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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바름 Nov 19. 2023

며느리 마음

시어머니와 시누이, 그리고 며느리

시어머님 생신이었다. 대전에 있는 시댁에 집안 행사로  내려가면 의례적으로 하룻밤을 자고 온다. 아이가 고등학생이 되니 아이 일정 맞추기가 가장 어렵다. 올해 시어머님 생신은 처음으로 아이 없이 남편과 단둘이 다녀오게 되었다.


어머님은 올해도 어김없이 직접 미역국을 끓이셨고 갈비찜과 잡채, 꽃게탕과 해물파전, 인삼튀김까지 당신의 생신상을 손수 준비하셨다. 아들과 며느리, 딸과 사위가 있지만 언제나 당신 생일상을 직접 준비하시고 자식과 손주들이 맛있게 먹는 것에 흐뭇해하신다. 그리고 돌아올때 어머님이 만든 음식과 갖가지 반찬, 제철 과일을 언제나 한가득 싸주신다.


살림과 요리에 소질 없는 내가 시댁에서 하는 일은 주로 설거지다. 어머님이 요리하고 계실 때면 옆에서 서성이거나 말벗을 잠깐 해 드리는 일 외에는 딱히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잠시 어머님 곁에 있다가도 더 이상 할 말이 없거나 옆에 서 있는 게 오히려 걸리적거린다 느껴질 땐 소파에 앉아 TV를 보거나 휴대전화를 만지작거린다. 아무렇지 않은 척 하지만 사실 쉬지 않고 주방에서 음식을 하는 시어머님께 연신 마음이 쓰인다.


올해는 딸아이가 함께 오지 않아 나는 시누이 내외와 조카들 대화를 옆에서 듣고만 있다. 회사 일로 1박 2일 지방 일정을 다녀온 남편은 많이 피곤한지 종일 소파에 누워서 잠만 잔다. 시댁 식구들 사이에서 나는 괜히 쓸쓸하다.


시어머님 생신 때 우리는 주로 용돈을 드린다. 명절, 어버이날, 생신 때 30만 원씩을 드리는데 이번 생신도 30만 원을 봉투에 넣어 드렸다. 어머님께서는 평소처럼 "잘 쓸게~"라고 웃으며 봉투를 받으셨다. 그리고 시누이는 이번에 다이슨에서 나온 고가의 헤어기기를 선물했다고 말씀하셨다. 지난 명절 때 시누이가 다이슨 헤어기기 이야기를 하더니 어머님께 선물을 했나 보다. 시누이는 나와 어머님께 헤어기기를 보여주었다. 생신이라고 30만 원만 봉투에 넣어드린 내 손이 괜히 부끄럽게 느껴졌다. 어머님께서는 무선 청소기가 작동이 안돼서 고민하고 있었는데 시누이가 확인하고 배터리를 새로 사와 고쳐줬다고도 내게 말씀하신다. 나는 웃으며 "역시 아가씨가 어머님 잘 챙겨주네요~ 역시 딸이 최고에요."라고 말했다. 웃으며 말했지만 괜히 마음이 씁쓸했다. 내가 시어머님과 시누이와 나눈 대화를 남편은 전혀 듣지 못했다. 남편은 원래 말수가 적어 여자들 대화에 잘 끼지도 않거니와 그날은 종일 잠만 자고 있었기 때문에 더욱 알 수가 없었으리라.


어머니께서 시누이가 사준 생일선물과 내 용돈을 비교하신 게 아니라는 걸 나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저 갖고 싶던 선물을 시누이가 해 준 것을 알려주신 거다. 마찬가지로 시누이도 자신의 선물을 뽐낼 의도로 다이슨을 내게 보여준 게 아니다. 그럼에도 엄마와 딸 사이에 낀 며느리는 알 수 없는 소외감과 시누이만큼 어머님을 신경 쓰지 못하고 있다는 죄책감 비슷한 감정이 든다.


단골 미용실에서 머리를 하며 나와 연령대가 비슷한 원장님과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다 얼마 전 시댁에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게되었다. 어머님이 직접 생신 음식을 하시고 나는 설거지만 하는데, 몸은 편하지만 마음이 불편하다고 했다. 사장님은 불편한 게 당연한 거라고 하며 아무도 뭐라 하지 않아도 눈치 보고 있지 않냐며 며느리를 공감해 준다. 그리고 다이슨 헤어기기 선물과 청소기 이야기도 하며 괜히 씁쓸하다는 이야기도 했다. 미용실 원장님은 내게 이렇게 말했다. "시어머니하고 시누이한테 이렇게 말하지 그러셨어요. 아유~ 저도 우리 엄마한테 잘해드려야겠어요~" 나는 화들짝 놀랐다. "아... 아니 그런 말은 일부러 기분 나쁘게 하려는 말 같잖아요. 어떻게 그런 말을 해요. 싸우자는 것도 아니고... "

미용실 원장님은 내 반응이 재밌다는 듯 막 웃으며 "왜요? 저런 얘기 아무렇지 않게 하는 사람도 많아요"라고 한다. 사실 전혀 틀린 말은 아니다. 아가씨가 아가씨 엄마에게 잘하는 만큼 나도 우리 엄마한테 잘해야겠다는 말인데, 왜 나는 절대 해서는 안될 말이라고 생각하는 거지. 그렇게 말하면 어머님이 서운해하실까 봐? 딸과 며느리는 다르다는 걸 내 입으로 직접 알려주려는 거 같아서?


내가 굳이 딸과 며느리는 다르다는 말을 하려는 게 아니다. 우리 시어머니께서는 내가 며느리라는 이유로 시부모님 생신상을 차리게 한 적도 없고 당신 딸과 비교하거나 차별한 적도 없다. 오히려 평소 내가 서운할까 나를 더 배려해 주시려는 마음이 느껴질 정도로 내게 잘해주신다. 그런 시어머님이시기에 나 스스로 시누이와 나를 비교하며 그 상황을 마음에 두고 있었던 것 같다. 아무도 나를 서운하게 할 의도가 없었음에도 말이다.


다음에 비슷한 상황이 생기면 "어머님~ 아가씨가 좋은 선물 해줘서 제가 기분이 좋네요~ 저도 다음에는 더 좋은 선물 해 드릴게요~"라고 웃으며 말할 수 있는 나를 기대해 본다. 괜히 상대 의도를 오해하거나 넘겨짚으며 내 마음을 불편하게 만드는 어리석은 사람이 되지 말아야겠다는 다짐도 함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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