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바름 Feb 08. 2024

다시 만나기 싫은 직장 상사

그 무례함을 참기만 했다.

과거 직장 상사 H 이야기다. H와는 1년 6개월을 함께 근무했다. 부서장으로 H가 온 이후 함께 대화라도 한 날이면 나는 돌덩이를 삼킨 것처럼 가슴이 답답해졌다. 처음 그런 현상이 나타났을 때는 새로운 직장 상사에게 적응하기 위한 과정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꽤 많은 시간이 지나도 H를 향한 내 마음은 편해지지 않았다. 1년 6개월 후 내가 인사발령이 나고 부서를 떠나는 그날까지, 아니 부서를 떠나고 송별 회식으로 만나는 날까지도 H에 대한 내 마음은 불편하기만 했다.


H는 대화법이 직설적이다. 대화를 할 때 상대방 말을 끝까지 듣지 않는다. 업무와 관련한 보고를 받을 때도 마찬가지다. 내용이 어렵고 복잡해지면 보고하는 중간에 말을 싹둑 자른다. "복잡해서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 그래서 결론이 뭐야?!!"라며 짜증을 낸다. 처음에는 내가 보고를 조리 있게 못하는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조금 더 심플하고 쉽게 보고하기 위해 책도 읽고 연습도 했다. 그래도 달라지는 건 없었다. H가 중간에 말을 자르는 건 내가 하는 보고에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었다. 성급하고 참을성이 부족한 그녀 성격이 문제였다. H는 보고받을 내용이 많으면 끝까지 집중하지 못했고, 본인과 다른 의견을 내면 언제나 짜증을 냈다. 진행하는 일이 지연되거나 자잘한 문제라도 발생하면 담당자나 팀장에게 어떻게 할 거냐고, 해결방안을 내놓으라고 닦달했다.


H는 언제 어디서나 본인이 주목받아야 했다. 어떤 자리에서도 튀고 싶어 했다. H보다 더 높은 간부가 우리 팀 업무를 칭찬하면 본인이 잘한 거라고 스스로를 치켜세웠다.

외부 위원을 모시고 회의를 진행한 날이었다. 회의할 때 플라스틱 일회용품을 사용하지 말라는 사내 권고를 미리 신경 썼던 나는 직원들과 의논하여 플라스틱이 아닌 재활용이 가능한 제품을 회의장에 비치했다. 회의를 진행하는 임원이 경직된 분위기를 조금 부드럽게 만들고 싶으셨는지 우리가 비치한 물을 보시고 느낌이 남다르다 칭찬하셨다. 외부 위원분들도 웃으며 호응을 해주셨고 덕분에 분위기가 한결 부드러워졌다. 그 훈훈한 분위기에서 내 상사인 H는 이렇게 말했다.

"제가 고급스러운 제품으로 준비하라고 지시했습니다!" 

그 순간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당신이? 당신이 지시했다고? 언제?'


우리 팀이 추진한 큰 행사가 성공리에 막을 내리고 최고관리자께서 공식 석상에서 칭찬을 해주셨다. 그 자리에 H도 참석하고 있었고 본인이 칭찬받는 것과 다름없었기에 H는 당연히 기분이 좋았을 것이다. 그리고 며칠 후 나는 H와 식사를 하게 되었다. H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직설적인 어투로 타 부서 업무를 트집 잡고 험담했다. "그 부서는 너무 감각이 떨어지지 않나? 진행을 너무 못하는 거 같아!!" 나는 내가 잘 알지 못하는 일을 평가하거나 험담하고 싶지 않았다. 그냥 H의 말을 듣고만 있었다. 그런데 H가 갑자기 화제를 돌려 많은 사람들이 칭찬했던 우리 팀 행사 이야기를 꺼내며 신경질적으로 말한다. "사장님은 자기네 팀 행사가 뭐가 그렇게 잘했다는 거야? 나는 도대체 이해가 안 돼!"

우리 팀이 다른 부서도 아니고 본인이 관리하는 팀이다. 그런데 뭐가 그렇게 탐탁지 않은지 최고관리자의 칭찬을 이해할 수 없다고 한다. 그런 말을 듣고도 나는 그냥 웃었다. 기분 나쁜 티를 내면 분위기가 어색해질 거 같았고 나는 그런 게 불편하기 때문이다.


H와 함께 근무하는 동안 회사 내 직원들이 H에 대해 물어보면 나는 솔직하게 말하지 못했다. 어쨌든 내가 모시는 상사였고, 혹시라도 내가 뱉은 말이 H 귀로 들어갈까 두렵기도 했다. 오히려 다른 사람이  " 그 사람은 생각이 짧고 말을 너무 막 한다"라고 할 때도 나는 "그래도 스트레스 안 받는 성격이고 뒤끝은 없는 분이다."라고 H를 두둔했다.


그리고 인사발령 이후 나는 우연히 H와 과거에 같이 근무했던 직원에게 H 이야기를 들었다.

"그 사람은 예전부터 말을 할 때 뇌를 거치지 않고 입에서 나오는 대로 내뱉었어. 언제나 본인이 세상에서 가장 잘 낫다고 생각하고, 시샘이 많은 성격이라 남이 자기보다 돋보이는 걸 무척 싫어해." H 성격을 핵심요약해 주는 직원의 말에 나는 혼자 위로를 받았다.


나는 남들 앞에 나서서 호들갑스럽게 말하는 걸 좋아하지 않고, 다툼과 갈등을 싫어한다. 나는 성향이 너무 다른 H와 근무하는면서 참 힘들었다. H를 만족시키기엔 내가 많이 부족했고, 다시 만나더라도 나는 H를 잘 맞출 자신이 없다. 잘 보이기 위해 영혼을 내려놓고 없는 말도 만들어내며 H 말에 격하게 반응하고, 무조건 H가 최고라 칭하며 눈에 보이는 아부와 감언이설이 내게는 많이 어려운 일이다. 나는 앞으로도 누구에게 잘 보이기 위해 마음에도 없는 말과 행동을 하며 살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내 마음을 건강하게 지키기 위해서는 상대의 무례한 행동에 "당신 선 넘었어요."라고 알려주는 연습이 필요하다.

작가의 이전글 아들 키워봐야 소용없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