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철저히 혼자였다. 집에서도, 학원에서도, 교회에서도. 누구도 나를 주목하지 않았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도. 친구는 소설 속 등장인물들로 족했다. 내가 눈으로 보는 풍경은 소설가가 묘사한 상상의 풍경이었다. 무슨 책을 읽었다, 무슨 책을 읽었다 밝히는 것은 정말로 유치하다. 다만 자연주의적인 책을 많이 읽었고 위로를 받았다.
스무 살 때는 괴테에 미쳐 있었다. 열등감에 찌든 풋내기의 눈에 괴테는 태양, 혜성, 날 위로해 주고 구원해 줄 유일한 인류처럼 보였다. 나는 그를 숭상하고 모방했다. 서제는 그의 책들로 가득 찼다. 열아홉, 스물 당시에 내가 적은 시는 그의 시풍을 따른 것이었다. 나는 괴테라는 새로운 구름 속에 들어와 그 구름을 끌어안으며 모든 수분을 흡수하려 했다.
과거에 나는 힘이 있는 자들을 동경했다. 그들이 내 우상이었고 내 힘의 원천이었다. 그들이 곁에 있는 한 난 두려울 게 없었다. 하지만 어처구니없게도 시골로 이사를 오게 되니, 그들의 그림자는 촛불처럼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대신 나는 내 존재를 증명해 줄 존재를 '내' 안에서가 아닌 책 속에서 찾았다. 그가 바로 요한 볼프강 폰 괴테였다.
그가 말한 대로 살아가려고 했던 것 같다. 그가 말한 것이 내겐 빛이자 진리였다. 그를 모르는 사람들은 무지렁뱅이에 소경이었다. 그를 알고 있는 한 난 세상에서 가장 자만한 사람이었다.
그렇게 끙끙대며 그를 닮으려 노력했는데, 눈앞에 펼쳐진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디자인 수시를 네 군대 탈락하고 재수를 했다. 재수를 했으나 상향에서 점점 하향으로 떨어지더니 목표하던 대학 회화 시험에서 보기 좋게 낙방했다. 나는 괴테의 제자인 내가 최고의 예술가인줄 알았는데, 대학은 그런 풋내기를 인정하지 않은 것이었다.
가을이 되어 노란 비가 보도블록 위로 내렸다. 곧 눈이 내려 온 세상이 새하얗게 칠해졌다. 그 시기동안 나는 내 한계를 맛보았다. 재수까지 했는데 가야 할 대학이 없다는 사실은 가히 충격적인 일이었다. 이상과 현실의 팔씨름 속에서 결국 나는 현실 쪽으로 기우는 것을 택한 것이었다. 그래, 모든 것이 내 자의로, 내 자의로 이루어졌다. 자퇴와 그림을 선택한 것도 나, 그림 대신 글쓰기에 열중한 것도 나였다. 누구 탓을 할 수 있을까? 나는 보풀이 다 일어난 목도리를 매고 초라하게, 눈에 젖은 거리를 걷고 또 걸었다.
그때 내가 붙잡은 것은, 내가 그렇게도 싫어하고 두려워하던 하나님이라는 존재였다. 나는 세상에서 가장 비굴하게 대학에 붙여달라고 기도했다. 웃기지 않은가. 온갖 폼은 있는 대로 다 잡아놓고 이제 와서 '날 살려 줍쇼' 하는 꼴이라니. 세상에서 가장 강한 줄 알았던 내가 가장 비루하게 되자, 하늘에 계신 자비로우신 아버지는 그 녀석의 손을 들어주셨다.
놀랍게도, 내가 수시로 대학에 입학한 것이었다. 시험장에서 나올 때는 표정이 온통 흙빛이었는데, 합격 결과를 받아 든 내 얼굴은 밝았다. 이 기회를 놓칠세라 어머니는 내게 동계 수련회에 갈 것을 권했다. 스물한 살 나는 그렇게 수원의 한 기도원에 수련회를 가게 되었다.
