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림청선정 100대명산 산행기 제40화 지리산 1
이번 산행기는 우리나라에서 산의 품이 가장 넓은 지리산 산행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지리산은 그동안 정상인 천왕봉, 노고단과 바래봉, 뱀사골등을 여러번에 걸쳐서 오르내렸다.
그중에서 지리산 종주와 천왕봉, 그리고 바래봉 철쭉산행으로 나누어 3회에 걸쳐서 풀어볼 계획이다.
그 첫번째 이야기는 아들과 했던 종주 성공담과 아내와 했던 종주 실패담을 함께 해보려 한다.
별이 유난히도 많고 밝았다.
어렸을때 시골마을에선 밤이면 밤마다 보기 싫어도 보아왔던 무수히 많은 별 별...별.
여름날이면 고향집 앞마당에 멍석 깔고 누우면 하늘은 온통 별천지였다.
별을 보며 온갖 상상이 끝없이 이어졌던 어린날의 행복했던 추억이 엊그제 일이라도 되는듯 되살아 났다.
그런데 요즘 아이들은 별에 대한 그런 추억이 있을것 같지 않아서 안타깝다.
당시 21살 아들은 이렇게 많고 밝은 별은 처음 본단다.
그렇지 아마도 별 자체를 본적이 별로 없을 것이다.
하긴 나도 참으로 오랜만에 보는 별다운 별이다.
수원역에서 밤 11시에 출발한 무궁화호 밤열차는 새벽 2시 40분에 구례역에 도착했다.
구례역에서 다시 택시를 타고 성삼재에 도착한 새벽 3시 20분.
수많은 별들이 초롱초롱 빛나는 낭만적인 밤하늘 풍경과 함께 오랫동안 꿈 꿔 왔던 지리산 종주를 시작했다.
설레임과 약간의 두려움이 반쯤씩 섞인 묘한 기분이었다.
눈에 졸음이 가득한 아들.
가야할 29km가 별로 감이 잡히지 않은듯 하다.
성삼재에서 노고단까지는 넓은 도로다.
어두워서 보이는건 없지만 도란도란 모처럼 아들과 이야기 나누면서 몸풀기 딱 좋았다.
어머니와 딸은 성인이 되어서도 할 말이 많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우리 남자들은 성인만 되면 자연적으로 대화가 없어진다.
모처럼 갓 성인이 된 아들과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기회를 얻은 것이다.
이윽고 도착한 노고단 산장에는 벌써 많은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한편 3년전 이맘때 세석평전의 철쭉 개화시기에 맞춰서 지리산 종주를 해보겠다고 계획을 세워 놓고 대피소 예약을 한다.
평일인데도 쉽지 않아서 대기자 명단에 이름을 올려놓고 기다렸지만 허사였다.
예정된 출발일 전일에 대기 예약마져 자동 취소되고 말았다.
지금부터는 취소자가 있을시 선착순 예약을 해야한다.
그래서 밤새 예약싸이트를 들락거린 결과 새벽녁에서야 예약을 했다.
일기예보는 오늘 오전까지 비가 온 후 그친다고 했는데 비는 밤새 그쳐 있었다.
설레이는 마음을 안고 첫차에 몸을 실었다.
초고속으로 달리는 ktx의 차창밖.
초여름을 향해가는 들녘은 모내기를 위한 무논 풍경과 제법 누렇게 익어가는 보리밭 풍경으로 나뉘어 있었다.
10년전 아들과 했던 종주는 시간적인 여유가 없었던 시절이라서 1박으로 종주를 해야 했지만 10년이라는 세월이 흐른 후 아내와의 종주는 시간도 많고 체력적인 부담도 있어서 2박 일정으로 종주 계획을 세웠다.
광명역에서 7시 20분 ktx열차를 타고 구례구역에 내려서 다시 택시를 타고 종주코스의 시작점인 성삼재에 도착했다.
아들과 함께했을때와는 똑같은 이동 경로이지만 그때는 야간 이동, 야간 산행인 반면에 이번은 주간 이동, 주간 산행이다.
성삼재에서 노고단 가는 길.
10년 전 아들과 왔을때는 아직 어두운 시간에 통과한 구간이라서 아무것도 보지 못했던 길이다.
산길이라기 보다는 호젓한 공원길 같은 이 길을 2.5km쯤 오르면 노고단이다.
노고단 대피소와 노고단으로 오르는 길이다.
노고단 대피소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다시 길을 나선다.
노고단 대피소에서 노고단으로 오르는 길은 짧은 거리이지만 제법 가파른 돌계단으로 이루어져 있다.
아들과 함께 했을때는 아직도 어둠이 걷히지 않은 구간이다.
1,500m급인 노고단 정상부는 파릇파릇 이제 초봄의 풍경을 자아내고 있었다.
길상봉이라고도 불리는 노고단은 해발 1,507m로 천왕봉, 반야봉과 더불어 지리산의 3대 봉우리다.
옛날 전설속의 지리산 산신령인 노고(老姑)할머니를 모시는 곳이라 하여 노고단이라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노고단 정상부다.
