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한 젊은이의 수기 2024.4.14
상투가, 5000여 년 동안 우리 민족의 분신과도 같았던 상투가 일제의 단발령에 의해 사라지고, 우리가 즐겨 입던, 거의 우리 민족의 상징이라 해도 무방한 흰 옷과 두루마기, 또 색색의 아름다운 한복들이 왜 켈트족이나 게르만족들이 고대로부터 입던 옷으로 - 그리도 순식간에 - 대체되었는지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왜 기와와 구들장이 사라지고 아파트가 우후죽순으로 땅 속 깊은 곳으로부터 금의 광맥인양 자라나게 되었는지 모른다. 이러한 현상들이 문명의 진화만을 설명한다고 할 수 있을까? '편의'라는 미명 아래, 진보적 서구를 따른다는 우월감과 조선조 때로부터 뿌리 깊게 내렸던 민족적 열등감. 그것은 저 전쟁을 합리화하는 자들의 선민의식과 그 줄기가 다르지 않다. 물로 자라난 가지들이냐, 뭍으로 뻗친 가지들이냐 그것만이 다르다. 수많은 무지와 오해들 속에서, 외래문화는 점점 기형적으로 커져가고 고유문화(이 말도 어불성설이긴 하지만)는 애기 똥처럼 줄어드는 이 현상은 (어찌 보면 포스트모던의 강령과도 위배된다. 나는 포스트모던을 신봉하지도 따르길 즐기지도 않는다.) 기이하다. 나는 고유문화만을 숭상한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만약이라는 단어는 없지만, 역사에 만약이라는 게 있다면, 메이지 유신보다 일찍 문명화에 성공해 일제가 넘보지 못할 강한 민족국가를 이뤘다면, 그 이전에 병자년, 정묘년에 조선이 청과 곧바로 사대를 맺었다면, 그 이전에 조선조 초기 명에 사대하지 않고 정도전의 소신대로 요동을 경략했다면, 이방원이 난을 일으키지 않았다면, 그 이전에 묘청의 서경천도 운동-이것은 단재 신채호 선생이 주장한 것이다.-이 성공해 고려가 자주국방이 가능한 군사국가의 면모를 갖췄다면, 그 이전에 신라가 아닌 고구려가 삼국을 통일했다면. 이런 가정은 무의미하고 유치하기까지 하지만 만약 그러했다면 어땠을까? 위의 사건들은 우리 민족의 의지가 '선택' 한 것이다. 만약 저것들을 선택하지 않고 엇비슷하거나 그 반대급부를 따랐다면, 모든 인과율의 곡선들이 그리로 가는 길로 통했다면, 우리 민족은 어땠을까?
아, 1948년에 시작된 양극정부의 출범이, 2024년이 된 지금까지도 서로 형제들의 몸과 마음을 피 칠하고 있다. 한스럽다. 한스럽다. 전운은 러시아와 서구의 관문으로 상징되는 우크라이나로부터 시작되어, 중동, 남아시아, 남북에 이르기까지 그 어느 때보다도 맹렬히 타오르고 있다. 그러나 사람들은 1950년 6월 24일 밤처럼 평온하게 살아간다. 올해 초 전국에 이례 없는 새들의 대 이동이 있었다고 한다. 정사에선 이러한 사건을 일러 천재지변, 인재의 효시라 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치열하게 일하고 미친 듯이 먹고, 광포할 정도로 마셔대며, 죽일 듯이 미워하고 분노하며 살아간다. 너무나도 평온하다. 나는 원래 상투와 이와 관련된 것들만 지적하고 싶었다. 그러나 원래 생이라는 것이 모든 것들이 헤파리떼처럼 무지막지하게 얽히고설켜 일어나는 사건들이 아닌가. 말이 늘어난 것에 대한 용서를 구한다.
나는 생각하기를, - 다시 상투 문제로 넘어가서- 우리의 외형과 복색을 유지하면서 과학적인 의상제품을 만들 수 있지도 않았을까? 한다. 왜 니트와 가디건과 청바지인가? 왜 머플러와 코트인가? 적어도 로마인들이 질질 내려오는 토가를 입고 다니던 당시 철저히 오랑캐의 옷으로 무시당하던 옷들이었다. 물론, 두루마기를 입는다면 지하철역 계단을 오르내릴 때 문제가 많이 발생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만약 그렇게 되었다면, 지하철 역의 모양도 애초에 지금 같지 않았겠지.) 그러나 그것은 본질이 아니다. <겉으로 가장 잘 드러나는 의복 따위 류의 변천은 철저히 권력과 유착되어 있다!> 아파트를 짓는 대신에 연립 한옥을 고안해도 되었을 것이다. 한국경제가 어느 정도로 성장한 1980년대 이후에. 젊은 여자들은 파스타와 피자를 와인과 곁들어 놓고 인스타에 게시하는 대신, -벌써부터 많은 주먹이 내게 날아드는 듯하다. -잔치 국수에 막걸리나 청주를 곁들이고 머리엔 나비 모양 금비녀를 꼽은 채, 인스타에 올릴 사진을 찍었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더 이상 내가 말하는 것과 같은 부류의 말을 듣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궁전 같은 초호화 아파트 로얄층의 삶, 비싸고 기름진 외제차 두어 대와, 값비싼 스위스제 시계들, 의사, 변호사, 사자 달린 직업을 가진 자녀들을 둔 노년, 성적과 돈과 섹스이다. <또 사람들에게 비치는 거짓자아를 꾸미는 데에 열을 올린다. 그러나 알고 보면 그런 이들의 속은 얼마나 공허한가.> 일본 교토에는 2-300년된 가옥들과 상점들이 즐비하다. 그들은 실리를 쫓으면서도 자존심을 잃지 않았다. 그들은 그들의 전통과 가업을 포기할 생각이 없다. 그러나 한국의 국밥집은 50년이 넘는 곳이 없다. 그마저도 다 장사가 잘 되면 프렌차이즈화가 되거나, 장사가 더 잘되는 상점으로 바뀐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아무도 고리타분한 것을 이으려 하지 않는다.
추신. 나는 이 모든 것들을 함께 이 종이 속에 넣어 두고 지하실 깊은 곳에 봉인해 두려 한다. 그리고 60년이 지났을 때, 내 말보다 상황이 더 나빠졌는지 나아졌는지 지켜보려고 한다. 그럼 잠시 안녕. 2024년. 4월 14일
2084년 4월 14일
이 되었다... 나는 노인이 되었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