남쪽 지방과는 달리, 북쪽의 바람은 날카롭고 차가웠다. 떨어지는 눈이 통각을 건드렸다. 온 세상이 하얗게 덮였다. 담장도, 기와지붕도, 주차장도, 기도원 건물도.
나는 거기서 생에 가장 놀라운 체험을 하게 되었다. 교회에서 21년을 살면서, 1년도 빠져먹지 않고 갔던 것이 수련회였다. 난 수련회를 단 한 차례로 진지한 태도로 임한 적이 없었다. 게임을 하거나 자거나 둘 중 하나였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이 수련회에서는, 찬양을 하는데 눈물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내가, 날 위해 십자가에서 돌아가셨다는 주님, 본적도 목소리를 들어본 적도 없는 분의 이름을 불러가며 눈물을 쏟고 있었다. 그런 일이 3일이나 지속되었다.
3일째 되던 날 밤, 나는 기도를 받기 위해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진중하게 그분의 임재를 요청했다. 그 기도에서, 주님은 날 처음으로 만나 주셨다.
세상에 대한 온갖 분노와 불평으로 가득 차 있던 내 머리. 그 머리를 누군가 조물딱거리는 느낌이 들었다. 혀가 춤을 추기 시작하더니 방언을 말했고 내 가슴은 전에 없던 충만감으로 가득 차게 되었다. 거기서 한 미세한 음성이 들렸다.
'내가 이전부터 너를 알았고 너를 지었으며
너를 사랑한단다.'
그 문장이 내 머리를 스치는 순간, 세상을 향한 내 분노는 사랑으로, 동생에게 가득했던 시기심과 열등감은 평온으로 바뀌어 있었다. 할렐루야. 얼마나 신비한 은혜인가!
그날 나는 고백했다. 이왕 미술학과에 가게 된 것, 그림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겠다고. 그 이후부터, 내 삶 그리고 내 그림은 다시 180도 달라졌다.
천지를 지으신 그분은 내게 자연만물의 비밀 몇 가지를 알려주셨다. 나는 그 지혜를 가지고 내 작은 손으로 색을 칠해나갔다. 내가 채운 캔버스는 사람들의 놀라움을 자아냈다. 나는 내가 그 정도의 실력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제 더 이상 내 마음속에 고독함은 없었다. - 3년이 지나고 병이 발견되면서 나는 기나긴 침체기에 빠지지만 그전까지는 - 내가 물 먹은 구름 속에 갇혀 있다거나 땅 위에서 구름을 멍하니 올려다보고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나는 자유했다. 날 묶고 있던 부정적인 감정과 죄로부터 서서히 멀어져 갔다. 나는 하늘을 날았다. 거대한 구름들이 내 친구들이었고 수억 개의 별자리들이 나를 위해 노래를 불러주었다. 나는 더 이상 괴테가 필요 없었다. 힘이 센 친구들도 필요 없었다. 내 안엔 누구보다 강하신 예수 그리스도가 사시고, 그분 안에서 나는 '내 모습 그대로' 존재하게 되었다.
글을 맺으려 한다. 짧지 않은 시간 동안 나는 내 인생을 순차적으로 돌아보았다. 인생이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나름대로 내려보기 위해서였다. 타의에서 자의로, 자의에서 완전한 자유로 이동하면서 내가 느낀 감정들을 기록해 나갔다. 내 글을 보고 있는 당신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지 궁금하다. 구름 속의 내 인생은, 세상이란 구름 속에 갇혀 있던, 고독이란 구름을 바라보고 있던 내 인생은 이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를 얻게 되었다. (어디까지나 스물한 살 때까지의 시점이다. 스물여섯 지금의 나는 그때의 나와 또 다르다.) 이제 무슨 말을 더 해야 할까? 더 할 수 있을까?
인간은 외롭게 창조되었다. 그리고 하나님을 만나가는 여정을 가진다. 하나님을 만나는 순간 인간은 새롭게 빚어진 새 피조물이 된다. 그리고, 하나님 나라를 위해 살아가며 그분과 동행하는 은혜를 누리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