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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글을 쓸 수 있었던 힘

by 커피탄 리

과거에 있었던 일을 쓰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러나 과거에 있었던 일을 떠올리는 건 늘 괴로운 일이다. 나의 뇌리에 꽂힌 첫 기억은 이렇다. 내가 모종의 사고로 환청에 시달리게 되면서, 양극성장애를 비롯한 몇 개의 병을 앓게 되었다는 것. 이런 말을 하는 것은 부담스러운 일이다. 스물셋, 2020년 여름의 일이었다. 그때는 코로나가 그렇게 오래 극성을 부릴 거라고 예상하지 못했다. 그때는 내가 글을 다시 쓰게 될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미술을 그만두게 될 거라고도. 창원에서 대학교를 다니던 내가, 서울에 올라와서 편입을 준비하고, 또 2개월 만에 그만두게 될 거라고도 나는 도저히 알지 못했다. 결국 그 모든 일들은 거의 한꺼번에 터졌다. 2020년의 ‘성적표’라고 받아 든 종이 위에는, 지난날의 후회와 내 병명들이 인쇄되어 있었다. 나는 좌절했다. 앞으로 무슨 일을 해야 할지 알 수도 없었고, 또 할 수 있을 것 같지도 않았다.
의사 선생님은 – 내 병을 고치기 위한 하나의 방법으로 – ‘하고 싶은 일’ 하기를 권했다. 병원에서 나와 지하철을 타고 들어오는 길에 내 뇌리에 떠오른 일은 ‘소설을 상상하는 일’이었다. - 지금 소설을 상상하는 일은 내게 불가능하다. 수정에 수정을 거쳐 완성된 약물은 내 상상 기능과 기억 기능을 약화시켰기 때문이다. - 나는 그 길로 소설을 상상하기 시작했다. 몇 개월 뒤, 그렇게 완성된 상상은 한 소년과 친구들의 모험 이야기였다. 그 이야기를 쓰기 위해, 여러 권의 역사책을 참고했다. 그때 무슨 힘이 있어서, 책을 읽고 또 6개월의 짧지 않은 기간 동안 소설을, 그것도 하나의 소설을 쓸 수 있었는지 모르겠다. - 그건 발악이었을까. 그 이후 나는 단편소설을 끄적거리는 일밖에는 하지 못했다. - 나는 그 성급하게 만들어진 책을 성급하게 전자책으로 출간했다. 결과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말을 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또 나는 시를 적기 시작했다. 그즈음 읽었던 시집은 – 내게 시를 쓰는 어떤 태도를 알려줬던 – 하인리히 하이네의 ‘노래의 책’이었다. 나는 감정적인 부분을 털어내는 시로서의 모범을 ‘노래의 책’에게서 배웠다. 그러나 ‘노래의 책’은 그런 책만은 아니었다. 물론, 하이네가 시를 썼던 18세기 초, 중엽에는 낭만주의 사조가 널리 퍼져 있었기에, 보다 감성에 의지해 시를 써도 훌륭한 시로 불렸다. 하지만 요즘 시대에는 고려해야 할 부분이 훨씬 많았고, 감정에만 의지해 좋지 않은 글들을 마구 써댔던 내 시들은 졸고 이상의 것이 아니었다. 우울증에 힘을 입어 시를 썼지만, 시를 다 쓰고 나서는 우울하지 않았다. 소설에 몰입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시는 내 탈출구가 되어주었다.
