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

by 커피탄 리

장마철이다. 장마철을 자세히 관찰해 본 적도, 그간 장마라는 기간에 별 흥미도 없었던 나로서는, 장마를 주제로 글을 쓰기가 어렵다. 어떤 글을 쓰면 좋을까? 비는 우울과 연결되는가? 이제 더는 우울한 글을 쓰기가 싫다. 생각해 보면, 비 오는 날은 좋지 않은 일 투성이었던 것 같다. 비 웅덩을 밟아 신발이 다 졌거나, 비바람에 우산이 뒤집혀 몸이 홀딱 졌거나, 외출을 하지 못해 마음이 적적해지거나, 대강 그런 일들이 있었던 것 같다.


장마철을 앞두고 나는, 심지어 장마인 줄도 모르고 약속을 와장창 잡아 놓았다. 비가 오는 날을 미리 감지하고 사람들이 만나고 싶어 하는 걸까? 서로 무언의, 그런 기류라도 통하는 걸까? 생각해 보면, 옛날 사람들은 비를 두고 하늘의 뜻을 점쳤을 것 같다. 중요한 행사가 있을 때, 비가 내려 그 행사가 취소되게 되면, ‘하늘이 노하셨다.’라고 말했을 것 같다. 그런데 비가 내리지 않아도 ‘하늘이 노하셨다.’라는 말이 나오지 않았던가? 따지고 보면, 전통적인 농업민족인 한민족에게는 비는 아주 필수불가결한 자연 요소인 것 같다. 그래도, 장마철에 홍수가 난다거나 하는 걸 보면, 비가 때로는 야속하기도 하다. 작년에는 차가 물에 잠길 정도로 비가 많이 오지 않았던가? 내 기억에 제 작년은 가뭄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비를 바라고 또 바랐는데, 결과는 홍수. 혹은 하루도 빠짐없이 비가 오는 봄이라던가. 특히 올봄이 그랬다. 비 덕분에 벚꽃은 예정보다 훨씬 빨리 떨어져 버렸고, 비 덕분에 하마 타면 체육대회를 못할 뻔했다. 그리고 비 덕분에 우리는 자주 실내에 있게 되었다. 우리라 하면 나와 두 친구 말이다. 내 이야기에서 자주 등장하는.


영도에 비가 내리면, 그 꼭대기에 있는 학교는 안개에 갇힌 고성(古城)이 되어버린다. 눈에 보이는 것이라곤 강당만 한 사이즈의 운동장, 또 온 천지사방을 뒤덮고 있는 물안개. 오래된 운동장 스탠드에는 우물이 파이기 시작하고, 돌들은 차가운 빗물에 깎여 마모되고 마모된다. 서서히. 토독토독 돌계단을 때리는 빗소리가 들린다. 약간 비린 듯한 비내음이 올라온다. 나는 스탠드 지붕 아래 서서 비가 내리는 모습을 지켜보거나, 쪼그려 앉아서 빗소리를 듣거나, 멍하니 친구가 오는 것을 기다린다. (기숙사 쪽에서 오는) 비 오고, 안개 짙은 날에는 산꼭대기까지 배달 오토바이가 오기도 힘들다. 그래도 우리는 꾸역꾸역 배달음식을 시켜 먹었다. 배달 오토바이가 배기통 질질 끄는 소리를 내면서 과방 앞에 도착하면, 카드를 들고 기뻐서 달려 나갔다. 잘 열리지도 않는 낡은 철제 문고리를 비틀어 당기며. 비 오는 날 먹는 떡볶이며, 찜닭은 얼마나 맛있던지!

그리고 역시 비 오는 날의 묘미는, 핸드폰 플래시를 켜놓고 담소를 나누는 것이다. 플래시를 켜고 핸드폰을 거꾸로 뒤집은 다음, 그 위에 플라스틱 물병이나 음료병을 올린다. 그럼 물이나 음료의 색깔에 따라, 조명 빛깔이 바뀌는 것이다. 어떤 날은 초록색, 어떤 날은 연홍색, 어떤 날은 푸른색. 우리가 사 먹는 음료의 종류에 따라 음료 조명의 불빛은 달라졌다. 우리는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고 울기도, 웃기도 하며 대화를 나눴다. 빗소리는 짙어지지만, 웃음소리에 파묻혔다. 밖에서는 통기타 소리가 은은하게 들려왔다. 어두움 속에서 서로의 눈은 어찌 그리 빛이 나던지! 눈에 습기가 많아 눈물이 난 것처럼 보이는 친구도 있었다. 학기 내내 이렇게 놀았던 것 같다. 놀면서 혼자 있기 좋아하는, 고독에 잘 빠지기 좋아하는 내 습성도 어느 정도는 고쳐졌다.


늦은 밤이 되어도, 안개는 곧잘 가시지 않았다. 다만, 비는 그쳤던 것 같다. 누가 하늘에서 소변을 누기라도 하듯이, 찔끔찔끔 내리는 비였달까? 올봄의 비는 대체로 그랬다. 이제는 방학을 해버려, 당분과는 과방에서 모여 놀지 못한다. 그 덕에 비 오는 날, 나는 방에 틀어박혀 글을 적을 수밖에 없다. 이것 말고는 딱히 할 일이 생각나지 않는다. 무라카미 하루키 병인가? 노르웨이의 숲에 등장하는 주인공처럼, 나도 글과 책 말고는 다른 것에 딱히 흥미를 두지 않는 편이다.


이제 본격적인 장마철이 시작되었다. 아직 구름이 오열하지도, 눈물을 찔끔 흘리지도 않았지만 아무튼 날이 흐렸다. 나는 흐린 날씨가 싫다. 일단 사람이고 노래고 다 쳐지는 것이 싫다. 그리고 우울한 노래가 기가 막히게 잘 어울린다. 비틀스의 ‘Yesterday’ 같은. - 비틀스의 다른 노래들도 다 잘 어울리긴 한다. - 아무튼. 그 노래를 들으며 남포동, 광복동, 부평동을 떠돌았다. 흐린 날씨임에도, 카페며, 거리에는 사람들이 많았다. 낡은 건물들은 눅눅해져 있었고 전신주는 색이 바래있었다. 전신주 전선을 가로지르는 전통무늬 등이 인상적이었다. 비 오는 날은 충무김밥과 당면인가? 진열대에 놓인 음식들이 어찌 그리 맛있어 보이던지! 한참을 그리 떠돌다가, 괴정에서 아르바이트 면접을 보고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서는 주구장창 글을 쓰고 있다. 또 다른 비틀스의 노래를 들으며. ‘Penny lane, In my life’ 같은 명곡들. 창밖으로는 희뿌연 대기가 산 등을 타고 있고, 부슬부슬, 비가 낙하할 준비를 하고 있다. 글을 이쯤 적고 보니, 빗속에서도 우울하지 않은 이야기가 탄생할 줄 몰랐다. 사람은 기억을 모방하는 동물 같다. 우울한 기억이 가득할 때는 우울한 글만 써대더니, 이제는 밝은 글도 좀 쓸 줄 안다! 그래서 적잖이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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