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통 새까만 하늘 - 하늘이라고 해야 할까. 벽이라고 해야 할까. 맨홀 속이라고 해야 할까. - 속으로 들어가는 기분으로 어딘가로 걸어가는 남자가 있다. 그 남자는 얇은 모시 천으로 된 옷만을 걸치고, 어떤 짐도 지거나 메지 않은 채 걷고 있다. 그의 몸은 홀가분하다. 마음만은 수백 개의 추를 매달아놓은 것처럼 무겁지만, 몸은 홀가분하다. 어디선가 은하수의 멜로디를 실은 듯한 검은 바람이 불어온다. 그 바람은 어딘가를 지시한다. 바람이 지시하는 데로 가자 저 멀리 등불 하나가 보인다. 그는 등불이 있는 쪽으로 재빠르게 나아간다. 그러나 그곳엔 아무것도 없다. 그의 잃어버린 심장도, 사람들의 심장도,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는 슬픈 생각이 들어 길가에 주저앉는다. 여전히 사방은 캄캄하고, 개구리와 풀벌레 우는 소리가 잔잔히, 음악처럼 들려온다. 저 멀리서 별이 하나, 둘 켜진다. 그는 별을 잡으려고 폴짝 뛰어본다. 그러나 별은 잡히지 않고, 그의 무릎만 상할 뿐이다. 그때 하늘 한가운데서 새빨간 해가 활활 타오르기 시작한다. 그는 두려움으로 그 해를 바라본다. 해는 점점 그에게 다가온다. 해는 그 앞에서, 점점, 커진다. 그는 눈을 찔끔 감는다. 해는 여전히 타오른다. 해는 뜨겁지 않고 따뜻하다. 그는 해가 따뜻하다는 사실을 알고 눈을 뜬다. 해가 묻는다. "뭐가 필요해?" 그가 대답한다. "사랑이요." 그 말에 해는 웃기 시작하더니 별안간 해의 웃음소리가 느리게 소용돌이치는 이미지가 되어 온 하늘을 채운다. 그는 놀라 나자빠진다.
나는 꿈에서 깼다. 아주 길고도, 또 멀리 가는 꿈이었다. 꿈속에서 수십 명의 사람들을 만났다. 어떤 이들은 내가 착한 사람이라고 했고, 어떤 이들은 내가 나쁜 사람이라고 했다. 전자의 말을 들었을 때, 나는 부끄러웠지만 기뻤고, 후자의 말을 들었을 때, 슬펐다. - 지나고 나서는 감정만 이미지로 기억할 뿐 무뎌졌지만 - 그들이 춤추는 곳을 지나 어떤 터미널에 도착하게 되었다. 그 터미널에는 사람들이 아주 많았는데, 부류도 아주 다양했다. 값비싼 옷을 예쁘게 차려입은 사람들, 괜찮은 옷을 맵시 있게 차려입은 사람들, 누더기 같은 옷을 허름하게 입은 사람들. 또 옷에서 누런 땀냄새가 나는 사람들, 옷에서 푸른, 생선 비린내가 나는 사람들까지. 아주 다양했다. 그 사람들에게는 공통점이 있었다. 다들 우울했고, 외로움을 많이 탄다는 점이었다. 그들은 이 터미널에 오기 전에 사람들로부터 많은 상처를 받았다. 그들은 대부분 끼리끼리 모였다. 나도 그 무리들 중 한 무리에 속하게 되었다. 이 무리를 우리는 '외로움의 모임'이라고 불렀다. 그 모임에서 우리는 날마다 술을 마시고 재미있게 놀았다. 남남녀녀로 성별도 두 부류였으니, 즐거움은 두 배였다. 그러나 모든 게 끝나고 아침이 오면, 아니 아침이 오기도 전에 허탈했다. 허탈하기 그지없었다. 나는 허탈함을 채우기 위해, 외로움의 모임에 나오던 한 여자를 만났다. 만나는 기간 동안에는 우리는 외로움을 거의 느끼지 못했다. 사방에 풀들, 꽃밭이 널려 있었고, 하늘도 푸르렀고, 떼 지어 지나가는 구름들도 우아했다. 나는 구름이 그때의 내 마음을 상징한다고 생각했다. 구름이 먹구름이 되기 전까지 그랬다.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이 있는 법. 우리는 친구처럼 헤어지지 않고 기약 없이 헤어졌다. 그러고 나니, 내 속에는 다시 허무와 공허함이 바이러스처럼 바글거리기 시작했다. 서랍에 있는 약이란 약은 다 꺼냈지만 외로움은 더 커지기만 할 뿐 사라질 줄 몰랐다. 게임이란 약. 드라마란 약. 영화란 약. 사람이란 약.
사람 마음속에 있는, 채워지지 않는 사랑이란 잔은 어디서 채워야 하는 걸까? 그렇게 길을 걷다가 끝도 없는 길을 걷다가, 문득 하늘의 해를 바라봤다. 해는 매일 똑같은 모양으로 세상을 환하게 비췄다. 사람 마음이란, 사람이란 쉽게 변하는 생물. 그렇다면 해는, 자연은, 자연 상위에 있는 무언가는 - 계절마다 변하지만 변한 그 자체로도 살아있는 것 - 변하지 않는 것인가. 인간의 살아있거나 죽은 마음과는 달리, 그런 것인가. 나는 해를 향해 손을 뻗어왔다. 발을 들어봤다. 내 몸은 떠올라 해가 있는 쪽으로 날아갔다. 해와 가까워질수록 뜨거울 것 같았는데, 따뜻했다. 그는 너무나도 따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