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43장 9절

by 커피탄 리

내가 그를 위하여 담보가 되오리니 아버지께서 내 손에서 그를 찾으소서 내가 만일 그를 아버지께 데려다가 아버지 앞에 두지 아니하면 내가 영원히 죄를 지리이다 (창 43:9)

그들의 아버지 이스라엘이 그들에게 이르되 그러할진대 이렇게 하라 너희는 이 땅의 아름다운 소산을 그릇에 담아가지고 내려가서 그 사람에게 예물로 드릴지니 곧 유향 조금과 꿀 조금과 향품과 몰약과 유향나무 열매와 감복숭아이니라 (창 43:11)

유다의 말이 결국 아버지 이스라엘의 마음을 흔든다. 이까지도 이스라엘 가족을 대속에의 여정으로 부르신 여호와 하나님의 크신 뜻이었을까. 바로 앞 장에서 장자 르우벤의 말은 가볍게 무시당하지만, 유다의 말은 아버지의 가슴에 꽂힌다. 유다도 요셉을 시기했던 형제 가운데 한 사람인데, 또 며느리랑 (모르고 했다 해도) 관계한 그런 사람인데, 심지어 르우벤은 요셉의 살해 및 팔려감을 막으려 했던 유일한 사람임에도, 아버지에게 가볍게 무시당한다. 르우벤은 아버지의 첩을 범한 이력이 있는 사람이다. 그 일은 아버지의 권위를 완전히 무시한 큰 사건이다. 그 사건이 아버지 이스라엘에게 불신을 품게 했고, 현재 상황에서 르우벤은 아버지와 형제들에게 신뢰를 베풀지 못하는 상황이다. 하나님은 유다의 잘못들보다 르우벤의 잘못을 더 큰 잘못이라 보신 것이 분명하다. 이 글이 기록될 당시 지극한 부계사회였던 이스라엘의 전통과 맥락을 보았을 때도 당연하다. 나는 지금 이렇게 힐난조로 르우벤의 죄과를 바라보고 있지만, 나 역시도 지은 죄들이 많다. 그럼에도 여호와 하나님은 르우벤과 그의 후손들 또한 대속의 은혜에 포함하시고, 그들에게도 지파와 땅을 허락하신다.

내가 적용해야 할 점은 무엇인가. 시선을 하나님께로 먼저 두고, 두 번째로는 불쌍한 우리 부모님께 두는 것이다. 나는 어쩌면 날마다 그분들에게 불효를 저지르고 있을지도 모른다. 순종과 공경이 폐지된 지 오래되었을지도 모른다. 이 고사를 통해 부모님의 권위를 세워드리고 하나님께 이쁨을 살 유일한 방법은 내 행위를 바로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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