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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바름 Nov 20. 2023

엄마와 딸

고등학생 딸을 키우는 엄마의 일기

딸아이 방에 설치할 온수매트가 배송된 지 일주일째 현관 안쪽에 박스째 놓여있다. 오늘은 꼭 설치를 해줘야지 마음먹고 남편과 아이방 침대정리를 하고 온수매트를 설치했다. 기계를 작동시키고 물을 채워 한참을 기다려도 온도가 올라가지 않더니, 딸아이 귀가 시간이 다가오자 설정온도까지 온도가 올라가 있다. 이불속 침대가 따뜻하다.


학원일정을 마치고 스터디카페에서 밤 12시까지 공부하는 고등학생 딸아이가 귀가했다. 피곤하지 않냐는 물음에 괜찮다고는 하지만, 얼굴이 수척하니 기운이 없어 보인다. 안쓰러운 마음에 차 한잔 들고 딸아이 방으로 향했다. 방 입구부터 허물처럼 벗어놓은 외투가 나를 반긴다.


- 와... 너는 방에 들오자마자 옷을 허물 벗듯 하나씩 벗어 놓는 거냐?

- 아닌데요. 의자에 외투 걸어뒀었는데?

- 어머! 그럼 니 외투에 발이 달려서 성큼성큼 입구까지 혼자 걸어왔나 보다.

- 와! 진짜 그럴지도! ㅋㅋㅋㅋㅋㅋ


방정리 옷정리 제대로 안 하며 능청만 떠는 철부지 같은 녀석이지만, 함께 사는 친정엄마를 나보다 더 신경 쓰며 의젓하게 챙긴다. 발을 다친 친정엄마가 침대에 앉아 바닥에 있는 대야에 발을 넣고 찜질하고 있었다. 딸아이가 그 모습을 보더니 할머니 키가 안 맞아 발을 헛디딜 것 같다며 대야 아래에 책을 여러 권 받쳐놓고 학원을 갔단다. 친정엄마는 손녀  마음이 너무 고마워 눈물이 난다며 연신 칭찬을 했다. 딸아이 마음 씀씀이가 나보다 낫다.


딸아이 방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자러 가려고 하자 딸아이가 말한다.

- 엄마. 내 방에서 나랑 같이 더 있으면 안돼요?

- 왜. 엄마랑 같이 있고 싶어?

- 네...

- 그래. 알았어. 이리 와. 내 새끼~

두 팔로 안아주자 딸아이는 오랜만에 내 품에서 응석을 부린다.


좁은 싱글 침대에서 딸아이를 품에 안았다. 품속으로 쏙 들어오는 녀석을 안으니 어릴 때 잘 시간이면 칭얼거리던 녀석을 품에 안고 불렀던 자장가가 떠올랐다. "자장자장. 우리 아가. 잘도 잔다. 우리 아가. 꼬꼬닭아 울지 마라. 멍멍개야 짓지 마라." 머리를 쓰다듬으며 노래를 부르니 딸아이도 기분이 좋은 모양이다.

"엄마랑 이렇게 둘이서 꽁냥꽁냥 하는 거 오랜만인 거 같아요. 엄마랑 같이 잘래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사랑스러운 아기가 언제 이렇게 컸는지 빠르기만 한 세월이 야속하다. 직장 다니느라 제대로 챙기지도 못하지만 별 탈 없이 바르게 잘 자라주는 딸아이가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1인용 침대에 둘이 누워 있으니 좁고 불편해도 온수매트 덕분에 바닥이 따뜻해 졸음이 밀려온다. 자장가를 부르며 딸과 함께 스르륵 잠드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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