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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리고 Oct 25. 2021

동강이 품은 산, 동강을 품은 산 ㅡ정선 백운산.

산림청선정 100대명산 산행기 제70화 정선 백운산

백운산이란 산이름은 앞에 지명을 표시하지 않으면 안될 만큼 많다.

보편적으로 산위에 흰구름이 늘 끼여있다고 하여 붙여진 한자 이름이 백운산이다.

그래서 산림청선정 100대명산에도 광양, 포천 그리고 이곳 정선 백운산까지 3곳이나 포함되어 있다.

이 곳 정선 백운산을 마을사람들은 배구랑산,배비랑산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동강의 아침.

너무 부지런을 떨었나 보다.

산행 들머리인 문희마을에 도착한 시간이 아침7시도 채 안되었다.

덕분에 호젓한 동강의 아침을 맞는다.



이제 막 가을색으로 치장하기 시작한 가을날 동강의 아침은 상쾌했다.

그 호젓하고 상쾌한 강가 풍경을 몇 컷 카메라에 담고 산행에 나선다.



문희마을 산행들머리.

문희마을(강원도 평창군 미탄면 마하리), 왠지 산골마을 이름 치고는 세련된 이름이다.

그래서 유래를 찾아보니 문희는 옛날 마을을 지키던 개의 이름이였다는 좀 싱거운 이야기다.

그 개의 이름을 따서 문희마을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문희마을은 원래 오지마을이었지만 요즘은 천연기념물 260호 백룡동굴이 개발되고 관광객이 늘어나면서

펜션들이 들어서는 바람에 현대식 오지마을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우리의 옛 정겨운 마을 모습을 찾아볼수 없는 아쉬움이 있다.



이른아침.

호젓한 산길, 일행도 타행도 없는 갈색바다같은 만추의 산속으로 뚜벅뚜벅 걸어들어가는 기분을 그 누가 알까?



그런데 그 기분을 깨는 사건이 발생했다.

산길에 들어선지 20분쯤이 지날무렵 앞쪽에서 바스락 거리는 산짐승 소리가 났다.

순간,

 '멧돼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발걸음을 멈추고 숨죽이고 귀를 귀울였다.

얼마를 그러고 있어도 바스락소리는 그치질 않는다.

산속엔 나 혼자뿐이니 진행 할 수도 없고, 그래서 그냥 자리잡고 앉아서 아침을 먹었다.

요즘은 아침 식당 찾기도 쉽지않고 시간도 절약할겸 그냥 도시락을 아침과 점심용 두개를 가지고 다닌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나서도 바스락거리는 소리는 그치질 않았다.

그동안에 다른 산객이라도 왔으면 좋으련만 워낙 이른 시간이라서 정적만 흐르고 있다.

마냥 이렇게 시간만 보낼수 없서서 결국 천천히 진행한다.



그런데 얼마 오르지않아서 바스락거리는 범인을 알아냈다.

꿩들이 낙엽을 뒤적이고 있었던 것이다.

"아이구 이 새가슴아!"

혼잣말을 하며 헛웃음을 웃어야 했다.


 

晩秋.

아랫쪽은 이제 단풍이 시작이지만 산중턱부터는 말 그대로 만추의 풍경이 펼쳐져있었다.

사람들은 가을을 만난다고 이렇게 온전한 가을을 놔두고 너도나도 단풍명산으로 차량정체를 무릅쓰고 간다.

그리고 가을을 만난다면서 가을이 아닌 사람을 만나고 오기 일쑤다.



이른 시간때문인지 정상이 까가워질때까지 한 사람도 만날 수 없다.

덕분에 백운산의 이 멋진 가을을 내가 전세 낸 기분으로 쉬엄쉬엄 오른다.



올해 단풍은 가까이서 보면 특별히 곱지는 않지만 조금 떨어져서 보면 가을기분 내기엔 충분했다.



더군다나 백운산은 떡갈나무와 굴참나무등 참나무계통이 주종을 이루고 군데군데 아름드리 소나무가 자태를 뽐내고 있는 숲이다.

그래서 백운산의 단풍은 대부분 갈색계통이다.



단풍명산이라는 다른 산들의 단풍이 붉은색 계열인데 반해서 백운산은 노란색과 갈색이 조화를 이룬 은은한 느낌의 숲이다.

화려한 단풍나무계통의 단풍이 감탄과 흥분을 자아낸다면 참나무계통의 갈색단풍은 의외로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것 같다.



문희마을에서 오르는 코스는 정상까지 거의 조망이 없다.

덕분에 숲에 집중하며 걷기에 좋은 길이다.



나무 거꾸로 보기.

오고가는 사람도 없고 온전히 혼자만의 시간.

책을 읽듯 느긋하게 숲을 읽는다.

그것도 정독으로.



그렇게 책을 읽듯 가을로 가득찬 숲을 읽으며 걷다보니 어느새 정상이다.

그러나 아직도 산객을 한사람도 보지 못했다.

내 등산 역사에서 새로운 기록이 아닐까 싶다.



"천상천하유아독존"

모처럼 정상에 나홀로 섰다.

