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구름 속에서 벗어나, 외로운 들판에 서서 뜬구름을 바라보게 되었다. 친구는 물새와 학. 갈대와 억새. 그리고 잡초 투성이 보도블록 위로 이어진 전신주들. 나는 그러한 사물들에게서 정을 느꼈다.
학교를 자퇴하고 처음 2년은 적응의 기간이었다. 전혀 다른 공기, 전혀 다른 토양, 전혀 다른 언어와 제스처, 냄새를 간직한 곳과 먼저 적응해야 했다. 조금만 걸어 나가면 큰 바다가 부채처럼 펼쳐지고, 온갖 휘황한 건물들이 아우성을 내던 대도심. 그곳과는 사뭇 다른 시골의 느낌.
쏟아지는 햇살, 곧게 뻗은 산맥 위로 피어오르는 먼지, 트랙터 굴러가는 소리와 공장 폐수 냄새. 크레인의 외로운 그림자 등. 나는 전에 보지 못하던 새로운 생물들과 교감해야 했다.
그 기간 동안 나는 학교 공부에 갈피를 잡지 못했다. 집에 방치된 나는 내 의지대로 인터넷 방송대신 오락거리를 선택했다. 평소에 역사에 흥미가 많았던 터라 역사 정보를 이것저것 서핑해 보았다. 잡다한 지식은 늘어났고 성적은 점점 줄어들었다.
2년째 되던 해에는, 짝사랑의 실패에 큰 충격을 먹고 세상과의 단절을 선언했다. 나는 골방으로 들어갔고 소설책을 펼쳤다. 공상하기 시작했고 글을 미친 듯이 적어댔다.
친구도, 그렇다고 의지할 가족도 없었던 처지였기에 독서와 글쓰기는 내 삶의 유일한 안식이 되어 주었다. 내가 앞전 글에서 새로이 들어온 동생이 있다는 언급을 한 적이 있을 것이다. 그 아이가 집에 들어옴으로써 내 인생은 180도 달라졌다. 그 아이는 쉽게 녹아들지 못했다. 틈만 나면 물건과 벽을 부수고 방 안으로 기어들어갔다. 그 아이를 감싸는 어머니와 나 사이에는 신뢰할 수 없는 감정의 골이 생겼다. 내 어머니의 시야에서 그 아이는 점점 커져가는 반면, 나는 바람 빠진 풍선처럼 줄어들었다. 아버지는 그 아이를 쉽게 사랑하지 못했다. 그 태도는 오히려 내게 죄책감을 더하여 주었다. 내가 집에서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방 안에 들어가 혼자만의 세계에 빠져드는 방법밖에는, 없었다.
이곳이 내가 들어온 새로운 구름인가? 이곳은 전에 있던 곳과 달리 덜 소란스럽고 덜 눅눅하다. 대신에 사막처럼 건조하고 때때로 모래알맹이가 날 쳤다. 또한 세상이 무너질 것 같은 굉음이 이따금씩 들려왔다. 내 머릿속에서 동생의 이미지는 점점 괴물로 굳혀져 갔다. 그 애가 자랄수록 나는 쪼그라들었고 그에게 입지를 펼수록 마음속의 시기심과 열등감은 치솟았다.
그 구름 속에서 나는 대짜로 누워 있기보다 구석에 쪼그려 앉아 책장을 넘기기를 택했다. 그 책 속에는 또 다른 들판, 또 다른 들풀, 또 다른 구름이 있었다. 달과 별도 꽃처럼 피어나곤 했다.
세상과 담을 쌓고, 심지어 입시미술학원을 - 고3, 6월 때부터 2년간 - 다니면서도 나는 도무지 바뀌려 들지 않았다. 부조리로 가득 찬 세상은 타파할 대상이었으며, 사람들은 인류의 계몽을 막는 적들이었다. 시대의 유행과 절차에 끌려다니는 사람들은.
그림보다는 글쓰기에 더 열중했고 시대의 사상가가 되어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럼 모두가 내 이론과 내 이름에 열광할 것이고, 주목받지 못해 생기는 외로움을 사그라들 것이었다.
어리석은 꿈을 키워가는 사이 나는 스물한 살이 되었고, 사회를 모르는 채로 대학이란 사회로 나가게 되었다. 오로지 내 자의로. 자의로 자퇴를 선택하고 자의로 미술입시를 결정했다. 자의로 책을 탐독하고 자의로 글을 써 내려갔다. 타의에서 오는 것은 가끔 나를 미치게 하는 열등감과 분노, 그리고 고독이었다. 그렇게 선택한 내 첫 인생은 나쁘지 않았다. 난 고독했지만 즐길 줄 알았고 고독했지만 혼자가 아니었다.
그러나 난 어디까지나 철저한 혼자였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