다. 정치가 이 모양인 것은 바로 성숙하지 못한 국민들 때문이라고 국민들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의도로 사용되는 말이다. 우리 근현대사에 있어 주요한 정치적 사건들을 되돌아보면 이런 주장이 설득력을 갖기는 어려워 보인다. 민심은 천심이라 했다. 그러한 민심이 결집할 때 놀라운 정치적 이정표들이 세워지곤 했던 것이 우리네 역사이다. 그러한 민심의 결집이 가져온 변화의 물결들을 제대로 수용해 내지 못하고 되려 발목을 붙잡고 퇴행적으로 돌아가게끔 해왔던 것이 현실 정치였다. 따라서 민심의 수준과 정치의 수준이 정확히 일치한다는 주장은 또한 민심에 대한 모독이 아닐 수 없다.


어떤 조직이든 어떤 사람이 리더가 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이게 된다. 아무리 훌륭한 인재들이 모인 조직이라도 리더 한 사람 잘못 만나면 속절없이 무너져 내린다. 공든 탑이 무너지랴는 속담이 있지만 공든 탑도 리더 잘못 만나면 와해되는 것은 시간문제다. 정치적 리더가 리더인 것은 그들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국가의 명운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리더가 국가의 미래를 바라보면서 정도(正道)로 이끌어 갈 때 국민은 편안해지는 것이다. 사필귀정이란 말이 있다. 뭔가 문제가 있다고 하더라도 결국은 바른 길로 가게 되어 있다는 이야기이지만 굳이 돌아가야 할 이유는 없다.  이제 곧 또 정치의 계절이 다가온다. 표로 심판한다고 하지만 지금까지의 시스템은 어느 진영에 대한 유권자들의 판단과 선호가 개별 후보자에 대한 검증을 제대로 못하도록 구조화되어 있었다. 이제는 그 시스템을 바꿔야 할 때이다.  수기치인의 리더가 검증되고 선출되는시스템이 되어야 비로소 정치의 수준과 민십의 수준이 일치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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