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날 찾지 않는 고요한 밤이다
주광등 아래 글씨를 쓰는 나, 괴테 전집을 펼쳐놓고 있다
낮고 깊은 음울한 독일 가곡이 스피커에서
울려 나오고 있다
마음이 그지없이 평온하고 백조의 털에 기댄 것만 같다
사랑스런 고독, 외로움, 신비 이들은 내게 잠잠히
글 쓰는 시간을 허락해 준다 내 마음의 입술에서 잠잠히
흘러나오는 노래를
한 해의 끝에서 이 글을 짓는다
살 애는 찬바람이 사람들의 귀와 코를 얼린다 바람은
창틀로도 기어들어와 내 뒷목을 간질인다
시를 쓰는 이유에 대해 묻고 싶은 밤이다
아까 밖으로 나갔을 때 하늘은 흐렸고 별 한 점
보이지 않았다 이것이야말로 시인을 좌절하게 만든다
별의 죽음은 행복한 나의 고독
첫눈도 내리지 않았는데, 그 어느 해 보다도 날이 차다
나는 매일 길을 잃지만 고개를 들어보면 독수리는
늘 내 머리 바로 위에서 날고 있다
크고 아름다운 날개를 펼쳐 얼어붙은 창공을
도도하게 날아간다 코와 뺨이 빨개진
나는 넘어져 멍이 든 무릎을 매만지며 그를 따른다
난 어디로 가는지 모른다 오직 독수리가 이끄는 데로 갈 뿐이다
그렇기에 정확한, 두렵지 않은 길이다 현명한 독수린
하늘의 왕이기에, 때론 구름에 가려 잘 안보일 때도 있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그가 내 앞에 있음을 알고 강도-
안개도- 건널 수 있는 것이다
언 도시의 사람들은 성탄 축제를 앞두고 모두
들떠있다 그날이 무슨 날인지 아는 사람 있기나 할까
저 거리에, 그럼에도 기뻐하고 특히 그날에는 더 즐거워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구름 사이에서 여섯 날개의 천사들이
행복을 뿌려 날을 축복하고 있기 때문인가
사람들이야 어찌 됐건, 내 정신은 흐트러지지 않으리라
이제는 철거된 트리 위의 십자가 구름에 새겨진 그 빛
별의 흔적을 쫓을 뿐이다 별 하나 보이잖는 하늘이어도
내가 시를 쓰는 이유에 대하여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밤이다
하늘의 자녀들, 성좌들을 본다 영혼의 눈으로
별들의 호수에선 불길이 일고 있다 시내산 떨기나무처럼
저 별들에 닿기 위해 내가 시를 쓰는가 아니다
그런 마음이 없잖아 있지만 그보다는 더 큰 이유가 있다
내 감정, 사고, 영혼을 들여 이 종이 위에 나를 새기기 위함인가
아니다 그런 마음 없잖아 있지만 그보다는 더 큰 이유가 있다
그 이유 광휘로 날 감쌀 뿐 말로 끌어낼 수 없다
난 광휘를 따라갈 것이다
비록 어리고, 어리석고, 마음이 굽어
별다른 선행을 당장 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나는 오직 갈 뿐이다 내게 주어진
이 하나밖에 없는 길을 주위는 돌아보지 않고
앞으로 갈 차 한 대, 말 한필도 없이 맨 걸음으로
숲으로, 들로, 강가로, 바다로-
사막으로, 황야로, 고원으로, 협곡으로-
그 길 끝에 있는 영혼들에게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하기 위해
끝없이 그 일에 매여 있을지 모르지만 아, 나는
생명을 살리는 자유의 노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