노고단을 지나 종주길로 접어드는 길목에 통제초소가 있다.
다음 대피소까지 걸리는 시간을 감안해서 12시 이전에 통과해야 한다.
멀리 반야봉이 보인다.
우리는 이제 저 봉우리 옆을 지나갈 것이다.
노고단을 지나 본격적인 지리산 종주길에 들어서자 호젓한 철쭉 꽃길이 펼쳐졌다.
그런데 앞서가는 마눌님 배낭이 장난이 아니다.
내 짐도 많지만 앞서가는 아내의 뒷모습에 안쓰런 생각이 들었다.
2박 3일 먹고 쓸것들.
너무 많이 가져간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래도 연분홍 철쭉길을 걷는 발걸음은 배낭 무게를 상쇄하고 남을 만큼 경쾌했다.
노고단 산줄기를 돌아서자 웅장한 지리산의 산줄기들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지리산 종주의 맛은 장쾌한 산그리메.
이제 조망점마다에서 지리산 특유의 장쾌한 산그리메를 보면서 걸을 수 있다.
반야봉이 제법 가까워졌다.
반야봉은 1,732m로 지리산의 제 2봉이다.
지리산 종주길에서 약간 벗어나 있어서 주로 지나치는 봉우리이지만 반야봉을 따로 오르는 사람들도 많다.
3시간쯤 경과한 시간.
드디어 배낭의 무게가 태산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돼지령.
산행 시작 후 5km거리에 있는 고개다.
김밥과 과일을 먹으며 늦은 점심겸 휴식을 취했다.
그런데 휴식후 무거운 배낭을 들다가 허리가 삐끗하고 말았다.
아픈것도 아픈것이지만 어찌해야 할 지 앞이 캄캄해 왔다.
앞으로 가기도 뒤돌아 가기도 만만치 않은 거리다.
에어파스를 뿌리고 잠시 허리를 다스린다음 마눌님 배낭으로 무거운 짐을 옮기고 난 비교적 가벼운 배낭을 메고 다시 길을 나섰다.
다시 아들과 했던 종주 이야기다.
해드랜턴 불빛에 또렷한 오솔길 같은 걷기좋은 길이 임걸령까지 이어졌다.
산을 읽듯이 두루두루 음미하며 하는 산행을 좋아하는 나는 앞만보고 가는 산행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최대한 짧은 시간에 종주를 하려면 어쩔수 없는 선택이었다.
내가 허리를 삐끗했던 돼지령을 지나면서 어둠이 걷히기 시작하더니 임걸령 부근에 다다를 무렵엔 하늘이 붉어지기 시작했다.
노루목에서 본 새벽 해뜰녁 운해다.
드디어 지리산의 웅장한 자태가 윤곽을 드러내고 지리산종주가 실감나기 시작되는 순간이다.
그리고 벅찬 감동의 순간이기도 했다.
내친김에 노루목에서 첫 휴식을 취하며 일출을 감상 했다.
반팔을 입어서 걸음을 멈추면 한기가 느껴지는 늦여름 지리산의 새벽.
그래서인지 산상의 일출은 아직여름인데도 불구하고 따스하게 느껴졌다.
아들과 그렇게 벅찬 감동으로 일출을 맞았던 노루목을 허리의 통증을 견대며 지난다.
길은 자꾸 험해지는데 허리는 아파오고, 그러나 내 허리통증보다 더 문제는 아내의 배낭 무게다.
아무튼 일단은 첫 숙박지인 연하천대피소까지는 가야하는 상황.
아내에게 안겨준 배낭무게가 내 마음을 더 아프게 했다.
그래도 뭐 헬기를 부르기 전에는 다른 방법이 없는것을 어쩌랴.
견뎌내주기만을 바랄뿐...
노루의 목을 닮은 지형이라고 해서 노루목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도 하고 옛날 노루가 많이 다니던 길목이라고 해서 그렇게 불렀다고도 하는 노루목을 지나 이름모를 봉우리 또 하나를 넘었다.
그리고 이제 삼도봉을 오른다.
삼도봉
삼도봉은 경상남도,전라남도,전라북도, 3개의 도 경계를 이루고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10년 전 아들과 함께 할때는 여기까지는 거뜬했는데 10년이 지난 오늘은 악전고투를 하고 있다.
이름만큼이나 삼도봉의 조망은 일품이다.
그러나 조망을 즐기는 것보다 충분한 휴식을 취하는게 급선무다.
걸어온 길.
아스라이 노고단이 보인다.
노고단에서 삼도봉까지는 5.5km다.
삼도봉에서 1.3km거리에 있는 화개재다.
아직도 오늘 가야할 연하천 대피소까지는 4km가 더 남았다.
화개재는 높이가 무려 1,316m이지만 옛날 경남의 하동에서 소금과 해산물을 가지고 올라오고, 전북의 남원에서 삼베, 약초등을 지고 올라와서 물물교환을 했던 장터라고 한다.
말 그대로 화개장터인 셈이다.
삶 자체가 고행이었던 시절의 흔적이 아직도 보존되고 있었다.
