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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커피탄 리 Dec 17. 2023

정점은 없다, 시만 있을 뿐

수만 개의 푸른 산봉우리가 보였다
구름 떼가 넓고 낮게
산봉우리에 그늘을 드리웠다
나는 산 아래에 서 있었다
산들 중 가장 작은 나는 홀로
한 나그네가 내게 다가왔는데
내 슬픈 표정 보더니 풀을 밟고
내 허리 위로 올라섰다
그는 말했다
여기서 잠시만 기다려 달라고
나그네는 구름 골짜기로 올라갔다
한참을 구경하다가 다시 내려왔다
나는 마른땅에 주저앉아서
작게 흐르는 물소리 듣고 있었다

만 개의 산 머리에 올라섰다고
나그네는 내 눈을 보며 입술을 열었다
조가비 같이 사랑스러운 입술을
산의 높이는 산마다 달랐고
경치도 산들마다 아주 달랐다고
그는 말했다
산 꼭대기서, 온 세상으로 흘러나가는 강물
누런 들판을 감싸고 휘휘 도는 강줄기들
수천 개를 보았다
나무며 집들이 다른 모양으로 솟아 있었고
각기 다른 소리를 내는 새들이 가지에 깃들었다고
그는 말했다

산마다 다른 노랫소리가 울려 퍼졌는데
어떤 산봉우리에선 고아한 제비꽃의 노래가
어떤 산봉우리에선 서늘한 하늘의 노래가
어떤 산봉우리에선 따뜻한 개나리의 노래가
어떤 산봉우리에선 황홀한 지는 해의 노래가
흘렀다고
그는 말했다
만 가지 노래들이 마음을 달리 건드려
만 가지 감흥들과 기억들이 그의 머릿속에 솟아났다
영원히 마르지 않는 분수처럼
산봉우린 어느 것 하나라도 모나지 않았고
모난 곳은 한 군데라도 없지 않았다
별들의 군집과 포진도 산마다 다르고
천사들의 심장소리가 사방에서 느껴졌다고
그는 말했다

나그네는 내 허리에 다시 올라섰다
말없이 한참 동안 앉아 있었다
그는 내 머리를 매만지며 말했다
여기서 본 경치 또한 아름답다고
어떤 산은 하루 만에라도 자랄 수 있으니
조용히 나의 시의 종을 세상에 울리라고
언젠가 반드시 자랄 것이라고
내 키와 마음도

굽어진 물결들이 황금 들판을 감쌀 것이고
코스모스가 어깨 위로 돋아날 거라고
벌들이 춤을 추며 몰려올 것이고
새들이 날갯짓하며 노래할 거라고
구름이 해의 입을 아주 벌려서
환하게 쏟아지는 빛을 마실 거라고
바람이 네 목덜미를 싸고 돌아서
기분이 상쾌하게 바뀔 거라고
나그네 입술에서 말이 그치자
자그만 내 눈에서 눈물이 흘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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