많은 시행착오가 있었다. 시를 써서 작은 문예지에 ‘등단’했던 일, 그것이 ‘어떤 장사의 일환’으로 계획된 일이라 실망했던 일, 졸고들을 모아 그 문예지의 출판사와 계약한 시집 한 권을 내고 더 실망했던 일, 한 시인 분께 내가 읽던 고전 서적들을 멀리 하고 80년대 이후에 출판된 시집들을 읽을 것을 권함 받았던 일. 수도 없이 시를 포기하고 또다시 썼던 일, 또 다른 시인 분과 사제 관계를 맺었지만 나의 성급한 실수로 얼마 가지 못했던 일, 그 와중에도 한 소설 모임에 소속되어 계속 소설을 끄적거렸던 일. 이 4년에 달하는 시간 동안, 시에 있어서나, 소설에 있어서나 내 실력이 늘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아이러니하게도 용기와 비례하는 글쓰기 실력은 퇴보했다. 나는 꾸준히 실패만 경험했던 것이다. 지금은 언급했다시피 단편 소설 하나도 제대로 쓰지 못하고 있다. 물론 여기에는 나의 완벽주의적인 성향이 한몫한 것도 있으나, 본질적인 문제는 한 깨달음이었다. 내게 재능이 없다는 사실. 나는 도저히 장편이든 단편이든 소설을 제대로 써낼 수 없고, 시도 등단할 만한 시를 쓸 수 없다는 사실. 그 생각은 잘못되었어도 크게 잘못되었다. 나는 확신한다. 그럼에도 난 거기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제는 시로든 소설이든 등단이 대수가 아님을 안다. 꽤 오랜 시간 동안 등단에 목말라 있었던 나에게 그 사실은 단비 같았다. 등단이란 허울 좋은 말이다. 500명이 제출한 각 5-10편의 시들 약 수천 편 중 가운데 일등을 가려낸다? 그것도 3-4명의 심사위원이. 하늘에 있는 별을 헤아리는 일이 더 쉬운 일일 것이다. 아무리 잘 가려내려 해도, 실수가 있기 마련이고, 각 사람에게는 취향이라는 것이 있다. 더욱이 합격자들 명단을 보면 대부분이 서울권의 문예창작과 학생들 출신이다. 이는 뭘 의미하는가. 결국 시에도, 시단에도 ‘한국형, 학원형 입시제도의 모형’이 존재한다는 뜻이다. 게다가, 이 결과적으로 제도에 헌신하려 나 자신을 쥐어짜 내는 일은, 내게 해가 되었으면 되었지 득이 되진 않았다. 번 아웃은 친절한 이웃처럼 내 집 벨을 눌렀다. 벨을 누를 때마다, 나는 거절하지도 못하고 뭔가 찔리는 일이 있는 사람처럼 문을 열었다. 번 아웃은 비교와 열등감이라는 선물꾸러미를 한가득 안고 와서 내 방 침대에 쏟아부었다. 하나는 잠옷, 하나는 베개, 하나는 이불이었다. 난 그 고마운 선물들을 입고, 베고, 덮고 잠자리에 누었다. 꿈속에서도 글 생각을 하며 그가 준 선물들 속에서 뒤척였다. 그 밤들이 얼마나 괴로웠는지. 그가 내게 3개월씩 머물면, 나는 아무것도 쓰지도, 하지도 못하는 상태가 되었다.
번 아웃을 겪느니, 나는 내게 뼈아픈 경험을 주고 날 쥐어짜게 만들었던 글쓰기 목표를 쳐다보지 않기로 결심했다. 등단하고자 하는 마음은 내려놓을 것. 더 나아가 일찍 성공하려는 마음을 완전히 내려놓을 것. 즐거운 글을 쓸 것. 초심으로 돌아갈 것. 내가 처음에 글을 썼던 열아홉 살 때로. 울적했지만 평화로웠던 그 시절로. 글로 무언가를 증명하지 않아도 되는 그 시절로 돌아가기. 물론, 언제까지나 ‘그런 글쓰기’ 형태를 지향할 수 있는 게 아님을 알고 있다. 나도 선택을 해야 할 때가 올 것이고, 그때에는 앞으로 나아가는 길을 선택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글을 ‘즐겁게’만은 쓸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떠올릴 것이다. 내 열아홉 살 시절을, 다시 글을 쓸 수 있었던 스물셋 때의 기억을. - 두 시기의 공통점은, 내가 우울증의 힘에 의존해 글을 썼다는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힘은 내 동력이 되어 주었다. 정말 웃긴 일이다. - 우울증이 다 나아가는 지금, 나는 또 다른 내 동력원을 걱정스레 생각해 본다. 마땅한 대안이 없다. 그래서 글을 게을리 쓰기도 한다. ‘뭔가에 몰입하고 미칠 수 있었던 것’보다 더 가치 있는 일이 있을까? ‘이전의 나’라면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나는 서두르지 않기로 했다. 우울증을 비롯한 조급증에도 내 코어를 내주지 않기로 했다. 그렇다면 나는 무엇에게 내 중심 자리를 내어줄 것인가. 나는 오늘을 믿기로 했다. 있지도 않은 내일을 생각하며 걱정하고 조급해하기보다, 오늘을 신뢰하기로 했다. 오늘, 나는 무슨 글을 쓸 것인가. 그것이 내게 가장 중요한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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