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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글을 위한 글을 쓰고 있던 나에게

by 커피탄 리

다시 글을 쓸 준비가 된 것 같다. 소설이나 시처럼 등단을 목적으로 한 글이 아닌 글을. 어떤 형식이나 표현에 제약받지 않는, 초여름 달밤의 공기같이 선선한 글을. 그동안 글을 쓰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시로 등단을 준비하기도 하고, 소설도 끄적거렸다. 뭐 하나 만족스러운 게 없었다. 결과도, 과정도. 지금에야 내 마인드셋 자체가 잘못되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나는 지금 강가에서 낚시를 하는 아이 같다. 물고기를 기다리며 수면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다. 그 느리게 흘러가는 강변의 풍경을 다만 바라보고 있다. 수풀, 갈대, 오리, 구름, 물 냄새. 그런 것들을 보는 것도 아니다. 초점은 흐릿해져 있다. 다만 나는 태풍을 기다리고 있다. 태풍은 물살을 일렁이게 하고, 나는 물속에 숨어버린 태풍을 낚는다. 이게 지금의 내 상태이다. 물고기는 아무래도 좋다. 그런 건 신경 안 쓰기로 결심했으니까. 아니, 결정했으니까. 이 태풍은 나의 모든 좋지 않은 치명적인 부분을 휩쓸고 지나갈 것이다. 나는 두 팔을 벌리고 받아들이리라.

이제까지 내가 글을 쓸 수 있었던 동력은 무엇일까. 아무래도 남들에게 ‘일찍’ ‘주목’ 받고 싶었던 마음이었겠지. 내가 글쓰기를 즐거워하거나 즐거워하지 않거나 하는 것과는 상관없이. 나는 글을 쓸 때, 즐거움을 느끼는 사람일까? 그렇다. 뭔가에 쫓기지만 않는다면. 일찍 주목받고자 하는 야망에 쫓기지만 않았다면. 나는 지금보다는 훨씬 훌륭한 작가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책들. 그 셀 수 없는 하고많은 책들을 읽으며 내가 얻은 것은, 누군가와 나를 비교하는 것. ‘어떤 작가는 몇 살 때 이 책을 썼대.’, ‘어떤 작가는 몇 살 때 그 상을 받았대.’, ‘어떤 작가는 이런 표현법을, 문체를 구사하네?’, ‘어떤 작가는 이런 심리묘사를 하네?’와 같은. 이러한 소리들이 내 귀에서 파리처럼 아른거리고, 나는 그 파리를 쳐내지 않고 꿀꺽 삼킨다. 그럼 파리는 내 식도와 목구멍을 타고 내려가서, 위장에 내려앉아 자양분이 된다. 내가, 문학할 수 있는 동력원이 되는 것이다. 그 쓸데없는 말들. 바위가 계속 떨어지는 산을, 피 흘리는 줄도 모르고 오르는 어리석은 사람처럼, 나도 어리석었다. 나는 젊었고, 젊다기보단 어리고 미성숙했고 ‘반드시 무언가’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글은, 나의 목적이자 수단이었고, 내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방법도 가리지 않았다. 도덕률을 따지는 것이 아니다. 어쩌면 도덕적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을지도 모른다. 나는 글을 쓰는 나의 행위에, 어떤 정당성을 부여했다. 일하지 않아도, 알바하지 않아도, 나는 글을 써야 하기 때문에, 내가 쓰는 글은 특별하기 때문에, 나는 그렇게 살아도 된다. 당분간은. 많은 약을 먹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지만, 내가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 더 건강하게 ‘글도’ 쓸 수 있지 않았을까. 이를테면 운동 같은 것 말이다. ‘미친 듯이 책을 읽고, 미친 듯이 글을 쓰고, 되돌아보지 않고, 밤을 새운다. 그러고 번 아웃에 빠진다. 몇 개월 뒤, 또 미친 듯이 책을 읽고, 미친 듯이 글을 쓰고, 결코 되돌아보거나 천천히 가지 않고 밤을 새운다. 그러고 전보다 더 긴 번 아웃에 빠진다.’ 이것이 지난 2년 동안의 결과이자 과정이었다. 그 이전에는, 더 젊고 어려서 번 아웃을 겪지 않았을지도 모르지만, - 어른들이 보면 우습게 여길 말이지만 - 20대 중반이 넘어가자 번 아웃이 일상다반사가 되었다. 재능은 많다고들 했다. 가능성은 충분하다고들 했다. 그러나 나는 너무너무 급했고 성공이 급한 소변처럼 ‘마려웠고’ 나 자신과 내 글을 되돌아볼 기회를 스스로에게 주지 않았다. 나는 점점 지쳐갔다. 그리고 점점 짜부가 되어갔다. 책이 가득한 서재를 어깨 위에 몇 개나 매고 있는 사람처럼, 내 허리는 구부러졌고, 내 오장육부는 뼈마디에 눌렸다. 사람이 그렇게 되면 숨을 쉴 수 없는 것이 당연한 이치. 나는 질식했고, 내가 매고 있는 것의 이름은 ‘비교’였다. 강박의 일종으로 내게 발현된 이 비교라는 덫은, 나 자신은 굉장히 낮추면서, 남은 쳐올리는 못된 습성을 지녔다. 나는 좋은 점을 남들에게서 빼내온 것이 아니라. 그 좋은 점들을 다 흡수하려다가 그 연자 맷돌을 매고 바다 깊은 곳으로 가라앉았던 것이다. 그것은 여름날의 잊히지 않는 괴기스러운 어떤 꿈처럼 내 목을 졸라맸다. 깊은 물속에서 내 다리를 붙들고 숨을 쉬려고 물 밖으로 나가려는 나를 필사적으로 방해했다. 그 결과 나는 주검이 되었다. 말 그대로 시체이다. 그러나 시체에 햇빛이 닿자 시체는 기적적으로 소생했고, 바람이 불어오고 풀들이 흔들리는 곳으로, ‘그리운 풀들과 빵 냄새가 나는 곳’으로 걸어가기에 이르렀다.

