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21장 3절

by 커피탄 리

아브라함이 그에게 태어난 아들 곧 사라가 자기에게 낳은 아들을 이름하여 이삭이라 하였고(창 21:3)

어제는 여호와를 의지하는 법에 대해 묵상했다. 그것은 말씀을 삶의 기준으로 세우는 삶이다. 말씀을 내면의 물통 가득 채워서, 말씀이 나를 돕게 하는 데까지 이르게 하는 삶이었다. 말씀을 많이 읽으면 하나도 기억에 남지 않아도, 내 삶의 기반이 되어 나를 지켜줄 것이다. 말씀은 하나님의 지혜이고, 말씀에 통달하는 사람은 지식과 지혜를 풍성하게 얻게 된다. 말씀의 다림줄을 바로 대지 않으면, 나만의 하나님을 만들어 섬기기 십상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나만의 금송아지를 만들어 하나님이라고 섬길 수 있다. 말씀을 알면, 하나님의 뜻에 맞는 기도도 할 수 있다. (기도는 도깨비방망이가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아브라함이 자신의 정식부인에게서 낳은 첫아들의 이름을 이삭(웃음)으로 지은 것은 의미가 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열방에 복을 주시려고 택하신 자이다. 그에게 나타나시고 그와 언약하셔서 그의 자손을 하늘의 뭇별들보다 많게 하겠다고 약속하셨다. 그 약속의 첫걸음이 바로 이삭이다. 이삭의 이름은 웃음이다. 그 약속이 대체 무슨 약속이기에 첫 약속의 이름이 웃음이란 말인가. 웃음이란 단어는 간혹 비웃음이라는 말과 뉘앙스를 같이 하기가 쉽다. 미소와 웃음은 비슷한 의미이면서도 느껴지는 바는 아주 다르다. 웃음은 약한 미소를 뜻하기가 십상이기 때문이다. 창세기 21장 6절 말씀은 이렇게 기록된다. “사라가 이르되 하나님이 나를 웃게 하시니 듣는 자가 다 나와 함께 웃으리로다” 이 문장은 극치의 기쁨을 표현한다. 즉 하나님이 인간과 친히 맺으신 약속은 극치의 기쁨이라는 뜻이다. 그 약속의 시작은 이삭(웃음)이고 약속의 끝은 예수 그리스도이다. 예수 그리스도까지 의식의 흐름이 왔는데, 예수 그리스도는 피, 즉 대속을 상징한다. 하나님이 친히 인간의 몸으로 오셔서 인간의 죽을죄를 위해 피를 흘리셨다. 그리고 죄와 영원한 죽음으로부터 인간을 해방하셨고 영원한 생명을 주셨다. 대속, 곧 피 흘림은 영원한 생명이다. 그러니 이삭의 웃음은 그리스도의 영원한 생명과 통하고 그것은 극치의 기쁨이다. 이것 말고 극치의 기쁨이 세상에 어디 있겠는가. 우리는 이 일을 두고 평생 축제를 벌여도 모자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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