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와 발표, 말하기, 목소리 떨림 스트레스가 있는 사람들에게
어린 시절 나는 숫기 없고 부끄러움이 많은 조용한 아이였다. 발표는 당연히 못했고 순서대로 일어나 책이라도 읽을 때면 목소리는 덜덜 떨리고 얼굴은 열이 올라 화끈거렸다. 수업시간 선생님이 내 번호를 호명할까 늘 두려웠다. 소심한 성격이 완전히 바뀌진 않았지만 그래도 학년이 높아질수록 상태가 조금씩 나아지긴 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대구에서 첫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당시 나는 회사에서 교육사업을 담당하고 있었다. 가끔 외부 강의 의뢰가 들어오면 외부 기관에 나가 직접 전산 수업을 하기도 했다. 전문가도 아니면서 무슨 배짱으로 사람들 앞에서 수업을 했는지 지금 생각하면 용기가 가상했다. 직장 동료들 사이에서는 말 잘한다는 소리를 가끔 들었다. 같은 이야기도 내가 하면 현장에 있는 것처럼 실감이 난다고 했다. 20대 젊은 시절 나는 스스로를 꽤 말을 잘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몇 년의 취업준비를 거쳐 서울에 있는 직장에 취업하게 되었다. 대구에서만 30년을 살았던 나는 서울말 쓰는 사람들 사이에서 조금씩 정체성을 잃어갔다. 직장 상사로부터 회사에서 불이익을 받고 싶지 않으면 경상도 사투리를 쓰지 말라는 소리를 들었고, 평소 내가 즐겨쓰던 단어를 서울 사람들은 알아듣지 못했다. 나는 사투리를 쓰지 않으려고 애썼다. 말하는 게 점점 힘들어졌다. 그나마 사람들 앞에서 말할 일이 별로 없었기에 그럭저럭 직장생활을 했고 팀장으로 승진도 할 수 있었다. 팀장이 되니 팀 회의를 주재하고 간부들에게 업무 보고를 해야 했다. 실무자일 때와 달리 사람들 앞에서 말을 해야 했다. 긴장하면 목소리가 떨렸다. 목소리가 떨릴 때면 선생님 호명이 두려워 덜덜 떨던 학창 시절 기억이 떠올라 괴로웠다.
직장에서 만난 사람들은 종종 내가 야무지고 당찬 성격을 가졌다고 오해한다. 말 걸기 어렵고 친해지기 어려운 인상이라고도 한다. 실제 내가 가진 성격과 전혀 다른 이미지 때문에 나는 남들 앞에서도 전혀 떨지 않을 거라는 오해를 받는다. 그런 사람들 앞에서 목소리가 떨릴 때마다 나는 부끄럽고 속이 상했다.
작년 말부터 내가 맡은 팀에 행사가 많아졌고 팀장인 내가 진행을 맡아야 했다. 시작하기 전까지 아무렇지 않은 것 같다가도 마이크만 잡으면 손이 떨릴 정도로 긴장을 했다. 그리 길지 않은 대본을 읽는데도 내 목소리는 떨렸고 떨림을 숨기고 싶어 빨리 읽었다. 그럴수록 목소리 떨림은 더 심해졌다. 나는 관객의 표정을 볼 용기가 없어 고개를 들지 못했다. 목소리 떨림은 불규칙했다. 어느 날은 괜찮다가도 어느 날은 떨렸다. 목소리를 떨며 행사를 진행한 날은 나 스스로가 무척 작게 느껴졌다. 대담하지 못한 내 성격을 탓했다. 누구에게도 내 고민을 시원하게 털어놓지 못했다.
말하기 책을 읽고 유튜브를 찾아봤다. 목소리 떨림은 긴장과 호흡이 가장 큰 문제였다. 발음연습과 호흡법 연습을 했다. 유튜브를 통해 스피치 모임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용기를 내 참석했다.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는 사람이 생각보다 많았다. 2주에 한번 모임을 가졌고 1시간 30분간 소그룹 대화와 개인 발표를 했다. 나를 전혀 모르는 사람들과 고민을 공유할 수 있어 부담스럽지 않고 좋았다. 시간이 갈수록 마음이 편해졌다. 스피치 발표를 위해서는 원고를 미리 작성해야 했다. 말하기는 결국 글쓰기와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서관에서 하는 직장인 대상 글쓰기 수업을 신청했다. 처음으로 글쓰기를 배웠다. 매주 1개의 글을 써내고 수업시간에 내 글을 낭독했다. 내가 쓴 글을 읽을 때도 호흡이 끊어지고 목소리가 떨렸다. 목소리가 떨려오면 몇 초간 말을 쉬며 숨을 골랐다. 10주간 수업에 한 번도 빠지지 않았다. 열심히 글을 쓰고 내 글을 낭독했다. 처음 보는 사람들과 함께 글을 쓰고 읽고 들었다. 사람들 앞에서 긴장하고 떨리는 증상이 조금씩 줄어들었다.
이제 회사에서 사회 보는 일이 생겨도 이전보다 스트레스를 덜 받는다. 여러 번의 경험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내가 들인 노력 덕분이기도 하다. 부족한 내 모습을 들키지 않으려는 노력대신 내 부족함을 인정했다. 긴장되고 떨리는 마음에 솔직해지니 오히려 말하기가 수월해졌다. 말 잘하고 일 잘하는 주변 동료를 칭찬하는 여유도 생겼다. 스피치는 스킬도 필요하지만 떨림과 긴장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심리적 요인이 더 중요하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완벽하려는 욕심을 내려놓고 실수해도 괜찮다는 마음의 여유가 필요하다. 나는 아직도 많이 부족하다. 그럼에도 나처럼 말하기 고민이 있는 사람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어 한마디 해보자면, 말하기 고민 극복을 위한 방법 첫 번째는 편안한 마음이고, 두 번째는 반복 연습과 경험, 세 번째는 기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