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수기 23장
19.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시니 거짓말을 하지 않으시고 인생이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하지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하지 않으시랴
예언자 발람의 말이다. 비록 후에 발람은 이스라엘 자손의 손에 의해 죽임을 당하지만, 발람이 십볼의 아들 발락의 앞에서 했던 말은 의의가 있다. 하나님은 한번 하신 약속은 변경하지 않으신다. 아브라함과 이삭, 야곱에게 하신 말씀이 그랬고, 모세 비느하스(제사장 엘르아살의 아들) 그리고 다윗에게 맺으신 언약이 그랬다. 그리고 그 약속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나에게까지 동일하다. 창세기 28장 15절의 약속을 그분은 내게 허락하셨다. 정확히는 야곱에게 하신 악속이다. 나는 이 약속을 받고도 늘 긴가민가하며 두려움에 휩싸이곤 했다. 나와 함께하시며 내가 어디로 가든지 나를 지키시고 이끄셔서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하시겠다는 약속. '이 땅'이 어디인지는 정확히 알지 못하지만, 아마 내가 21살에 그 약속을 받은 것이 함안군이었으니, 그곳을 말씀하시는 것일까. 아니면 한국땅을 말씀하시는 것일까. 나는 끝없이 의심했고 또 좌초된 배와 같았지만,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셔서 그 말씀을 계속 상기케 하셨다. 내 믿음이 흔들릴 때, 내가 죄악에 빠져 있을 때, 내가 의지할 한 구절을 구할 때, 그 약속을 보여주셨다. 이것만큼 큰 약속이 어디 있을까. 그러나 두려움은 여전히 남아 있다. 6년 전에 내가 그의 보호하심 아래서도 크게 다쳤던 것처럼, 오늘도 내일도 그리 되면 어떡하지 라는 막연한 불안감. 그 불안감이 나를 종종 삼키곤 했다. 또 내 안에는 어떤 중독(죄)이 남아 있어서, 아론의 손자 엘르아살의 아들 비느하스가 창으로 미디안 여인과 엉킨 이스라엘 사내를 죽였던 것처럼(민 25장)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엎어져 있다. 이 생각은 아직 고개를 들지 않고 엎어져 있어서 언제 내게 생명으로 다가올지 잘 모르겠다. 그러나 그 조건이 이뤄질 때, 하나님의 약속과 방패와 날개는 내게 더 가까이하실 것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나는 성경을 읽을 때조차 문학을 생각하고, 괴테나 말테를 떠올리거나 세상사의 상념에 휩싸이기도 했다. 그걸 바로 잡고 싶다. 정말이지 내 안엔 하나님이 기준이 되는 문학을 하고 싶다는 욕구가 1퍼센트 정도라도 남아 있다. 결국 주님이 내 기도를 들으시고 일하실 것이다. 나는 그분께 기도할 수 있을 뿐이다. 이상 가벼운 나눔이었다.