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6시. 착잡한 심정으로 책상에 앉는다. 노트북을 연다. 음악을 튼다. 타이핑을 하기 시작한다. 기분이 영 개운하지 않은 것이, 잠을 잘 못 잔 탓은 아닌 것 같다. 새벽 6시의 하늘은 뿌옇고 세상은 안개의 성역 같다. 멀리 있는 산도, 가까이 있는 수풀도, 구름 조각 따위도 잘 보이지 않는다. 미래를 향한 길은 한없이, 한없이 펼쳐져 있지만, 나는 외롭고 어찌해야 할 바를 몰라 불안하다.
무슨 글을 써야 할까 따위의 고민은 하지 않는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떠오르는 감정에 충실해지는 것이다. 전날 옛 친구들을 보았다. 그들이 나를 많이 의식하고 있는지 아닌지는 잘 모른다. 다만 그들을 보고 들어 올렸던 내 손이 무안해졌다는 것, 나를 보던 그들의 동공에 어딘지 껄끄러운 데가 있었다는 것. 그 사실들이 나와 그들 사이의 불편한 관계를 말해준다. 어쩌다가 일이 이렇게 되었을까?
어제도 날씨가 흐렸다. 높은 산들의 봉우리는 모두 안개에 잠겼고 나무들은 축축한 대기 속에서 찬찬히 흔들렸다. 사람들은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거리를 걸어갔다. 차들은 소음을 내며 비에 젖은 차도를 씽-씽- 달렸다. 그곳에서 나는 철저히 혼자였다. 습한 안개는 내가 가야 할 길을 막고 있는 듯이 사방에 내려앉았다. 풀냄새가 났다.
세상 일이 마음대로 풀리지 않는다는 것, 내가 외롭고 고독할 때, 누군가 꼭 내 곁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 이 두 가지는 익숙해질 때가 되었는데도 날마다 새롭기만 하다.
밤 11시가 되어서야 집으로 돌아왔다. 밖에서 불쾌한 일들을 몇몇 겪은 데 다가 날씨까지 흐려 컨디션이 말이 아니었다. 누군가 나를 살갑게 반겨주며 내 이야기를 들어주었다면 좋았으련만.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부모님께 핀잔을 들었다. 부모님이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내 속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그건 내가 부모라고 해도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친구와 연락을 했다. 사심이 가득한 메시지를 나는 보내고 또 보냈다. 하지만 친구의 마음은 내 마음과 같지 않았다. 사람들은 모두 자신만의 위성을 가지고 있는 행성 같다. 서로를 들여다볼 수도, 서로에게 다가갈 수도 없이 그저 제 자리를 지켜야 하는.
이런 기분으로 잠에 든다. 이런 기분으로 다시 새벽을 맞는다. 온 동네를 삼켜버린 안개와 마주한다. 속이, 편할 리가 없다.
그래도 생각해 보면, 내겐 날 좋아해 주는 친구들이 있다. 날 언제 어디서나 지켜보고 날 도와주시는 예수님도 계시다. 그들의 존재는 적잖은 위로를 내게 준다. 하지만 길을 헤쳐나가며 겪어야 할 마음 아픈 감정은 오로지 내 몫이다.
인생은 안갯속에서, 보이지 않은 달과 별을 찾아 헤매는 순례의 여정 같다. 눈은 저 멀리 가있지만, 마음은 항상 땅에 붙어 있으니 말이다. 땅에 사는 이상 나는 땅의 것들과 연관을 맺을 수밖에 없다. 어떤 게 현명한 방법일까?
심정이 이럴 때는,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는 것이 편하다. 침대 위에서도, 꿈속에서도 말고 사람들에게 둘러싸여서도 말고, 까치 우는 소리가 들려오는 조용한 방에서, 내가 치는 타자 소리를 들으면서. 책상 의자 위에는 다른 누군가가 아닌 내가 앉아있다. 의자 위에서 양반다리를 한 채, 피곤이 몰려오는 눈을 지그시 뜬 채로. 이런 내게 조용히 말을 걸어 볼까?
뭐라고, 말을 걸어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