그러나 그 왁자지껄했을 장터엔 투구꽃,이질풀,바위취등 온갖 고산 야행화가 차지하고 있었다.
다시 10년전 이야기.
삼도봉에서 화개재를 지나 연하천 산장까지 가는길은 약간 험하긴하지만 아직 체력이 있어서인지
야생화 구경, 멀리 겹겹이 산능선구경,운해구경하는 재미를 만끽하면서 걷는다.
10년전엔 그렇게 즐거운 산행을 할 수있었던구간인데 10년 후 오늘은 그 재미를 다 반납하고 걷는다.
철쭉이 한창인 토끼봉(1,534m).
지금까지 10km를 넘게 걸었고 오늘 가야할 연하천 대피소까지의 거리는 아직도 3km가 남았다.
그리고 천왕봉까지는 18km가 남은 상황이다.
토끼봉은 토끼같다거나 토끼와 연관되어서 붙여진 이름이 아니라고 한다.
유래에의하면 지리산의 정중앙인 반야봉에서 볼 때 24방위 중 가장 정동쪽에 있어 묘방(卯方) 즉 토끼 방향에 있는 봉우리여서 묘봉으로 불리다가 토끼봉으로 바꿔 부르게 되었던것으로 알려져 있다.
토끼봉에서 연하천대피소까지는 3km.
그 구간에도 두번의 오르막이 있고 한번의 아주 긴 내리막이 있다.
아직도 1km쯤이나 남았는데 해가 저문다.
바로 앞서가는 나이드신 팀에게 대피소에서 왜 아직 안오시냐고 전화가 온 모양이다.
내 전화번호는 없는 걸까?
내게는 전화가 오지 않는다.
나는 지리산에만 오면 대피소 입실 시간이 본의 아니게 늦어진다.
오늘도 저녁 8시가 되어서야 대피소에 도착했다.
산행시작 9시간 만이다.
빠른 사람은 6시간이면 도착한다는 거리인데...
그래도 비정상적인 몸으로 잘 견디고 왔다는 생각으로 스스로를 위안한다.
간단한 입실 신고를 하고 침구를 받고 소등시간인 9시를 넘기지 않으려고 부랴부랴 저녁을 해먹고 잠자리에 들었다.
아들하고는 이 곳 연하천대피소에서 점심을 먹었다.
라면에 햇반.
그런데 젓가락이 준비되지않아서 낭패였다.
마침 옆사람들이 젓가락을 충분히 가져왔나 보다.
나무젓가락 4개를 얻을수 있어서 다행히 낭패를 면했었다.
고마운 분들께 다시한번 감사드린다.
아무튼 당시에는 햇반이 널리 이용되지 않아서 생전 처음 먹어보는 라면에 햇반은 생각보다 맛있었다.
아니 그 힘듦 앞에서 무엇인들 맛이 없을까?
아들 왈ㅡ 지금까지 먹은 라면중에 제일 맛있단다.
허리 통증때문에 밤새 잠을 설치고 아침에 일어나니 날씨는 더없이 좋다.
그렇지만 더 진행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대피소 직원에게 탈출로를 물어본다.
다음 삼거리에서 음정이란 마을로 내려가면 된다고 한다.
비교적 내리막길이며 8km쯤이라고 친절하게 안내해준다.
배낭의 무게를 줄이기 위해서 통조림등을 대피소 직원에게 건네주고 간단하게 라면으로 아침을 때우고 하산길에 들었다.
종주 능선에서 낙오자들이 빠져나오는 일명 탈출로 삼거리다.
아쉬운 마음이 크지만 미련없이 하산길로 들어섰다.
내 허리통증도 통증이지만 마눌님의 배낭 무게도 큰 문제이기 때문이다.
깊은 지리산의 명성 만큼이나 하산길은 길었다.
말이 8km이지 실제로 내려와보니 듬성듬성 집 몇채가 있을뿐 교통이나 편의시설이 거의 없는 산골이었다.
길가에 택시 전화번호가 적혀있어서 전화를 했더니 그나마 받지를 않는다.
적혀있기는 10분이면 도착한다는 택시, 수십번을 해도 도대체 전화를 받지 않는다.
할 수 없이 터덜터덜 걸어내려오는데 길가에서 풀을 뽑고 계시는 동네분이 계셨다.
교통을 물어보니 하루에 몇번 지나가는 마을 버스가 금방 가버렸다고 한다.
그러면서 여기저기 근방의 택시에 전화를 해서 겨우 한곳이 연결이 되었다.
그나마 올려면 30분을 기다려야 한다고 한다.
하는수 없이 30분을 기다려 남원역까지 올 수 있었다.
그렇게해서 두번째 지리산 종주는 실패라는 아쉬움만을 안겨주고 막을 내렸다.
산행코스:성삼재 ㅡ 노고단 ㅡ임걸령 ㅡ노루목ㅡ삼도봉 ㅡ화개재 ㅡ토끼봉ㅡ명선봉 ㅡ연화천대피소 ㅡ음정갈림길 ㅡ음정(22km)
아들과 함께했던 계속되는 천왕봉까지의 종주이야기는 다음편에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