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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커피탄 리 Jun 18. 2024

인스타 릴스를 보고

청소년기 때에는 많이 먹어야 한다. 하지만 한국의 산업화 시기에는 배불리 먹을 수 없었고, 배불리 먹기 위해서 산업화 전선에 뛰어들어야 했다. 국민들은 하나같이 ‘잘 살아보세’를 부르짖었으며 봄부터 겨울까지 공장 굴뚝에서 연기가 나지 않는 날이 없었다. 농업국가에서도 겨울엔 농사를 쉬는데, 공장 노동자들의 삶에는 휴무가 없었다. 이후 한국은 고속성장을 거듭했고, 한강의 기적 탓인지는 자세히 알 수 없으나, OECD순위 안에도 드는 선진 국가 반열에 올라서게 되었다. 거리에는 수입차들이 넘치고, 초고층 빌딩들이 공중 시야를 점유했으며, 밤에도 잠을 잊은 듯이 도심에는 불이 꺼지지 않는다. 한국은 청소년기동안 많이 먹고 몸집을 많이 불렸다. 세계 역사상 이러한 성장이 있나 싶을 정도로 급속한, 과도한 성장을 이뤄냈다.

 '세계를 주도하는 한류'라는 말이 있다. 그러나 그것도 경제력이 뒷받침되지 않았다면 이뤄질 수 없는 꿈이었을 것이다. 산업화시기 이후 사람들은 자기 자식이 가난을 대물림하지 않았으면 했다. 모두가 자녀들을 좋은 대학에 보내기 위해 열심이었다. 한국에는 학사들이 넘쳐나게 되었다. 대학은 많아졌고 고등학교를 졸업한 학생들은 모두 대학에 갔으니 말이다. 그만큼 무늬만 학사들도 많아졌다. 국가에서는 독서를 중시하는 교육제도를 만들지 않았다. 수능을 위한, 수능에 의한 교육 시스템을 구축해 놓고, 수능 과목에 맞는 아이든, 맞지 않는 아이든 그 틀에 마치 거푸집에 쇠를 녹여 넣듯 아이들을 주입해 놓으려 했다. 아이들은 공부는커녕 독서에도 흥미를 가지지 않게 되었다. 2010년대 초에 등장한 스마트폰 문화는 이를 더 심각하게 했다. 스마트폰으로 인해 파생되는 SNS서비스는 이를 더 파국적으로 만들었다. 정부는, 처음에는 스마트폰 사용의 주의점을 강조하는가 싶더니, 이제는 전 국민이 스마트 폰의 노예가 되도록 방치했다. SNS상에서는 가벼운 쇼츠, 쾌락적인 릴스, 소비적인 광고들, 비교우위를 점하려는 게시물들이 마구 오가며, 새로운 경쟁시대의 출발을 예고했다. SNS상의 사람들은 먹고, 살찌우고, 몸을 만들고, 자랑하는 것 외에는 인생의 참 목적을 찾지 못한 듯했다. SNS밖의 사람들을 만나보아도, 무의식의 저변에는 쇼츠와 릴스와 게시물에 중독되어 있는 자아를 찾기가 쉬웠다. 2020년대의 한국은 배부르게 되었다. 키가 훤칠하고 살이 보기 좋게 찌고 근육도 커졌다. 한국의 피부에는 뾰루지 하나 찾아볼 수 없고, 뽀얀 피부에는 검버섯의 징조도 찾아볼 수 없다. 그러나 그것으로 다다. 한국의 내면에선 서로에 대한 질투와 시기심, 증오가 들끓고 있으며, 언제 터질지 모를 정도로 사태는 급박하다. 독서를 통한 자아에 대한 고찰과 세계에 대한 고찰이 결여된 채, 육감적이고 쾌락적이며 즉물적인 무언가를 채우려고 애쓴 탓에 한국은 병자가 되어버렸다. 한국의 몸은 그간 많이 먹었기에 청소년기를 훌쩍 지났지만, 정신은 청소년기에 머물고 있다. 이른바 감정대로 행동하는 질풍노도가 오래 지속되고 있다. 물론 그렇지 않은 높은 수준을 가진 이들도 분명 많다. 하지만 국가의 전반적인 의식 수준이 위와 같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으리라.

 이러한 사태의 속도를 감속하기에는 이미 늦은 것으로 보인다. 국가, 학교, 가정, 그리고 무엇보다도 개인이 문제를 인식하고 수혈법을 찾기 전에는 불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인간은 먹고 자랑하기 위해서 태어났는가? 그렇다면 먹고 자랑하지 않는 것 외의 기능들은 다 무엇인가? 개인 스스로가 스스로에게 자문해 볼 때이다. 이런 시대에 시를 읽는다는 것, 구름을 본다는 것, 하늘의 색을 들여다본다는 것, 나뭇잎의 잎맥을 관찰하고 주변 사람의 얼굴을 쳐다본다는 것, 산 아래로 저무는 노을을 바라본다는 것, 지나가는 노인에게 따뜻한 시선을 준다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이것이 나스메 소세키가 말한 ‘비인정’이자, 헤르만 헤세가 말한 ‘작은 기쁨’ 아닐까. 선현들이 시대 위에 컴퍼스 자처럼 엎어져서 하는 말들에는 모두 공통되는 의의가 있다. 비록 사람들의 눈에는 그 일이 어리석어 보일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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