다른 유명 단풍명산이었더라면 정상석 차지하고 서기도 힘들텐데 오늘은 모두 내 차지다.

이런 기분을 혼자서 맛본다는 것이 아쉽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이런 분위기를 혼자서 독차지한 만족감이 더  컸다.

덕분에 카메라를 배낭위에 고정시키고 여유있게 셀카도 찍어본다.



문희마을에서 정상에 오르는 길은 가을이 아니라면 좀 밋밋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평범한 숲길이다.

경사가 좀 심한 구간이 있었지만 보편적으로 부드러운 육산의 전형적인 등산로였다.



오르는 길이 그렇듯 정상 자체도 그렇게 특별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빼꼼히 내려다 보이는 굽이굽이 흐르는 동강의 조망은 다른산의 정상에서는 볼 수 없는 특별한 풍경이었다.



정선의 신동읍과 평창의 미탄면에 걸쳐있는 백운산은 51km에 이르는 동강의 중간지점에 위치해 있다.

높이가 883m로 강원도의 지형에서는 그리 높은 산이 아닌데도 100대 명산에 포함된건 그 지리적 위치와 무관해 보이지 않는것 같다.



정상에서의 '천상천하유아독존'의 시간을 뒤로 하고 하산길에 든다.

하산은 올라온 코스의 반대방향인 칠족령쪽으로 한다.



물의 흔적.

굽이굽이 흐르는 동강은 물의 흔적이지만  세월의 흔적이기도 하다.

칠족령 코스는 자연의 흔적인 그 동강의 아름다운 자태를 보면서 하산하는 멋진 코스다.

하지만 아주 거칠고 가파라서 힘들고 조심해야하는 코스이기도 하다.



동강은 강원도 정선, 평창 일대의 산들에서 흘러내린 물줄기인 오대천, 골지천, 임계천, 송천 등의 계곡물이 모여 정선읍내에 이르면 조양강(朝陽江)이라 부르고 이 조양강에 다시 동남천이 합류하는 정선읍 남쪽 가수리 수미마을에서부터 영월에 이르기까지의 51km 구간을 말한다.



그 동강은 다시 영월읍에 이르러 서강(西江)과 합류해 남한강이란 이름을 얻는다.

남한강은 북한강과 합류하여 다시 한강이라는 이름으로 서울을 거쳐 결국에는 황해 바다까지 흘러 바다의 품에 안기는 것이다.



정상에서 칠족령까지 2km정도는 위험한 난코스다.

하지만 오르락 내리락 6개의 봉우리를 넘나들며 조망하는 아름다운 동강의 풍경이 일품이다.



산행시작후 칠족령에 거의 다 와서야 한무리의 사람을 만났다.

산에 들어선 뒤 처음 만나는 사람이니까 다섯시간여만인 셈이다.



칠족령은 제장마을과 문희마을을 연결하는 고개다.

옛날 제장마을은 옻칠로 유명한 마을이었다.

그래서 옻을 끓일 때 이 마을 이진사집 개가 발바닥에 옻을 묻힌 채 고개 마루를 올라가며 발자국을 남겼다고 해서 ‘옻 칠(漆)’ 자와 ‘발 족(足)’자를 써서 ‘칠족령’이라고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는 고개다.



굽이굽이 물의 흔적, 아니 세월의 흔적인 그 자연의 흔적에 갇힌 거기에도 길이 있고, 집이 있고,사람의 흔적이 있다는게 신비했다.



저 물길이야 돌고 돌아 한강으로 가겠지만 저 외딴집에 이르는 길은 도대체 어디로 연결이 되어 있을까?

영화 '대동여지도'의 고산자 김정호의 대사가 생각났다.

'물은 물끼리 이어지고, 산은 산끼리 이어진다'

그렇다면 길은 길끼리 이어지는걸까?



이제 문희마을까지는 1km남짓이 남았다.

그렇지만 지금부터는 거의 오솔길 수준의 하산길이다. 

이번 산행에서 가장 걷기 좋은 구간이기도 하다.



말 그대로 오지마을 풍경이다.

한 번쯤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계속이어지던 동강의 풍경도 눈에서 사라지고 다시 온전한 숲길을 걷는다.



산객이 많은 유명 산들에서는 이런 호젓한 산길을 그리워하지만 막상 인기척 없는 첩첩산중 산길을 걷다보면 좀 으스스하기도 하다.



화사한 단풍숲이 끝나면서 산행도 끝이 났다.

다시 문희마을로 돌아온것이다.



문희마을 전경.



정선의 백운산은 산 자체의 매력보다는 구비구비 돌고도는 동강의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는것이 더 큰 매력이다.

그 산의 매력에 비해서 강원도의 산 치고는 생각보다 수월하게 오를수 있는 산이었다.



*산행코스,:문희마을 ㅡ삼거리(급경사와 완경사)급경사 ㅡ정상 삼거리 ㅡ정상 ㅡ정상 삼거리 ㅡ위령탑 ㅡ칠족령,문희마을 삼거리 ㅡ문희마을(천천히 6시간 사진촬영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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