우연의 작용인지. 아니면 어떠한 힘의 작용일지 모르겠다. 세상의 창조가 무에서 시작된 거라면, 내 생각과 마음을 바꾼 어떤 힘의 작용도 유에서 시작된 것은 아닐 것이다. 어느 순간 나는 조급함을 잊어버렸다. ‘일찍’ ‘성공’하고자 하는 욕구까지도. 아니, ‘성공’하려는 욕구 자체를 거의 잊어버렸다. - 전부는 아니다. 최대한 억누르고는 있지만. - 그저 자유롭게 즐기면 되는 것이다. 글을 잊고 살 때, 학교에서 시험용 똥 종이를 받았는데, 거기에 글을 쓰는 것이 어찌나 즐겁던지. 그래, 나는 애초에 글을 쓰는 것 자체를 즐거워했던 것이다. 내가 글을 써서 어떤 위대한 인물이 되는 것과 관계없이. 열아홉의 나는 그랬다. 늦은 밤, 혼자 방구석에서 일기나 시를 쓰던 열아홉의 나는. 등단을 시도하지 않는 것. 시도하더라도 아주 느긋한 마음으로 시도하는 것. - 게다가 이미 등단의 현실을 알고 있지 않은가. 수백 명의 지원자가 심사위원 몇을 보고 지원하는데, 과연 그들이 올바르게 작품들을 추려낼 수 있을까. - 난 자유로워지면 된다. 내가 자유로운 눈으로 자연을 바라보듯. 들국화를, 동백을, 장미를 느끼듯. 구름 아래를 흥얼거리며 거닐 듯. 풀들을 만지작거리고, 유채꽃의 향기를 맡듯. 난 자유로워지면 그만이다. 무언가에 얽매이지 않으면 그만이다. 애초에 인간이 그렇게 태어났듯이.

5년간 강박장애에 시달렸는데, 이제 파해법을 찾은 기분이다. 내 글을 보는 나와 비슷한 사람들이 도움을 받았으면 싶다. 조금은. 나는 그 분야의 전문가도 아니고, 이레라저레라 할 권위를 가진 사람도 아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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